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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몽 Oct 17. 2023

새 옷을 잘 사지 않는 이유

직업체험: 도매시장 여성의류 판매원(2)

KBS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눈을 질끈 감고 질렀다. 핸드폰 앱에서 가을맞이 40만 원짜리 트렌치코트를 구매했다. 100만 원 대 코트도 있는데 무슨 호들갑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구매한 옷은 내 옷 중에서 가장 비싸면서 오랜만에 사는 새 옷이었다. 트렌치코드를 입은 멋진 모습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았다. 20년은 입어야지.     


구매 이후 배송을 기다리는 와중에도 ‘이거면 다른 곳에서 위아래로 빼입을 수 있는데’라며 취소할까 말까를 고민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받았던 코트는 실망이었다. 핸드폰 화면으로 봤던 색이 아니었고, 원단도 원하는 것과 달랐다. 온라인에서 옷 사기는 복불복이다.      


그래도 큰맘 먹고 산 거고, 환불할 만큼의 이유는 되지 않았다. 비싼 거 빼고는. 괜찮다는 이유를 찾기 위해 빠른 손놀림으로 옷 상태를 확인하다 손이 멈췄다. 주머니에 손을 넣자 안에서 손가락이 까꿍하고 인사를 했다. 그렇다. 주머니 안쪽이 터져있다. 비싼 것도 이러나.     

 

교환요청을 기다리면서도 또다시 환불 고민을 했다. 교환상품이 발송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는데 소식이 없다. 현관문을 몇 번이나 열었다, 닫았다 했는지. 이윽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고객님 교환 요청하신 제품의 재고가 없어서 환불 처리를 해야 할 거 같아 연락드렸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보통은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나쁘지 않았다. 그건 그냥 내 옷이 아니었고, 마음에는 들었지만 아주 마음에 들진 않았다. 이번에도 옷 사기는 글렀구나 싶었다. 진짜 오랜만에 질렀는데. 에잇.   



  

예전에는 옷 사는 일이 쉬웠다. 마음에 들면 사고, 적당히 마음에 들어도 사고, 사고 싶으면 샀다. 많은 생각하지 않고 구매했다. 옷에는 몸을 보호하는 기능을 넘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이로 인해 많은 이들이 옷 입는 것에 신경 쓰고 소비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냥 막 사고 버렸다.  

  

동대문 여성 의류 판매직원으로 일하는 1년 동안 옷을 잘 입는다는 소리를 들었다. 괜히 기분이 좋았다. 옷에 파묻혀 일하기도 했지만, 이때처럼 옷이 많았던 적도 없었다. 게다가 일하던 곳은 한 층 전부가 옷으로 넘쳐났고, 세상에는 예쁜 옷이 너무 많았다. 옷만 보면서 살다 보니 옷에 대한 부작용이 생겼다.  


도매시장에 있다 보니 원가를 알게 되니 더욱더 옷을 사지 않게 되었다. ‘단가가 얼마인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옷가게에 들어가 옷과 원단 디자인 등을 보고 마지막에 가격을 보면 빈손으로 나오게 된다. 옷에 붙는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알게 되면서 옷을 사는 게 어려워졌다.


도매에서 사입한 가격에 1.5배~2배 정도의 가격으로 매장,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한다. 유명 브랜드에서 옷을 가져가 10배 정도의 가격으로 파는 것도 보았다. 그런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옷을 잘 사지 않게 되었다.


패션산업은 계절을 앞선다. 여름에는 가을, 겨울옷을 준비하고, 겨울 봄에는 여름옷을 준비하다. 패션 관련 일들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보통 여름이 안 지났는데 가을옷이 빠르게 나온 경우는 여름 판매가 부진한 경우이다. 이전 계절에 팔리지 않은 새 옷들은 헌 옷이 되고, 쓰레기가 된다. 


도매에서도 판매되지 않은 지난 계절 옷들은 땡처리를 한다. 사장 언니는 후원하는 미혼모 센터에 보내거나, 그램으로 옷을 사가는 분에게 보냈다. 이런 옷들이 100L 쓰레기봉투 크기로 10개 정도는 나왔던 것 같다. 물론 이 모든 옷들은 한 번도 있지 않은 새 옷이다. 

      

케라니간지 방글라데시/ KBS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패스트패션’으로 옷을 빠르게 소비하고, 버리게 만든다. Rent the Runway에 따르면 1인당 연간 옷 구매량이 68개라고 한다.  MZ 세대들의 소비패턴은 SNS를 기반으로 하며, 인공지능의 추천에 의지한다.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고 한 번 클릭한 옷은 핸드폰을 끌 때까지 따라다닌다. 좀비도 아니고 살 때까지. 

      

옷가게에서 일할 때는 몰랐다. 미니멀리즘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환경문제에도 관심이 생겼다. 한 발짝 떨어져서 보게 되니 내가 입었던 옷들도 패스트패션이었다. 질이 낮은 옷을 한철 사서 입고 버리는 행위를 쉽게 반복했다.


2021년 KBS 환경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라는 다큐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78억 명이 사는 지구에서 한 해동안 제작되는 옷은 1,000억 벌에 이르고 그중에 33%인 330억 벌이 같은 해에 버려진다고 전했다.  

    

실제로 한 명이 1년에 버리는 옷의 양을 환산하면 30kg 정도로, 이렇게 버려진 옷들이 가나, 방글라데시와 같은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된다. 수출된 옷이 누군가 입어 잘 활용되면 좋겠지만, 어딘가에 버려서 또 다른 쓰레기 산이 되는 현상이 반복된다. 


미니멀리스트로 살고자 결심하며 옷장 안에 옷들을 정리했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아름가운 가게에 기부하거나, 헌 옷수거함에 버리기도 했다. 현재 옷장에 옷은 내가 셀 수 있을 정도이며 정말 필요한 옷이거나 낡은 것이 아니면 절대 사지 않는다. 

     

옷이 많은 것보다 버리는 게 더 큰 문제였다. 헌 옷수거함에 버렸던 옷들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갈 거라는 착각을 했다. 다큐를 보면서 대부분 쓰레기가 되어 버려지고, 지구를 아프게 만든다니. 대혼란이 일어났다.      


옷을 사려고 할 때 '저걸 입으면 좀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려나'라는 환상과 욕망이 있었다. 막상 사고 싶던 옷이 환불되고 보니 잘된 것 같다. 옷장을 보니 비슷한 옷이 이미 있었다. 있는 옷이나 입자. 


옷을 통해 보게 된 환상과 욕망은 실제 할까. 주문해서 입어봤던 새 옷은 그렇지 않았다. 같은 옷을 입고, 구멍 난 옷을 꿰매 입는다고 인간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내가 버린 옷들을 누군가가 잘 입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쓰레기가 되어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은 괴롭게 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이런 걸 알았으니 새 옷을 살 때 신중할 수밖에.


새 옷을 사는 것을 경계하라(Beware of trying to buy new clot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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