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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몽 Oct 16. 2023

신당역 승강장 1-1 '미라클 모닝'

직업체험: 도매시장 여성의류 판매원(1)

인생에서 첫 차를 타보는 경험은 흔한 일은 아니다. 밤새도록 놀다가 막차를 놓치고 택시비가 아까워 피시방이나 찜질방에서 밤을 지내고 집에 들어갈 때 타는 경우는 있어도 출근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나는 1년 동안 첫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한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돈을 많이 준다면 모를까. 아니다. 돈을 아주 많이 주는 게 아니면 다시는 안 한다고 할 만큼 힘든 일이었다. 저년형 인간으로 새벽에 잠드는 지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나의 꿈은 첫 차를 타게 만들었다.      


서른이 되었을 무렵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우게 되었다. 드라마를 좋아했던 시기에 친한 언니의 소개로 방송 작가 교육원에 지원했고 덜컥 붙어 ‘작가 지망생’의 삶이 시작되었다.    


다시 시작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주변에 친구들은 각자 자리를 잡고 일을 하는 시기였지만, 이런저런 일들로 내 꿈을 잃고 나서 새롭게 찾았던 꿈이라 더 소중했다. 그리고 여전히 드라마를 사랑했다.      


클립아트코리아

서른에 부모님께 손 벌리기는 쉽지 않다. 지인의 소개로 동대문 청평화에서 여성의류를 판매하는 판매직으로 처음 도매시장을 알았고 일했다. 글밥을 먹지 못하는 상황이라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 일과 함께 병행해야 했기에 ‘투잡’의 삶을 시작했다.


보통 옷가게에 들어가면 직원이 친절하게 다가와 말을 걸기도 하고, 이것저것 알려주기도 하는데 도매시장에는 그런 게 없다. 물건을 보는 손님이 그냥 일반인인지 아니면 사장님인지를 구분하는 게 더 중요하다.   

  

간혹 일반인이 옷을 싸게 사려고 오는 경우들이 많은데 그런 이들에게는 물건을 아예 안 판다. 디자인 카피가 일어날 가능성을 우려해서 분별하는 매의 눈도 필요하다. 약간 쭈뼛거리며 당당하지 못한 사람들은 일반인일 경우가 많았다. 보다가 뭔가 마음이 가면 일반인에게 팔기도 했는데 보편적인 일은 아니다. 

   

청평화는 보통 밤 11시 50분에 직원이 출근하여 가게에 쳐진 천막을 거두면서 시작된다. 사장이 출근하기 전 아침 10시까지 직원이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엄청 큰 가게에는 직원이 많겠지만 보통은 직원 1명에 디자이너 1명으로 운영된다. 가게의 규모도 보통 1평 정도로 월세가 500만 원 정한다. 가게에 쌓아놓은 옷들에 사람 2명 정도 앉으면 가득 차는 공간이다.

      

일하는 직원 언니들은 다들 쎈 언니들이 많았다. 또한 옷을 운반해 주고 옷을 사입하는 사람을 '삼촌', ‘사입삼촌’이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왜 '삼촌'이라고 부르는지 의문이었다. 보통 '삼촌'이라고 하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했던 말인 것 같은데. 나보다 어린 사람이 대부분이니까. 입에서 '삼촌'이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내가 일했던 옷가게는 특이하게 12~6시까지 일하는 직원과 6~12시까지 일하는 직원이 있었다. 나는 여기서 새벽 6-12시까지 일하는 직원으로 일했고, 새롭게 만든 옷에 샘플을 피팅하는 일도 했다. 입어보고 불편하거나 이상한 점들을 얘기하면 수정사항들을 사장님과 디자이너가 회의해서 공장에 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옷들은 매장이나 온라인 마켓에서 선택하여 구매하고 소비자들의 손까지 가게 된다.    


옷가게에서 일하면서 옷걸이에 앞뒤가 있고, 구겨진 옷에 물을 뿌리고 놔두면 옷감이 펴지는 것을 알았다. 또한 코디하는 방법, 신체 치수에 대한 정보 그리고 손님에게 상품에 대해 어필하는 훈련 등을 했다. 

  

그때는 항상 긴장하고 잤다. 일어나지 못할까 봐 무서웠고, 못 일어나거나 아니면 지각하는 꿈을 많이 꿨다. 강제적 미라클 모닝으로 새벽 6시 출근을 하려면 늦어도 새벽 5시에 일어나 5시 20분 지하철을 타야만 새벽에 일하는 직원과 교대가 가능하다. 남에게 피해주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필사적이었다.


아줌마를 시작해서 학생, 아저씨들이 각자 행선지는 달랐지만, 새벽부터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한다는 것은 내가 엄청 부지런한 사람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새벽 출근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다들 자기 자리가 있었다. 항상 앉는 자리에 앉아서 오늘은 누가 왔는지, 안 왔는지를 지레짐작하게 된다. 2호선을 타고 신당역 승강장 1-1에서 항상 내렸다. 나처럼 빠르게 환승하려는 사람들은 거기에 탔고, 1년 동안 매번 같은 얼굴을 보고 출근을 했다.    

  

클립아트코리아

가끔 첫 차를 타는 경우가 생긴다. 출근하는 분들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 삶이 무기력해지고, 일에 대한 회의감이 느껴질 때면 시장에 가봐라. 치열하게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보일 것이다.      


새벽 지하철을 타면서 매번 반성했다. 세상에 사장이 되고, 신문에 나오고,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지고 그래야만 대단한 게 아니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감당해 내는 사람, 오늘을 살아내는 사람들은 모두 대단하다.


나는 매번 미라클 모닝에 도전한다. 언제부턴가 ‘미라클 모닝(Miracle Morning)’이 SNS를 뜨겁게 달구었다. 도대체 미라클 모닝이 뭐길래. 자기 계발 책에서 아침형 인간이 성공한다며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실패하는 인생처럼 묘사되었는데 그게 사실이면 나는 이미 망했다.


미라클 모닝은 무기력에 빠져있던 사람들에게 ‘미라클’로 다가왔으며 챌린지를 통해 현재의 무력감을 극복시켜 줬다. 나도 동참했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언젠가는 미라클 모닝을 맞이하고 싶다.


각각 상황은 다르겠지만, 인생은 한 번이고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지금의 시간을 감사하며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려고 치열하게 싸우다 보면 ‘미라클’이 일어나지 않을까. 희망이 없어 보이는 곳에서 희망을 찾으며 각자의 ‘미라클 모닝’을 통해 '미라클'을 발견하길.


저녁형 인간에게도 미라클을 기대하며. 삶을 붙들고 새벽을 여는 모든 이들에게 미라클이 일어나기를 응원하며 기도한다. 거기에 나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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