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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몽 Oct 14. 2023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직업체험: 인테리어 디자이너

MBC 예능 '러브하우스'

집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려운 환경에 사는 사람들의 사연을 받아 낡은 집을 리모델링해 주는 MBC 예능 ‘러브하우스’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봤다. MC 신동엽과 건축 업계에서 유명했던 양진석 디자이너가 함께 출연해 마법 같은 변화를 선사했다.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마법사 같았다.


방송을 보며 새롭게 변하는 집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지만, 개개인이 가진 사연들을 듣는 것도 흥미로웠다. 마치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줄 수 있다는 환상을 품으며 멋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예전에 처음 꿈이라는 것을 꿨던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져보기로 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새로운 일에 도전이다.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을 알아보다 내일 배움 카드를 신청하고 컴퓨터 학원에 등록하면서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디자인에서 많이 사용되는 프로그램인 포토샵, 일러스트, CAD, 3D MAX를 배워 포트폴리오를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모두 3개월 정도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살았다.      


취업은 '두려움'이었다. 20대에게 서른은 커다란 산을 넘는 느낌이다. 서른 되면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다. 열심히 준비했지만, 곧 서른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조급했다. 이곳저곳 이력서를 넣었고 홍대에 위치한 작은 규모의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곳은 사장님은 아버지, 차장이 아들인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였다. 집에서 가깝고, 그래도 사수 있다. 게다가 나를 뽑아줬다는 기쁨에 감사한 마음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였다. 소규모의 회사들이 그렇듯 일당백으로 일을 감당해야 한다.      


내 위에 사수의 직책은 주임이었고, 그 위가 바로 차장으로 나는 사원이었다.  3명이 일하는 회사로 각각 일당백이다. 사수는 혼자서 거의 모든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했던 일은 매장에서 시공되는 리뉴얼 작업에 도면을 그리는 일을 했다. 보통 CAD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평면도, 입면도, 단면도의 도면들을 친다. 

당시 회사에서는 투썸플레이스 리뉴얼 하청을 맡고 있었다. 대기업에서 리뉴얼 공사 공고를 내면 회사들이 단가를 입력해 낙찰을 받는다. 가장 낮은 가격을 부른 업체가 시공일을 맡게 되는데 두 곳정도 맡아서 일하게 되었다. 


대기업이나 프랜차이즈는 매뉴얼이 위에서 내려온다. 전반적인 인테리어 콘셉트나 바닥, 벽, 천장을 시작해 가구, 조명, 간판 등 모든 것에 매뉴얼이 정해져 있다. 매뉴얼 대로 시공하는 것이 포인트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작업이 완성된 상태의 도면인 '준공도면'을 그려 제출하면 대금이 나온다. 중요한 작업이다. 


경험이 없는 신입으로 일하며 각자의 일이 바빠서 누구도 교육시키는 사람은 없었고, 제대로 일을 배운 게 없었다. 입사한 회사는 녹녹하지는 않았다. 현장에서 잘못된 시공 때문에 직원들이 총출동해 12시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일도 늘어갔다. 체계가 없고, 주먹구구식으로 무작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세상 일들이 다 그런 거지. 세상에 안 힘든 일이 없다’는 마음으로 버티며 야근수당 없는 야근을 계속 이어갔다. 디자인 회사에서 야근은 자주 있는 일이라고 들었지만, 보상받지 못하는 시간과 피로는 점점 쌓여갔다. 가다가 차 사고나 나서 병원에 입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버티며 회사를 다니던 중이었다. 


비 오는 날/ 픽사베이

비 오는 출근길. 전날 야근을 하고 아침출근을 하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달려들었다. 출근하는 차에 치여 철퍼덕 바닥에 떨어졌다. 눈 떠지지 않는다. 얼굴로 차가운 비의 감촉이 느껴진다. 차가운 땅바닥에 누워 배를 움켜쥐며 소리를 질렀다.      


입원한 다음 날. 가위에 눌린 듯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안부전화일까. 회사에 직원은 괜찮냐는 말이 아니었다. "전날 작업한 파일은 어디 있어요?"라고 말했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준공도면이 완성된 파일의 위치를 말해주었다. “얼마나 입원해요”라는 질문에 “3주가 나왔어요”라고 답했다. “알겠다”는 답 외에 다른 말없이 통화가 끝났다.     


병원에 입원하고, 많은 지인이 다녀갔다. 하루에도 1-2명 정도는 문병을 왔던 것 같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전화 한 통, 문병 한 번, 선물 쪼가리 하나를 보내는 이가 없었다. 


3개월 동안 함께 일했는데 안부 정도는 바래도 되지 않을까? 직원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입원했다는데 전화 한 통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큰 욕심을 부렸나 보다. 그렇게 나름 처음 들어갔던 회사를 통해 회사라는 집단에 대한 모멸감을 느꼈다. 물론 모든 회사가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병원에 입원한 사이 계절이 변했다. 여름이었는데 가을이 되었다. 어깨가 벌어지고 결국 전치 5주가 나와 퇴원 후에 통원치료를 받았다. 한 달이 지나고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출근할 거예요?"

"... 아니요"


회사에 대한 불신으로 더 이상 회사를 다니며 사람들을 볼 자신이 없었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일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감정이 표정에 드러나는 성격이라 괜찮은 척이 안 될 것 같았다. 마음이 무거웠다. 일상으로 복귀하여 사고 이전으로 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달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지금 생각하면 회사를 그만두고 우울증과 무기력에 빠져 있었다. 실패를 극복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일상을 회복하고, 제대로 걸어다는 것이 먼저였다. 생명의 위협을 느꼈고, 차에 치여 죽었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인생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후 회사에 얽매여 살지 않는 '자유인'이 되자는 다짐을 하였다. 

   

‘꼰대’라는 불리는 어른들이 ‘요즘 친구들은 끈기가 없다’며 오래 일하는 사람들을 못 봤다는 말을 한다. 그렇다면 회사는 직원에게 신뢰를 주었을까. 내가 경험한 회사는 인간을 어떤 하나의 기계의 부속품 생각하고, 언제나 스페어를 준비해 다른 부속품으로 바꾸면 되는 곳이었다.     


영화 <달콤한 인생>

김지운 감독의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배우 김영철이 맡은 강 사장의 캐릭터의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라는 대사는 대중들의 기억에 남을 정도로 회자되었다. 성대모사를 통해 매체에서 패러디가 될 정도로 유행어로 들려왔다. 내연녀와 믿었던 부하에게 배신당한 강 사장이 내뱉은 말이다.      


유행어를 본 순간 이거다 싶었다. 회사에게 느꼈던 감정을 정리하기 힘들었다. 단순히 화가 난 것인가 싶었지만, 정확한 표현을 찾고 싶었다. 회사는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다. ‘모욕’은 깔보고 욕되게 함이라는 뜻을 가졌으며 모멸, 경멸, 업신여김이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를 가지는 단어다.     

  

대부분의 회사의 목표는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다. 회사 안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회사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고용되어 돈을 받고 일을 한다. 일을 할 때 누구에게나 어떤 형태로든 모멸감을 느끼는 경우는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다. 


회복탄력성을 기를 필요가 있다. 모욕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감정에 함몰되어 자신을 힘들게 하지 말고 자신을 지키자. 거기서 벗어나는 훈련이 필요하다. 내가 나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좋은 것은 서로를 배려하며 모멸감을 느끼지 않는 환경이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잘 지내?'라는 안부 인사가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말 일지도.

서로에게 따듯한 말 한마디를 건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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