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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몽 Oct 15. 2023

사람아, 앞만 말고 뒤도 보고 살자

직업체험: GIS 지도회사 CAD 직원

클립아트코리아

오랜만에 김포에 사는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언니가 다니는 회사 이야기가 나왔다. 작은 규모의 디자인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언니는 새롭게 들어온 나이가 어린 대리가 무례하게 굴었다는 얘기였다.    


“제 거 먼저 해주셔야죠” 

“대리님. 15분 전에 저한테 일 주셨잖아요. 다른 분들 다 바쁘고, 다 급한데 대리님만 급하세요?” 


대리는 언니의 말에 순간 민망해졌다. 그리고 자신의 무례한 태도를 깨달았는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다음부터는 언니에게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였다면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을 텐데. 이상하게 죄송한 일이 아닌데 죄송하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늘 그랬다. 을 밑에 병 아니 정의 입장이라 그런가.   

언니의 태도가 너무 멋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곱씹어봤다. 당연한 일인데 왜 나는 박수를 쳤지? 대리가 무례하게 행동한 것은 잘못된 행동이었고, 제대로 그 일에 대해 지적한 것인데.


일상에서 무례한 사람을 만났을 때 “불편하네요”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면 세상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아니면 반대로 더욱 화를 내는 사람을 만나게 될까. 그러면서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을 불편하게 되지는 않을까. 김포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만난 무례한 사람이 떠올랐다.




CAD 프로그램을 할 줄 알아 우연히 GIS 지도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여러 곳에서 2년 정도 일했고, 선택적 비정규직의 삶은 눈치를 보거나 야근이 없어서 좋았다. 그러나 퇴직금과 직원복지도 없다.     


9시 출근에 6시에 칼같이 컴퓨터를 끄고 짐을 싸서 홀연히 회사에서 사라진다. 정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비정규직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이다. 비정규직 급여는 월급이라고 하지만, 최저시급에서 산출된 금액이다. 


심지어 어떤 회사는 주유수당까지 포함되어 있는 월급을 제시하는 곳도 있다. 언제든 그만둘 수 있고, 붙잡지도 않는다. 불필요한 회식이나 인간관계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지도 회사는 지도앱이나 인터넷에서 지도를 만드는 일을 한다. 도로, 건물, 강, 산 등 2D로 만들어져 있다. GIS 분야라고 불리는 지도회사는 생각보다 다양한 분야가 있다.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지리학을 기반으로 컴퓨터 작업을 하는 직업이다. 실제로 차량을 운행하여 거리뷰를 찍기도 하고, 항공사진을 찍어서 실사를 보여주기도 한다.      


주로 CAD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도로나 새롭게 생기는 아파트를 그리는 단순 작업 일을 했다. 건물과 도로는 새롭게 생겨나고, 정비된다. 업데이트하는 작업을 계속한다. 주어진 내 일만 하면 되어서 너무 좋았고,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만족감도 높았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자유로워서 좋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주변에 사람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일하기 싫으면 안 하는 생활과 모은 돈으로 여행을 다니며 욜로(You Only Live Once’의 생활을 살았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계절. 구로디지털단지에 있는 지도회사를 다니던 시절이었다. 나름 규모도 있는 회사였고 팀들도 여럿 있었다. 면접을 볼 때 경력을 인정해서 다니다 보면 시급을 올려준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계약직을 관리하는 주임은 언제나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며 주변에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매일 얼굴이 퀭하게 지쳐 보였고, 뭐 하나 물어보면 불편하고 미안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다른 직원의 말로는 회사에서 일을 많이 시켜서라고 했지만, 얼굴에 모든 감정이 드러나는 사람이라니. 지도 회사를 다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지도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었다.      


CAD 직원으로 고용된 직원들은 GIS를 전공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프로그램을 할 줄 알아 고용된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주임은 전문적인 작업을 한번 설명하고 모두 알기를 바라면서 이해를 못 하면 한숨부터 쉬었다. 그럴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때를 생각하면 왜 나는 그런 무례한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는지. 왜 직접 말할 생각은 하지 않았는지 이불킥을 날린다.       


엄청난 감정 소모를 감수하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다. 굳이 무례한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되고, 연락을 피해도 되는데 예의 바른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무례한 사람들의 무례를 모두 받아줄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그때만 생각하면 주임에게 아니면 그 위에 과장에게 “불편하네요”라는 말을 했어야 했다. 아!! 말했어야 하는데.




정문정 작가의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방법>이라는 책은 출간하고 빠르게 화제가 되었다. 생각보다 무례한 사람은 많고, 그런 사람에게 제대로 대처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을까?


어딜 가나 무례한 사람이 계속 존재하는 이유는 무례한 것을 무례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무례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잘못된 일인지 모르고 계속 행동하며 자신이 무례한 사람인지 모르는 게 문제다.     


“가끔 일상에서 쓰레기를 휙 던지고 가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웃거나 정색하면서 대응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찌할 수 없이 무기력해지는 사람도 있다.”라고 정문정은 말했다. 


무기력한 사람이 더 많고, 나도 그렇다. 또한 권력관계가 확고한 상황이었다. 받았던 상처들을 곱씹으며 ‘제대로 말해줬어야 했는데...’라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고 후회했다. 매번 웃으면서 쪼는 사람 찡그리면서 쪼는 사람 밑에서 누가 남아날까.


가끔 이런 상상을 했다. 불친절한 주임이 나의 후임으로 들어와 복수를 해주거나, 내 가족과 결혼하러 온다면 결사 반대하는 상상들 말이다. 거리에서 만나더라도 아는 척을 안 할 거라는 다짐도 했다. 그쪽에서 못 알아볼지도.

     

첫 번째 지도회사에서 일했던 사람과 다른 회사에서도 만났다. 예전에는 별로 말도 안 섞고, 친하지도 않았는데 다른 곳에서 다시 보니 반가웠다. 세상 좁다는 말을 실감했다. 어디서든 만날 수도 있는데 세상을 참 좁게만 살아가고 있구나. 


얼굴 찡그리며 일하던 직원을 다시 만날 수는 없지만 이렇게라도 전하고 싶다. 

"너! 밤길 조심해라! 그렇게 살다가 뒤통수 맞는다!!"      


아무리 하찮고 별거 아닌 만남에도 이유가 있다.  사람 일은 어찌 될지 모른다. 그래서 잘 살아야 하고, 처음도 중요하지만 끝맺음이 더 중요하다. 지도와 관련 없는 내가 지도 회사에서 일하게 될 줄 몰랐던 것처럼.


사람아, 앞만 보지 말고 뒤도 좀 보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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