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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몽 Oct 13. 2023

'선생님'은 교육자인가? 서비스직인가?

직업체험: 유치원 보조교사, 미술교사

어린 시절 옆집 아이를 보러 자주 갔다. 신나게 아이와 놀고 집에 돌아갈 때면 아주머니께서 천 원씩 돈을 주셨다. 7살이던 나보다 더 어린 2살 배기 아이를 돌보고 노동의 대가를 받았다. 이를 계기로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긍정적인 경험으로 자리를 잡았다. 두 살 세 살 되는 아이를 돌보고 있으면 옆집 아줌마는 집안일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나를 보고 웃어주는 아이의 모습도 즐거웠고, 그런 나를 좋아해 주는 어른들의 반응도 좋았다. 무관심 속에서 자랐던 아이가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에 동네의 아이들을 돌봐주고, 옆집 아이와 놀아주었다. 칭찬이 고팠던 아이였다.    

   

모든 아줌마들이 돈을 주신 건 아니었다. 옆집 아줌마만 돈을 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를 돌보는 일은 나이 불문하고 힘든 일이고 아줌마는 나의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 주신 것 같다. 돌이켜보면 아줌마는 ‘독박육아’로 혼자서 아이를 돌보고 계셨다.     


돈을 받으려고 시작했던 일은 아니지만, 집으로 돌아갈 때 받았던 천 원은 웃음을 주었다. 즐거움으로 남은 추억은 어른이 되어 선생님이라는 직업 선택에 설탕 한 스푼 정도의 영향을 주었다.




처음‘선생님’이라고 불리던 시절은 새로운 진로를 탐색하며 대학 편입을 준비하다 재수를 하던 있었다. 대학 졸업 후라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없어 돈을 벌기 위해 선택했던 직업이 영어 유치원 보조교사였다.      


어린 시절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던 아이 돌봄은 유치원 교사라는 직업을 스스럼없이 선택하게 했다. 아이들을 좋아하기도 했고, 아는 분의 소개로 일하게 되었기에 걱정 없이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졌다.


보조교사로 일했던 영어 유치원은 4-6세 아이들이 다녔고, 거기서 5세 반 보조교사로 아이들이 6세가 되기 전까지 함께 보냈다. 보조교사의 하루는 아침에 유치원 봉고차를 타면서 시작된다. 

 

유치원 봉고차에 아이들을 시간에 맞게 태우러 가서 약속된 위치에 나와 있는 아이와 부모님과 인사하고 유치원까지 오는 과정을 두 차례 반복한다. 그리고 오전 간식을 챙겨서 아이들에게 배식하고, 아이들의 이름이 붙어있는 사물함에 가방과 옷가지들을 넣고 테이블에 앉아 오늘의 간식을 먹으면 수업이 시작된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무언가를 배운다. 신발을 벗고 자기 이름을 찾고 거기에 물건을 놓는 법을 배우고, 자기 이름을 찾아 물건을 놓기, 도움 없이 혼자서 밥을 먹기, 엄마와 떨어져서 지내는 시간을 보낸다. 처음 아이들은 엄마와 떨어져서 울지만, 또 잘 지낸다. 그렇게를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반복하면 아이도 적응을 하고 괜찮아진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부모의 모습이 보인다. 아이니까 동요만 부를 줄 알지만 아니다. 가요를 부르는 아이들도 있다. 습관처럼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들은 부모님이 어떤 말을 하시는지 어떤 노래를 들으시는지 본의 아니게 알려준다. 아이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흥얼거리는 그 모습도 귀여웠고, 조건 없이 달려와 안기는 아이도 사랑스러웠다. 1년을 그렇게 지냈다.      


편입 실패 이후 진로를 고민하다 전공을 살려 미술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3년 정도 가르쳤다. 책임감이 더 커졌다. 누구도 책임지라 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강함 마음이 있었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아무래도 학부모와 멀어질 수 없는 직업이다. 


원장님은 학부모 전화 상담을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목소리톤을 한 톤 올려서 말하라고 조언해 주셨다. '솔'톤이라고 하던가. 내 기분과 상관없이 밝은 톤이 영 어색했다. 목소리톤이 낮아서 더 힘들었다. 전화 상담 서비스 직원에게나 요구할 법한 사항이 아닐까. 


공교육을 제외한 사교육의 선생님은 서비스직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아이의 학원 등록이 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가끔 아이를 잘 돌봐주어 감사하는 인사를 받거나 선물을 받을 때는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하는 일들이 헛된 것은 아니었구나. 


그러나 좋은 일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교사 일을 하면서 원장님이 학부모에게 멱살을 잡히는 것도 보았다.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그냥 조금 고급 스킬을 가진 돌보미 정도일까. 


어떤 학부모는 같은 반 아이가 자신의 아이를 괴롭혔다며 수업 중에 찾아와 아이에게 손가락질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지금에 초등학생이 되었고, 중학생이 되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터져야 할 일들이 터진 게 아닐까.      


요즘 서이초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교사의 교권이 무너졌다는 뉴스들이 쏟아져 나온다. 결국 상처가 곪아 터져 고름이 흘러넘치고 있다.  


과거에는 교사에게 주어진 강력한 권위를 이용해 폭력을 행사하거나 성희롱을 하는 교사들도 있었다. 선생님의 나쁜 행동에도 아이에 편을 들기보다 자식을 잘못 키웠다며 부모들이 고개를 숙이던 시대였다. 그때도 잘못됐지만, 현재도 옳은 것은 아니다.      




입시학원이나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선생님의 월급은 많지 않다. 박봉이다. 들어가는 정성에 비해 돌아오는 것이 별로 없다. 사명감이 없이는 힘든 직업이다. 그러나 '보람'으로는 자본주의를 살아가기 힘들다. 언론에서는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했던 선생님에 대한 해결책으로 교사들의 월급을 인상해 줬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돈을 더 많이 받으면 덜 힘들겠지라는 안일한 태도다. 교육이 아닌 서비스로 인지하는 방증이다. 인간을 돌보는 일에는 '사랑'의 마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개인주의에서 '핵개인'이 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생명이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신께서 한 개씩만 주셨다. 소중한 목숨을 버리는 극단의 선택을 하게 만든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아동학대 신고는 '선생님'을 대하는 태도가 아닌 학교라는 회사에서 일하는 서비스직 직원을 대하는 것 같다. 

   

교사에 교권이 무너졌다는 얘기를 듣고 아이러니했다. ‘교권’ 이전에 ‘인권’이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예의가 무너진 게 먼저다.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 작은 일에도 상처받고 울기도 하며 작은 위로와 감사하다는 말에 감동하는 존재다. 우리 모두는 그런 '휴먼'이다. 


다시 묻는다. 선생님은 교육자인가? 서비스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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