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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몽 Mar 18. 2024

아무 데도 가지 않는 여행

에필로그

인생을 사는 것에 여행을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여행을 삶의 축소판으로 보고 뜻하지 않는 일이 생긴다거나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을 만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선 여행지에서 겪는 힘든 일들은 별수롭지 않게 웃어넘기면서 일상에서 겪게 되는 작은 힘든 일에도 버럭 화를 낸다. 일상에 익숙함을 통해 감각의 무뎌짐은 사람을 여유 없게 만든다.

    

‘여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이 있다. 새로운 도시, 사람, 음식들을 동경하며 나와 다른 것들을 동경했다. 그렇게 돌아다닌 나라가 인도, 일본, 스리랑카, 몽골,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대만, 영국, 프랑스, 체코, 필리핀으로 혼자, 친구, 가족 등 여러 형태로 다녔던 여행을 다녔다. 

   

지난 여행에 추억의 기억을 더듬으며 글로 남기는 작업은 힘들었다. 분명 여행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힘들거나 좋았는데 막상 정리해서 남기려니 막막했다. 한참 지난 여행 후기를 쓰는 것이 막막했고, 여행글이라는 것에 개념도 모호해서 힘겹게 써냈던 것 같다. 


처음 연재글이라는 것을 써보면서 회차를 거급할수록 내가 쓴 글 속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모르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마도 여행이 주는 묘미가 이런 게 아닐까. 내가 모르는 나를 만나는 일. 그래서 여행을 좋아한다.


4년 동안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에 나에게 여행이란 무엇일까?' 예전이라면 쉼을 얻거나 새로운 모험을 하면서 발상의 전환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행을 하면서 이런 경험들을 많이 했기에 틈이 생기면 여행을 갔다. 


여행은 나에게 속한 모든 것들에서 떠나는 일이었다. 나를 어떠한 편견 없이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속으로 가는 것이었다. 나를 어떤 누구도 모르는 곳으로 순간이동을 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여행으로 자유했고, 내가 만든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갈망했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는 이렇게 말했다.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찾아 또다시 떠나고 싶어지면 나는 다른 어디도 아닌 뒷마당을 돌아볼 거예요. 그곳에 없다면 애초에 잃어버린 적도 없을 테니까요.”

모험의 서사를 가진 이야기는 주인공이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 떠나는 경우가 많다. 주인공은 원하는 것을 어렵게 얻어내고, 여행의 여정에서 새로운 것을 깨닫고 성장한다. 여행도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도로시가 말한 것처럼 모험이라는 것이 현관문을 열고 집밖으로 나가야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도 여행처럼 살 수는 없을까. 의문이 생겼다. 왜 여행에서는 새로운 시선과 여유로움이 생기는데 일상에서는 안 되는 것일까. 일상을 여행처럼 산다면 삶이 풍요로워지고 매일이 새로울 텐데.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간다면 신날 것 같다.   


요즘 공원 산책을 즐긴다. 걷기를 하면서도 여행을 하는 느낌을 받았다. 일상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생각보다 그냥 흘려보내는 것들이 많다. 익숙하다는 함정에서 벗어나 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보자. 쉽지는 않았다. 그게 그거지 별반 다를까 싶었다. 


새롭게 보려고 노력하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 예전에는 걸을 때 음악을 듣거나 핸드폰을 만지작 걸렸다면 지금은 오롯이 걷기에만 집중하고 있다.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지 주변이 보였다. 산책을 하는 사람, 나무, 새, 길,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계절의 변화를 온전히 느끼며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날아다니는 새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하며 단단한 껍질을 뚫고 나오려는 꽃 봉오리를 보며 응원했다. 


공원에 핀 개나리

피고 아이어가 쓴 <여행하지 않을 자유>에서 “아무 데도 가지 않는 행위는 세상에 등을 돌리고 집안에 틀어박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때로는 한 걸음 물러나서 세상을 좀 더 명료하게 바라보고 더 깊이 사랑하려는 행위다.”라고 말했다. 아무 데도 가지 않는 새로운 여행을 제시해 주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세상을 바라보고, 나를 바라보는 여행이다. 아무 데도 가지 않는 여행이 주는 새로움이 기대된다. 아무 데도 가지 않음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고, 현실에 몰두하며 앞만 보던 삶에서 한 걸음 떨어져 세상을 보게 된다.


 내가 있는 곳이 천국이라고 생각하면 천국이고, 지옥이라고 생각하면 지옥이 되듯이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생각이 중요하다. <햄릿>에서 셰익스피어도 “이 세상에서 항상 좋거나 항상 나쁘기만 한 것은 없다네. 다 생각하기 나름이지.”라고 말했다.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생각하기 나름이다. 당분간은 아무 데도 가지 않는 여행을 통해 '나'를 발견하는 모험을 즐겨보려 한다. 역시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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