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판타지 공간_신들의 목욕탕
일본에서 ‘목욕’은 새롭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말을 반영한 유바바는 일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을 내칠 수 없는 계약서를 가졌다. 이런 설정이 치히로가 목욕탕에서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다. 또한 치히로는 이 세계의 음식을 먹고 돼지로 변한 부모님을 구하려고 머물게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주로 등장하는 판타지 공간은 유바바의 목욕탕으로 일명 신들이 더러워진 몸을 목욕하고 가는 곳으로 그려진다. 해가 떴을 때는 황폐하고, 아무것도 없는 들판이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새로운 공간으로 변신한다.
이 거대한 건물 앞에 커다란 다리가 놓여 있고, 치히로가 다리에서 건물을 바라보는 모습을 미소년이 와서, “여기 오면 안 돼. 빨리 돌아가. 밤이 되기 전에”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밤이 된 이 세계에 치히로의 부모님은 돼지가 되었고, 돌아가는 길은 물이 들어차 강이 되어 돌아갈 수가 없는 상황이 된다. 갑자기 그 강에서 유람선 같은 것이 도착하더니 이상한 가면을 쓴 일행이 줄지어 내려와 ‘온천’이라 불리는 유바바의 목욕탕 건물로 향하는 기묘한 광경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유바바의 온천 목욕탕은 과거를 잃어버리게 하는 장소로 치히로가 이름을 빼앗기고, 판타지 공간을 통해 평범한 소녀에서 가족을 구하는 영웅으로 거듭나게 만든다. 온천 목욕탕 공간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불’이다. 옛날부터 집 안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취사를 하는 ‘아궁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왜 그곳이 중요한가 ‘불’을 다루는 곳이기 때문이다.
미야자키가 만든 애니메이션에서는 반드시 이 ‘불’을 다루는 곳이 나온다. ‘불’이야말로 문화를 지탱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불’은 문화를 창조함과 동시에 무기를 만드는 것으로도 중시되어 왔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아부라야’는 거대한 목욕탕이다. ‘뜨거운 물’을 조달하기 위해 거대한 보일러로 물을 끓이고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 수 있다. 그 보일러를 담당하는 자가 ‘가마 할아범’이라고 불리는, 팔다리가 여러 개 있는 캐릭터이다. 그도 치히로를 도와주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목욕탕이라는 공간은 친숙한 공간이다. 살면서 한 번은 대중목욕탕에 가봤을 것인데 거기에 사람이 아닌 신들을 상대하는 목욕탕이 있다면 어떨까. 평범한 장소에 특별한 캐릭터를 대입시키며 새로운 판타지 공간을 구축하였고, 평범한 여자 아이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게 만들어 우리를 신비의 세계로 초대한다.
평범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서사라 상상하기가 편하다. 판타지는 공간과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중요하다. 처음에 감정을 이입하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준비하고 빠르게 들어가서 마치 아바타에서 꼬리로 접속해서 교감하는 모습처럼 신세계에 접속하는 과정이 무리 없이 빠르게 이어져야 다음 이야기를 볼 수 있기에 평범하고 익숙한 공간을 이용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다.
게다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자신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이 모든 것들이 혼돈되는 세상에서 쉬운 일이 아님을 알려준다. 그러나 그것을 놓아버리는 순간 ‘나’는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고, 너도 우리도 아닌 무의미한 존재로 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참고자료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2.
무라세 마나부, 정현숙엮음, 『미야자키 하야오의 숨은 그림찾기』, 한울,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