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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욕망을 통한 <아마데우스>의 등장인물 연구 3

희곡 안에 드러난 안토리오 살리에리의 욕망 분석과 마무리

by 박하몽


살리에르 영화-1.jpg 영화 <아마데우스> 노년의 살리에르


# 1막에 드러난 살리에리의 욕망

1막에서 살리에리는 왕실의 제1악장의 자리에 오르고 싶은 욕망을 가진다. 그 시대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궁중 작곡가이며 황제를 받들고 있었다.


살리에리 : … 하나님에 대한 맹세를 지키기 위해 난 처에게 극히 충실했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교사지요. 가난한 음악가들의 운명을 개선해 주기 위한 각종 위원회의 창설자로 뛰어왔습니다. 나의 야심은 꺼버릴 수 불꽃이 되어 타올랐습니다. 그 첫 번째 목표가 왕실의 제1악장의 자리였습니다. 당시에 그 자리는 70세의 노인이면서도 불사신과도 같은 주제페 본노가 (그를 가리 키다) 맡고 있었습니다. (1막 3장)


그러나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음악을 처음 듣는 순간 그는 강력한 힘에 압도당하고 만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 자신이 신의 은총을 받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신을 영원한 적으로 삼고, 신의 총애를 받는 모차르트를 통하여 신에게 도전한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악보를 찢어대는 1막의 끝이 살리에리에게 새로운 욕망이 생겨났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살리에리 : …그런데 당신을 경건히 섬기는 사람에게 이처럼 창피를 주시려 하나이까. 고맙습니다! 당신은 당신을 찬미하는 소망을 제게 주셨습니다-대부분의 사람들이 갖지 않는 건데-그 러그는 저를 벙어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뛰어난 식별 능력을 제게 주셨어요-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알지도 못해요!-그리고 저를 영원히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소리에 힘이 치솟는다) 왜 그러십니까?…… 제가 뭘 잘못했습니다.…… 오늘까지 전 엄하게 덕을 쌓아왔습니다. 벗을 구원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바쳤습니다.


(중략)


결국 제가 이 세상을 이해하려고 예술에 몸과 마음을 바치는 건 오직 하나, 당신의 소리를 듣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전 당신의 소리를 듣습니다-오직 모차르트를 부르는 당신의 소리 말입니다!…… 악의에 차고, 시건방지고 잘난 척하는 철딱서니 없는 모차르트!-타인을 돕기 위해서는 완전히 몸을 사리고-마누라에게 엉덩이를 얻어맞으며 배설물 소리나 지껄이는 모차르트!


(중략)


좋습니다! 이제부터 우린 앙숙이오, 당신과 나는! 나는 이제 당신의 소리를 귀담아듣지 않겠소 이다-듣고 있는 거요?…… 신을 조롱하지 말라고요?…… 흥. 인간을 조롱하지 마시오!…… 나 는 조롱당하지 않을 것이오!…… 신의 혼은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곳으로 불린다고요? 어김없는 말씀! 신은 미덕에 귀를 기울이지, 이리저리 불려 날아가서는 안 될 것이오! 당신 말에 순 종하려는 것이 아닌 바에, 도대체 그 덕이란 것을 어디에다 쓸 거요?…… (1막 12장)


# 2막에 드러난 살리에리의 욕망

2막에서 모차르트가 어떤 명곡을 발표하려는데 살리에리는 온갖 간악한 술책을 써서 모차르트를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좌절과 절망의 늪으로 몰아넣음으로써,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 모차르트가 죽은 후, 살리에리는 신의 원망과 관계없이 소망했던 바대로 음악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흡족할 만한 명성을 손아귀에 넣게 된다.


살리에리 : … 성공을 생각할 때마다 난 막연하게 겁이 났었습니다. (사이) 나의 친구들이여, 만 일 내가 겁을 먹게 된 까닭을 깨달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러나 난 그렇지 못했습니다. 겁도 없이 나의 성공 속으로 뛰어들었지요! 사람들은 나의 머리를 황금의 칭찬으로 채워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은 금빛나는 가구로 가득 찼습니다. (2막 3장)


살리에리 : … 난 신조차도 성공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세계를 바랐던 것입니다. 바로 비열한 자들이 들끓는 인간의 세계라 할 수 있는 것이죠. 신이 해줄 수 있는 건 나에게 그러한 세계의 왕이 되게 왕관을 씌워주는 일이었습니다. 비열한 사람들의 명확한 총아라는 것이죠!(2막 10장)


그러나 살리에리의 명성에의 갈증은 더해만 가고 그는 궁극적으로 자기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 모차르트를 자기가 독살했다는 소문까지 퍼뜨린다. 그것은 모차르트를 심리적으로 살해했다는 양심의 죄책감이 아니라 오직 명성에의 끝없는 갈증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어주지 않았다.


살리에리 : 아! 내 친구들이여, 여러분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 사랑을 느끼게 될 것이오! 신은 사랑을 하진 않습니다. 신은 그저 이용만 할 뿐입니다. 연민의 정도 없단 말입니다. 오직 인간 만이 동정을 할 수 있고, 염치를 알 수 있는 거죠. 오직 인간만이- 외로이. (사이) 얼어붙은 반 민굴에서 나의 희생자를 보았습니다. 나는 가면을 쓰고 서서 나의 작품을 본 것이죠. 신의 창조물인 모차르트에게 가한 칼자국을 말입니다. 모든 희망이 이제 냄새나는 상처가 되어 신을 부정한 것입니다. 내가 살인자인 사실을 본 것이죠. (단순하게) 그래서 난 이렇게 자백을 한 것입니다. …… 아마 온 도시에 소문이 퍼질 것입니다.


(중략)


살리에리 : 그리고 그가 죽고 난 후에도 인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그는 죽어야 했고- 보다 신명 나게 크게 이야기를 하겠죠. 모차르트의 명성이 커질수록 나도 유명해질 겁니다. ‘모차르트를 독살한 자. 살리에리’ 이렇게 말이죠. 영원한 두려움. 더욱더 한층! 이 것이 내가 속죄하는 길이겠지요. (2막 17장)

살리에리가 종국에 깨닫게 된 것은 자기의 작품이 얼마나 하잘것없는 것인가에 대한 뼈저린 인식이었고, 그것은 고뇌로 전달되는 신의 벌이기도 했다.


살리에리 : (위를 올려다보며) 그래서 적- 난 기어코 속죄할 겁니다! 여러분은 그걸 막을 힘이 없을 것이고! 이 세상은 내가 살해하지 않았던 살인죄를 결코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부당함을 나의 정의라고 합시다. 그래야 여러분과도 짝이 맞지 않겠어요!


(중략)


살리에리 : …… 어차피 모차르트가 되지 못할 바엔 다른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그는 돌아와서 그의 바퀴의자에 앉는다.

내가 어떻게 비로소 모차르트를 독살했는지 허위 자백서를 썼습니다. 짤막하고 설득력 있게 말입니다. 또 그렇게 된 이상 나도 더 살 수 없다는 것 등이죠. 오늘 밤쯤이면 모든 비엔나 사람 들은 알게 될 겁니다. 내가 그저 사람 좋고 고루한 무해무득한 자라고 낮추어 치부하게 해 둡시다……! (2막 20장)






아마데우스 살리에리.jpg 영화 <아마데우스>

<아마데우스>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살리에리라는 노력파 음악가와 신의 은총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 천재적 음악가 모차르트의 예각적 갈등을 묘사한 듯하지만 사실은 인간에게 있어서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과연 예술은 인간의 노력으로 얼마만큼 성취할 수 있는 것인가를 성찰하게 하는 이야기다.


가령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지켜보면서 신을 원망하는 것도 실은 인간의 한계성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시 이상은 아니다. 피터 셰퍼의 관심은 역시 인간이다. 그 인간을 탐구하면서 그 영역을 절대자에게까지 확대한다. 궁극적으로 피터 셰퍼가 질문하는 것은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예술이란 결국 인간 탐구라고 볼 때, 피터 셰퍼의 자세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에쿠우스>나 <아마데우스>는 가장 모범 답안이 되는 것이다.


살리에리 캐릭터는 인간의 모습과 맞닿은 부분이 많다. 끝까지 명성을 포기하지 못하는 그의 욕망은 자신을 살인자로 불리게 하는 극한의 상황까지 몰아넣으며 자기 파멸의 길로 이끌고, 결국 죽음으로 밖에는 욕망을 끊어 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만든다.


세상에는 모차르트와 같은 존재보다는 살리에리 같은 존재들이 더 많이 존재한다. 내가 살리에리를 선택한 이유에도 같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라는 인물을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 파멸로 이끌어 가는 안타고니스트다. 그러나 그를 무조건 적으로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인물의 욕망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가 욕망하는 지점과 같은 욕망을 품고 있는 살리에리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변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런 우리의 모습을 살리에리라는 인물에게 모차르트라는 한계를 만나게 함으로써 살리에리 자신도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게 만들어 준 것이다.


살리에리가 바라던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던 인물을 통해 자신의 결핍을 바라보게 되고, 결국 그 결핍은 욕망으로 이어지지만, 자기 파멸이라는 비극을 만들어 내게 된다는 메시지도 전달하고 있다.




참고자료

Peter Shaffer, 『아마데우스』 신정옥 역, 범우(주),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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