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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춘기가 끝나가는구나

엄마는 왜 이렇게 잘 삐쳐요?

by 사월

큰애 가방을 수선할 일이 있어서 백화점에 가야 했다. 간 김에 저녁을 먹고 오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온 가족이 백화점으로 출동했다.


현관문을 나서며 푸름이에게 문화상품권을 챙겼는지 물어봤다. 연말에 회사에서 상금으로 받은 문화상품권이 딱 한 장 남았길래 푸름이에게 며칠 전에 줬던 터였다. 푸름이는 밥 먹고 서점에 갈 생각이어서 당연히 챙겼다고 했다.


밥을 먹자마자 푸름이는 일어서며 서점에 가겠다고 한다. 맑음이도 향수를 보겠다며 같이 나선다. 이렇게 큰애 따로 우리 부부와 깨꿍이 따로의 시간이 만들어진다.


한 시간이 흐른 뒤 서점 앞에서 푸름이를 만났다. 역시나 손에는 책이 한 권 들려 있었다.


"엄마가 준 상품권으로 책 산 거야?"

"아뇨~"


상품권을 분명히 들고 왔는데, 핸드폰을 꺼내면서 빠진 것인지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백화점 1층부터 9층까지 왔다 갔다 했다고 한다.


"힝.. 속상해. 엄마가 준 소중한 것을 자꾸 잃어버리니까 정말 속상하다."


지금까지의 푸름이라면 내 말에 다음과 같이 반응했을 것이다.

얼마 되지도 않는 건데 그러냐, 나도 열심히 찾았는데 없었다. 엄마는 상품권이 소중하냐 내가 소중하냐 하며 다다다다 따지거나 입을 닫거나 했을 것이다.


푸름이가 갑자기 내 예상과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 아주 여유로운 표정으로 엄마를 놀린다.


또 삐쳤어요? 엄마는 왜 이렇게 잘 삐쳐요.
제가 나중에 상품권 사 줄게요.
문화상품권 말고 백화점 상품권으로 사다 드릴게요.


마치 아이 대하듯 한다. 이런 여유로움이 어디서 나온 거니?


푸름이 사춘기가 이제 끝나가는 게 보인다. 아니 끝난 게 보인다. 예전에는 엄마의 조그만 단점 하나도 엄마의 전체 모습으로 일반화해서는 엄마를 비난하거나 거부하더니 이제는 이런 게 보이면 엄마에게 장난치며 놀리기도 하고 웃으며 넘기는구나.


이제 너에게 엄마는, 넘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동반자가 된 듯하구나.

고맙다! 힘든 시간 잘 보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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