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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Mar 18. 2023

[공개 일기] 토요일: 추억의 과자

어제는 늦게 잠자리에 들었어. 금요일 밤이잖아.

11시 넘어서 초록이와 누워 책을 읽고 있는데 남편이 들어오는 거야. 그 시간에 퇴근을 한 거지. 남편은 보통 늦게 퇴근해.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방에서 소리가 들리면 이렇게 들어와서 인사를 하고,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간식을 먹으며 조용히 거실에서 작업을 하지.


남편이 들어오면 잠들락 말락 하던 초록이 눈이 갑자기 반짝반짝 빛나. 그러 반가운 목소리로 "아빠!" 하고 외치지. 초록이는 인사하고 나간 아빠를 졸졸 따라가기도 하고 아빠가 배 고파서 라면이라도 끓이면 라면 한 젓가락을 얻어먹고 오곤 해.


아... 나는 한숨을 쉬지... 언제 재우냐고...  또 책을 이만큼 읽어 줘야 하느냐고...  내 눈은 감기고 있는데 말이지.


어제는 남편이 나에게 먼저 빨간 작은 상자를 주더니 초록이를 한번 안아주는 거야. 뭔가 하고 봤더니  '나!'라는 과자였어. 이 시간에 여기서 이걸 나에게 주면 어쩌라는 거냐고 물었더니 내일 먹으라는 거야. 본인 먹을 과자를 사러 갔는데 내가 좋아하는 이 과자가 작은 사이즈로 나왔길래 반가워서 사 왔대. 

나는 이 과자를 머리맡에 두고 잤어. 초록이가 먹자고 조르지 않은 걸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나!' 과자는 역사가 깊어. 내가 대학교 4학년 때 처음 접한 과자인데, 처음 먹고 그만 반해 버렸어. 부드럽고 달콤한 쿠키 사이에 진한 치즈 크림이 두껍게 들어가 있는 과자였거든. 한 통을 다 먹으면 정말 든든했지. 물론 식후에 먹었다는 것은 안 비밀. ㅎ


이 과자를 남자친구(지금의 남편)와 데이트할 때마다 자주 먹었어. 남자친구는 내가 이 과자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인문대 뒤에 있는 마트에 갈 때마다 이 과자를 사서 들고 왔거든. 둘이 벤치에 앉아 수줍게 이 과자를 나눠 먹었던 기억이 나.(당연히 내가 더 많이 먹었지만....) 갑자기 이 과자 덕분에 연애 시절 내 몸과 얼굴이 동글동글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 근데 이걸 대신할 만한 게 없었어. 부드러운 쿠키에 크리미 한 달콤함은 정말 특별했거든.


남편과 보낸 시간과 이 과자의 역사가 거의 일치하는 것 같아. 우리가 만난 지 벌써 20년이 넘었거든. 이 과자를 처음 만났을 때 가격이 700원이었던 것 같는데, 이마트몰에서 가격을 검색해 보니 1400원이라고 돼 있어.



23년 동안 물가가 이렇게 올랐네.


아침에 일어나 라테 한잔을 탄 뒤 어제 남편에게 받은 '나!' 과자를 뜯었어. 23년 전 남자친구와 함께 먹던 그 과자를 오늘은 그 남자친구를 똑 닮은 초록이와 먹었어. 근데 내가 두 개 먹는 동안 초록이가 나머지를 다 먹은 거 있지? 양손에 하나씩 들고 조그만 입으로 오물오물 먹는 모습이 귀여웠어. 울 초록이도 이 과자가 맛있나 봐. 그 당시 남자친구는 나에게 많은 양을 양보했는데, 그를 똑 닮은 아이는 나에게 양보하지 않고 다 먹어버리네. ㅎㅎ 외모는 아빠, 식성은 엄마를 닮았나 봐.


추억의 과자가 23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대로 있어 준 게 참 고마운 하루였어. 누군가에게 나도 그런 존재였으면 좋겠어.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현재 같이 있는 존재.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오래된 모임의 구성원들에게 난 그런 존재이겠지? 첫 시작을 함께한, 아직 오래되지 않은 모임의 구성원에게도 시간이 흐른 뒤 난 그런 존재가 되겠지? 그럴 거라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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