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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Mar 20. 2023

[공개 일기] 월요일: 남편과 데이트

오늘은 남편과 데이트를 했어. 요즘 입을 옷이 없다고 투덜대는 남편을 보니 안쓰러웠거든. 남편은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하는 사람이라 항상 옷에 신경을 써. 나보다 옷장을 훨씬 넓게 쓰는데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이 없대.


지난주에 남편 옷을 사러 초록이와 셋이서 백화점에 갔는데, 옷은 하나도 못 사고 먹을 것만 사서 돌아왔어. 남편은 내가 본인 옷을 같이 골라주었으면 했는데, 초록이가 가만있지 않아서 초록이를 데리고 마트로 내려갔거든. 남편은 혼자 덜컥 사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이라서 나와 같이 본 뒤에 사고 싶었나 봐. 내가 봐 줄 수 없으니 어떡해 다음을 기약하고 그냥 돌아왔지 뭐.


이번에는 남편과 둘이 여유롭게 쇼핑을 하기 위해 점심때 조퇴를 했어. 같이 점심을 먹고 쇼핑을 한 뒤 초록이를 데리고 오면 되겠다 싶었지.


오랜만에 아웃렛이 있는 교외로 나왔어. 미세먼지는 나쁨이었지만 볕은 따뜻하고 좋더라. 주차장에 주차를 하는데, 평일 낮에도 주차장은 꽉 차 있는 거야. 아.... 이 여유로움... 부러웠어. 평일 점심 외출이 나에게는 정말 특별한 시간인데, 그들에게는 일상이겠지?


밥을 먹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쇼핑을 시작했어. 손을 꼭 잡고 옷을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입어 보기도 했지. 입어 봤는데 사이즈도 딱 맞고 나에게 참 잘 어울린다, 그럼 사야지 어떡해. 꽉 막힌 백화점이 아닌 탁 트인 아웃렛에 오니 큰 고민 없이 지갑이 술술 열리는 거야. 감을 잃었어. 체크카드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사실 이미 버버리 매장에 슬쩍 들어가 눈을 높여 놓은 후였거든. 평생 명품 근처에도 안 가 본 내가 버버리 매장에 들어가 옷을 구경했어. 왜냐고? 그냥~~~ 평일  볕 좋은 오후에 조퇴를 했겠다, 시간도 많겠다, 남편도 옆에 있겠다. 웨이팅도 없겠다. 뭐~~~~


다행히 버버리에서는 지갑을 안 열었어. 아직 난 명품을 살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돈도 돈이지만, 나보다 옷을 더 소중히 다룰 것 같아서 불편하거든. 내가 주인이어야 하는데, 옷이 주인이 돼 버리면 안 되잖아. 명품 옷을 그냥 옷처럼 다룰 수 있는 단계에 올랐을 때 그때 하나씩 장만해도 늦지 않지.


쇼핑을 마친 남편은 만족한 표정이었어. 나도 이 정도면 만족스러웠지. 근데 여기까지 왔는데 아이들 것을 하나도 안 사고 갈 순 없잖아. 나이키 매장에 들러서 아이들 옷도 몇 벌 샀어. 울 초록이는 옷보다는 자동차를 원하니 집에 오는 길에 토이저러스에 들러서 디펜더 자동차도 하나 사고.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에게 하나씩 안겨 줄 생각을 하니 뿌듯했어.



여기다 분위기 좋은 곳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집에 들어가면 오늘은 완벽한 하루일 것 같았어. 집 근처에 르꼬르동 블루 출신의 파티시에 아내와 바리스타 남편이 운영하는 커피숍이 있거든. 거기서 달달한 디저트에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면 딱이겠다 싶었어... 그런데 어머나 주차를 하고 보니 오늘이 휴무인 거야. 아웅.. 이를 어째. 근처 스벅을 갈까 하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왔어.


괜찮아 괜찮아~ 집에 와서 따뜻한 라테를 마시며 잠깐이나마 쉴 수 있었거든. 거기다 까다로운 푸름이가 엄마가 사 온 옷을 맘에 들어하니 기분이 좋았어. 남편은 옷이 구겨질세라 쇼핑백에서 옷을 꺼내더니 서둘러 옷을 걸어 놓더라. ㅎ 이런 모습도 귀엽고 말이야.


울 초록이는 뭐 말이 필요 없지. 얼마나 기다렸던 디펜더인지 몰라. 작년 생일에 푸름이가 사 준 작은 디펜더는 하도 떨어뜨려서 천장과 문을 다 깨 먹었고, 크리스마스에 아빠가 사 준 디펜더는 바퀴를 하나 부러뜨렸어. 이렇게 망가지는 이유가 항상 디펜더를 들고 다녀서 그래. 너무 좋아하니까 말이야. 그래서 우리 집에는 아픈 디펜더밖에 없어.


아빠가 이번에는 큰 디펜더를 사 주겠다고 한번 바람을 넣어놨더니 아빠에게 어서 사달라고 그렇게 조르더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빠에게 디펜더 사 왔냐고 물어보고, 아빠가 회사에 출근할 때도 디펜더 꼭 사 오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거야. 얼마나 기다렸겠어. 오늘은 아빠가 사 오려나 하고 말이야. 그런 초록이에게 디펜더를 턱 안겨 줬으니... 초록이의 표정을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알겠지?


남편과 데이트한 것보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더 행복한데 어쩌지? 남편에게 살짝 미안해지네. 아냐. 남편도 같은 마음일지 몰라. 내 남자인 것보다 아빠일 때 더 행복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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