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바라고 바래왔던 둘째 아이가 내 눈 앞에서 쌕쌕거리며 잠을 자고 있었는데에도 말이다.
단 20분 만이라도 온전한 나홀로의 시간이 필요했다. 숨이 턱 막혀버릴 것 같은 일상에 그래야만 살 수 있다고 믿었다.
돌이켜보면 아마도 산후 우울증이 아니었었나 싶다. 나 자신을 살갑게 토닥여주지 못했던 그 때의 내게 미안해진다.
어쨌든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아이의 낮잠 시간이 아닌 '새벽'을 선택했다.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 이제부터 새벽에 일어날거야.
오빠가 애들 자는 것 좀 봐 줘.
남편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남편은 고맙게도 알겠노라고,
자신이 새벽에 아이들이 울면 볼테니까
새벽에 일어나라고 응원?!을 해줬다.
그렇게 시작된 새벽기상.
여러 번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느덧 새벽기상 4년 차.
내가 일어나는 시간에 아이들이 잠에서 깨더라도 화가 나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이 다시 잠들때까지 토닥여주는 여유가 생겼다.
육아만 할 수 없어서 시작한 새벽기상,
새벽기상이 내게 건네준 것은
[마음의 여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