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와 맥주와 식빵까지만 할 걸
육아는 과정도 결과도 모두 중요해
토요일 밤 9시.
낮잠을 자지 않아 평소보다 일찍 잠이 든 둘째 아이를 재워 놓고, 첫째 아이는 우리 셋만의 시간을 원했다.
둘째 아이를 재우면서 같이 누워있었던 터라 그대로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보드게임 한 판을 꼭 같이 하고 싶다는 7살 첫째 아이의 성화에 나와 남편은 침대가 붙잡는 등을 힘겹게 떼고 일어나서 터벅터벅 거실로 나왔다.
요즘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보드게임인 셈셈피자를 펼치고 게임을 시작했다. 덧셈과 뺄셈을 이용해서 피자 3판을 가장 먼저 만드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인데, 하다 보니 너무 재미있어서 나중에는 남편과 내가 승부욕에 불타올라 깔깔거리며 게임에 빠져들었다.
아이는 그런 우리의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함께 깔깔거렸다. 다행히도 아이의 승리로 기분 좋게 보드게임을 마무리하고 ‘이제 우리 잘까?’했더니 ‘이제 우리 물 같은 거 마시면서 얘기하고 싶어.’라는 아이.
정말 물만 마시려고 했는데, 물을 마시려니 갑자기 입이 궁금해졌는지 남편은 내게 맥주? 커피?를 물었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 맥주를 불렀다. 맥주에 안주가 빠질 수가 있나. 마땅한 안주가 없어서 둘러보다가 남편은 식빵에 딸기잼을 바르고 치즈를 얹어 에어프라이에 구웠다.
달콤짭잘 식빵은
맥주와 환상의 궁합이었다!
두 사람이 맥주 한 캔을 반반씩 나누어 마신 것이 아쉬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이는 우유와 빵을 먹으면서 좋아하는 포켓몬스터 캐릭터를 그리면서, 우리는 그렇게 몇 마디 하지 않았지만 좋은 밤을 보내고 있었다.
딱, 거기까지만 하고
양치를 하고
잠이 들면 좋았을 걸.
아이는 이제 엄마와 아빠가 밤에 영화를 볼 때 자기도 함께 하고 싶다면서 어린이 영화를 한 편 보여 달랬다. 밤에 영화 보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너무 궁금하다면서.
살짝 고민을 하다가 언제 또 이런 시간을 갖나 싶어서 짧은 어린이 영화 한 편을 보여주었는데 문제는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나와 남편이 점점 피곤해져갔다.
한 시간 정도의 영화가 끝이 나고 우리는 양치를 하고 잠을 자러 방에 들어갔는데, 아이는 이제 책을 읽겠단다. 나와 남편은 잠이 쏟아져서 혼자 책을 읽다 자기를 부탁했더니 그럼 다리를 주물러 달라는 아이.
남편은 계속되는 아이의 요구에 지쳤는지 자신은 다른 방에 가서 자겠다고 이불을 들고 휑하니 가버렸다.
아빠가 갑자기 다른 방으로 가자, 첫째 아이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고 나는 남편이 자러 간 작은방에 가서 그냥 아이 옆에서 같이 좀 자면 안 되냐고 했더니 이제 그만 좀 하라며 잠 좀 자자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남편.
'그래, 당신 마음도 이해가 되지.' 싶어서 조금 서운했지만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아이 곁으로 와서 누웠다.
‘아빠가 지금 많이 피곤하신가 봐. 우리도 이제 그만 자자. 오늘 재미있었다. 그치?’ 라고 묻는 내게 잠시 후 아이가 흐느끼면서 하는 말.
“내가 엄마 아빠 피곤한줄도 모르고 계속 내 생각만 말해서 미안해.”
하.. 그런 죄책감을 심어주려는 의도가 아니었는데.. 평일에 열심히 지냈으니 가끔 이렇게 신나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쉴 때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나와 남편의 태도 때문에 아이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던 것이었다.
이런.. 결국 오늘은 망했다.
나와 남편의 피곤함이 극에 달해
결국 남편이 화를 내고 나서야
아이의 요구가 두려움과 죄책감 때문에 멈춰졌다는 것이 슬펐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육아는 과정도 결과도 모두 다 중요하다.
아이의 요구에 적당한 선을 그어주는 것 또한 부모가 해야 할 일인데.. 즐거운 아이의 기분을 맞춰주고 싶은 마음에 계속되는 아이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도 없으면서 맞춰주다 보니 결국 모두에게 상처만 남기고 만 토요일 밤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너무 피곤하지 않을 그 선에서 멈춰야 했었다. 아이의 기분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피곤함을 아이에게 설명해줘야 했었다. 화를 내면서 표현 할 것이 아니라. 다정하게.
엄마랑 아빠도 너와 더 놀고 싶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놀고 다음 주말이 또 있으니 그 때 이런 시간을 다시 갖자고.
잠이 잘 오지 않아 이리 뒤척이다 저리 뒤척이다 일어나서 거실에 나오니 새벽 3시 30분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베란다 창문을 바라보다가 문득 떠오른 한 문장, “아이가 자신의 삶을 사랑하면 좋겠다.”
나는 어땠지? 나는 지금 어떻지? 나는 사실, 내 삶을 별로라고 생각했던 적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면서 아이에게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라니. 어불성설이다.
아이가 평소에 잔잔한 기쁨과 사랑을 느끼면서 살기를 그토록 바랬는데, 아이는 이미 평일에는 해야 할 일들에 둘러 쌓여 일상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토록 주말이 되길 기다리고 마치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놀기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아이의 감정과 마음에 대해 너무 몰라주었음을 반성한다.
사실 꼭 해야 되는 일들에 대해서는 아이의 감정과 상관없이 ‘이건 해야 하는 거야. 네가 원하는 걸 하려면 하기 싫은 것도 해야만 해.’라고 사무적으로 말하곤 했는데 그런 말들이 아이의 마음을 지치게 하지는 않았을까 싶었다.
물론 언제까지나 아이가 원하는 것만 할 수는 없지만 그 마음을 조금 더 다정하게 다독여주지 못한 나 자신이 무척 후회가 되었다.
내가 먼저 평소에 잔잔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지. 내가 먼저 작은 일에 즐거워하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즐거워하는 척이라도 해야겠다.
그러다보면 정말 즐거워질지도 모르니.
매일 같이 쌓이는 집안일, 해야 할 일들에 허우적대지 말고 내가 내 삶의 중심이 되어 마치 산 정상에 우뚝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듯이 내 삶의 한 가운데에는 나 자신이 서 있어야겠다.
산더미 같은 빨래가 아니라.
아이에게 무언가 좋은 걸 알려주려고 하지 않아도, 나 자신이 이미 그런 삶을 살고 있으면 아이는 알게 될 것이고 아이 역시 자신의 삶에 좋은 것들을 녹여 내리게 될 것이다.
가끔은 어젯밤처럼 엉뚱한 길에서 헤매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믿는다. 언제나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방법을 알고, 찾게 될 것이라고.
역시, 영화까지는 보지 말 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