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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작가 Feb 21. 2022

[육아에세이] 육아, 너를 이해하고 나를 알아가는 일

낮과 밤의 일교차가 제법 크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주말 저녁, 남편이 아이들과 집 앞 공원에 잠깐 들렸다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반납하고 오겠단다. 나는 속으로 '아싸! 잘됐다!'를 외쳤다. 


왜냐하면 주말 내내 하루 종일 내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는 귀여운 새끼 오리 같은 아이가 단 1시간이라도 집에 없을 때라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무한한 자유 때문이었다. 


신체적, 정신적, 물질적인 '자유'가 인간에게 이토록 중요하다는 것을 육아를 하면서, 그리고 이 코로나 상황을 겪으면서 마음이 저리도록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아무튼 나는 남편과 아이들이 나가자마자 유튜브를 틀어서 듣고 싶었던 '육아' 채널을 들으면서 청소를 했다. 


아이들이 없을 때 하는 일이 고작 청소와 육아 채널 듣기라니..(절대, 집안일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정말이지 놀고 싶었는데, 온갖 잡동사니로 난리인 집을 보고 도저히 안 치울 수가...) 


헛웃음이 나왔지만 안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청소를 해야 후다닥 정리가 되니 말이다. 


일단, 커피를 한 잔 타서 후루룩 마시고 청소를 재빠르게 해 놓고, 저녁에 먹을 야채를 씻고 있는데 '삐비 비비빅' 남편과 아이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 이렇게 빨리 올 줄 알았으면 커피라도 천천히 마실걸.. 여유를 부리지 못하고 종종거렸던 나 자신이 갑자기 조금 후회스러웠다. 그런데 뭐 어쩌랴, 성격인 것을. 


유치원 봄방학을 해서 아침에 늦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아이들은 밤이 늦도록 잠을 잘 생각을 하지 않고 놀고 싶어 했다. 


윷놀이에 한창 재미를 붙인 첫째는 어김없이 "엄마, 윷놀이 한 판만 하자!"를 외쳤고 다시 온갖 잡동사니로 어질러진 거실을 참을 수 없었던 나는 "우리 같이 정리하고 윷놀이를 하자."라고 외쳤다. 


정리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던 탓일까, 아직 정리를 잘 따르지 않는 동생 때문일까, 동생과 함께 놀던 장난감을 자기 혼자 치우는 게 억울해서였을까, 아이는 결국 울음을 앙앙 터뜨렸다. "안아줘.."라며 흐느끼는 아이를 안아주었다. 


아, 다 내 잘못이었다. 


그까짓 장난감들.. 윷놀이를 신나게 한 판 하고 정리해도 될 것을, 굳이 집안이 어지러운 꼴을 참기 어려워하는 나 자신 때문에 아이를 울렸구나 싶었다. 


돌이켜보니 생활 속에서 그럴 때가 많았다. 그걸 조금만 내려놓으면 아이의 마음이 조금 더 편할텐데, 나를 못 이겨 먹어서 아이에게 기어코 상처를 주는 일들 말이다. 내게는 청소와 정리가 그렇고, 밤에 좀 늦게 자는 것이 그렇고, 한글 쓰기가 그렇다. 


내가 정해 놓은 그 경계를 무너뜨리지 않은 채로 아이를 대하면 계속 이러겠지.. 그러다 어느 날 나보다 훌쩍 커 있는 아이는 더 이상 내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겠지.. 와르르르르... 그동안 경계를 세우고 있었던 내 마음의 장벽을 하나씩 무너뜨려야겠다. 


신기하게도,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더욱 잘 알아가게 된다. 아이가 나의 모든 것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그 대부분은 별로 좋지 않은 것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의 한심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아이에게 문득 고마워지는 아침이다. 


육아는 내가 아이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고 나 자신을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다듬어 가는 과정인 것 같다. 아이들은 모방의 천재라고 하니까, 부모인 내가 좋은 사람이면 아이들은 당연히 좋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렵고, 재미있고, 짜증하고, 화나고, 감사하고, 행복하고, 사랑스럽고, 고맙고, 잘 모르겠고, 지저분하고, 열 받고, 웃기고, 냄새나고, 소리치고, 다독이는 일상 속에서 오늘도 나는 아이와 함께 살아간다. 


나의 경계를 조금씩 무너트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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