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 건조기가 없을 때에는 2박 3일의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이 두려웠다. 집에 돌아오면 빨래 폭탄을 맞을 것임을 알았기에, 몇 날 며칠을 빨래를 말리느라 애를 쓸 것임을 미리 걱정했다. 그러다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세탁 건조기를 집에 들였다.
벼르고 벼르다 산 건조기는 빨래에 파묻힐 것만 같았던 나의 손 끝을 잡고 빨래 더미 속에서 나를 들어 올려 주었다.
빨래 널기와 말리기가 내게 가장 큰 스트레스였는데 그 과정을 건조기에게 맡김으로서 스트레스가 순식간에 없어지는 경험을 했다.
강원도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차 안에서 문득 빨래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는 것이 기뻐서 남편에게 '건조기가 있어서 너무 행복해!'라는 말을 했는데 뒤에 앉아있던 첫째 아이의 한 마디.
"흥! 그럼 우리는 없어도 되겠네?" 아이고, 그게 무슨 말이니 아이야.
엄마는 건조기가 있어서 행복하니까 우리가 없어도 되는 거 아니냐는 아이의 귀여운 질투에 나는 웃음이 낄낄 났다.
"아니지, 아니야. 너희들이 있어서 빨래가 많아지니까 건조기가 필요해서 샀고, 건조기를 사용해보니까 너무 편리하고 엄마가 할 일이 조금 줄어서 행복하다고 느꼈어.
그러니까 너희들이 있기 때문에 건조기를 샀고, 그래서 엄마가 행복한 거니까 결국엔 너희들이 있어서 행복한 거야."
여섯 살 첫째 아이는 알쏭달쏭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 거리며 "그런거야?"라고 하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내가 말을 해 놓고도 이게 맞는 말인가? 싶었지만 뭐 어떤가. 내가 아이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세지는 단 하나, '엄마는 네가 있어서 행복하고 너를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건조기와 육아의 공통점
건조기는 옷을 말려주고
아이는 내 마음을
바싹 바싹 말려준다는 것이다.
건조기 때문에 아이에게 갑자기 사랑을 고백했다. 아이는 언제 어디에서나, 꼭 특별한 순간이 아니더라도 늘 자신이 사랑 받고 있음을 특히 부모에게 중요한 존재임을 확인 받고 싶어한다.
아이에게 매일 말해줘야겠다.
"네가 있어서,
네 덕분에 엄마는 더 많이 행복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