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좋구나. 만나도 좋고, 만나지 않아도 좋아.
요 며칠, 인간관계로 인해 머리가 복잡했다.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일까?'
'내가 너무 옹졸한가?'
일의 발단은 '약속' 때문이었다.
점심식사를 함께 하자는 나의 초대에
상대방은 '오전에 선약이 있긴 하지만 볼일이 일찍 끝나면 만나자'라고 했다.
나는 기다렸다.
기다렸는데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
연락 한 통이 없었다.
'바빠서 연락이 없나 보다.
오늘 만나지 않을 건가 보다.'
라고 생각이 들어 나도 연락을 하지 않았지만,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나였으면,
만나지 못하면 연락을 했을텐데..'
상대방은 '거절'을 에둘러 말했을 뿐인데,
내가 눈치 없이 '만날 수도 있다'라고 착각했던 것일까?
6살 첫째 아이는 요즘 친구를 한창 찾는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곳에 같은 반 친구가 없기도 하거니와,
나도 굳이 아이의 반 친구들 엄마들과 친해지려고 애쓰지 않는다.
연락처를 알고 있는 엄마도 없으니 말이다.
유치원이 끝나고 반 친구가 나올까 봐 놀이터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의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내가 일부러라도 나서서 같은 반 아이의 엄마와 친해져야 할까?'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아이가 어릴 때에는 엄마가 친구를 만들어줘야 아이가 논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내가 다른 엄마들과의 관계를 맺지 않으면 나의 아이는 친구를 사귈 수 없는 걸까?
진짜 그럴까?
어느 정도의 관계는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일부러, 억지로, 애를 써서 다른 엄마들과의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자연스럽게 연락처를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그럴 것이고, 만날 일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내가 잘못된 것일까?
고민을 하다가 아이에게 얘기했다.
"ㅇㅇ야, 지난번에 놀았던 그 친구와 놀고 싶었구나?
오늘은 유치원에 가서 그 친구에게 말해보자.
'유치원 끝나고 나랑 놀이터에서 놀래?' 이렇게 물어봐.
좋다고 하면 이따 놀이터에서 만나면 돼.
아니면 우리끼리 놀면 되고.
이렇게 물어보는 것도 친구와 약속하는 방법 중의 하나야."
아이는 "응, 엄마."라고 하며 유치원에 갔다.
하원 후, 놀이터에 가자는 아이에게 물었다.
"친구한테 같이 놀이터에서 놀자고 말해봤어?"
아이는 '잊어버려서 말을 못 했다'라고 했다.
다행인지 그날은 비가 내려서 놀이터에서 오래 있을 수 없었다.
부모와의 좋은 관계가 기본이 되면 타인과도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억지로 인연을 만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생기더라도 언제든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마음의 거리는 유지하기.
아이의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함이라는 이유로 다른 엄마들과의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나와 아이와의 관계를 좋게 만드는 것에 조금 더 애를 쓰기로 했다.
이건 나 자신에게, 그리고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네 삶에 최선을 다하되,
너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역할에 연결되어있는
그 관계들에 대해서는 적당함을 유지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