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또 있을까
이제 곧 여름 방학이 시작되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이번 주를 잘 보내자는 나의 말에 7살 첫째 아이의 한 마디였다. 예상치 못한 말로 당황한 나를 대신해서 출근 준비에 한창이던 남편은, "엄마가 집에서 너랑 동생이 유치원 생활을 잘할 수 있게 도와주잖아. 엄마한테는 방학이 없는데, 그럼 우리 엄마한테도 진짜 방학을 줄까? 모든 집안일을 우리가 해보는 거야." 아이는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었다.
남편이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내게는 아이의 한 마디가 마음속에 콕 박혔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과 아침 식사를 함께 하면서 첫째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가 늘 방학인 것처럼 보이니?" 아이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대답을 했다. "응, 매일 집에 있잖아. 아무것도 안 하고." 그 순간, 엉덩이 한 번 붙일 새 없이 온갖 잡다한 집안일로 분주하게 온 집안을 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화가 조금 올라왔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아이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너와 동생이 유치원에 가고 나면 엄마는 엄마가 할 일을 하고 있어. 이제 곧 너도 학교를 가고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겠지? 너희가 점점 크면서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그래서 엄마도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을 준비하는 거야. 지금은 너희들이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니까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엄마가 기다리고 있는 거고 말이야. 엄마도 집에서 아주 바쁘단다." 아이는 이해가 되는 듯 마는 듯 나를 꼭 안아주고는 사랑한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이 뿌듯했다. 갑자기 욱해서, 전업주부라고 아이까지 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그 마음을 누르고 차분하게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아이에게 설명을 해 준 나 자신을 말이다. 그러고 보면, 아이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유치원에 가고 나면 우리 엄마는 무엇을 할까? 궁금하기도 할 것 같다. 이와 동시에 이토록 중요하고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전부 도맡아서 하는 전업주부가 왜 이토록 대접을 받지 못하는지에 대해, 전업주부만큼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일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에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람의 정체성은 각자가 스스로 정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게 쉽지가 않다. 나 자신이 아무리 '나는 충분히 멋지고 귀한 일을 하고 있어.'라고 스스로에게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주변의 생각 없이 내뱉은 한 마디에 그토록 잘 먹었던 마음이 초라해지고 자신에 대해 의심이 생기게 되는 것은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업주부의 일, 엄마가 하는 일에 대해, 집안의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즉 음식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그 빨래를 개고, 청소를 하고, 이불을 정리하고, 또 음식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는 일들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해야만 한다. 진심이 안 되면 억지로라도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집안일에 함께해야 한다. 참여해야 한다. 결코 '나는 일을 하니까, 나는 돈을 버니까 집안일 좀 안 해도 되지 뭐.'라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이것은 철없던 시절의 나 자신에게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돈을 벌기 시작한, 오만했던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집 안에서 엄마가 하는 수많은 작은 일들을 무시했었다, 쉽다고 생각했었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엄마가 되어 직접 해보니 아이들과 함께 밥을 해 먹고사는 일은 장난이 아님을 이제 겨우 깨닫고 있다.
이제 조금씩 엄마가 되어가고 있나 보다.
매일이 방학인 것처럼 보이는 전업주부의 삶, 일상. 전업주부의 하루가 가족의 하루를 만든다. 조금 더 당당해져도 되겠다. 그리고 가족에게 전업주부가 집에서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꾸 알려주고 참여시켜야겠다. 그리고 더 이상 아이들을 방패로 핑계 삼지 말고 나의 몫, 내 몫의 일을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