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아토피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
“아직 아이가 어려서 정확히 진단 내릴 수 없지만 이런 피부는 아토피 피부가 맞는 거 같습니다.” 늘 가는 소아과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태어났을 때에 유난히 피부가 까맣고 빨갰던 첫째 아이는 신생아 시절에 두피에 ‘소똥’이라는 딱지도 생겨서 한참동안 떨어지지를 않았었다. 얼굴에 좁쌀 만한 여드름 같은 것도 잔뜩 올라와서 한참동안 애를 썼었다. 아이의 침독은 3세가 될 때까지 달고 살았고, 아이와 외출할 때에면 보는 사람마다 ‘얼굴이 그래서 어떡해 하니’라는 인사를 받을 정도였다.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먹는 음식마다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쌀 미음을 먹고 나서도 입 주변이 시뻘개지고, 감자를 먹으면 얼굴에 뭐가 나고, 눈이 부었다. 그래서 이유식을 먹일때면 늘 노심초사 했었고, 어떤 알러지 반응이 나올지 몰라서 외출해서도 음식을 원하는 대로 먹을 수가 없어서 안타까웠다.
그리고 가장 미치도록 괴로웠던 것, ‘가려움’이었다. 아이가 손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던 그 때부터 아이는 밤에 발 뒤꿈치를 긁어댔다. 아무리 약을 발라도 긁는 것을 멈추지 못하고 일주일에 절반은 꼬박 밤을 새면서 가려워서 우는 아이를 달래야 했다. 저녁이 되면 밤에 가렵지 않게 하기 위해 알레르기 약을 먹이고 약을 미리 발라줬지만 그 날의 아이 컨디션에 따라 가려움이 심하기도, 또 조금 덜하기를 무한 반복했다. 한 겨울 밤에 가렵다고 덥다고 난리를 치는 아이를 안아 창문을 활짝 열고 이불로 아이를 덮어 안아서 밤새도록 다독이기도 했었고, 긁어서 발에 피딱지가 가득한데 계속 긁어서 피가 나고 딱지가 앉기를 수 없기 반복하기도 했었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가려움의 부위는 점점 더 넓어져갔다. 병원에서는 아이의 가려움이 심해질수록 점점 더 강도가 높은 스테로이드를 처방해주었다. 좋다는 피부과, 한의원을 찾아가도 늘 같은 얘기였다. ‘더 커야 한다. 지금은 먹는 약이랑 바르는 약 밖에 줄 수 가 없다. 부가적으로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은 집을 늘 깨끗이 하고, 야채를 많이 먹여라.’라는 것이었다.
'내가 쟤를 가졌을 때 뭘 잘못했나?’ ‘내 피부는 괜찮은데, 왜 그러지?’ 나는 아토피라는 것이 이토록 사람의 정신과 몸을 갉아먹는 줄 몰랐었다. 이토록 가려운 건지 몰랐다. 아이를 가졌을 때 일을 많이 했었는데 그 때 일이 너무 힘들고 음식을 불규칙하게 먹어서 그런가 싶었다. 그래도 챙겨서 먹는다고 야채와 견과류를 많이 먹었었는데, 왜 그럴까.. 하는 생각에 자꾸만 내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아이의 아토피가 심해질수록 외출할 때마다 눈에 보이는 피부에 신경이 쓰였고, 어쩌다 아이가 달콤한 사탕이나 젤리를 먹고 밤에 긁는 날이면 ‘그러니까, 엄마가 아까 사탕 먹지 말라고 했잖아..! 그만 좀 긁어, 그만 좀!’이라고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화를 내고 나서는 곧바로 후회가 밀려왔다. ‘사탕을 사준 건 나인데.. 휴…’
아이가 밤새 가려워하는 날에는 아이의 온 몸을 쓸어주고 주물러주느라 잠을 거의 자지 못했는데, 아이 뿐 아이라 내 정신에도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엄마인 내가 정신을 차려야 했다. 아토피와 관련된 수많은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책을 보면서 아토피라는 것에 대해 이해를 하기 시작했고, 아이에게 주는 음식에 더욱 신경을 썼다. 그게 무엇인지 이해를 하기 시작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니 아이가 가려워할 때, 그 가려움이 얼마나 괴로울 지, 아이의 아픔이 먼저 보였다. 그제서야 가려워하는 아이를 진심으로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었다. 아이가 아토피가 있으면 아이의 부모는, 아이를 낳은 엄마는 알게 모르게 죄인이 된다. 그리고 너무 많은 정보들에 혼란스럽다. 아토피를 자연적으로 치료한다고 말도 안되는 의료행위로 아이를 고통스럽게 하는 부모들도 봤다. 그럴 때 내 삶의 중심을 잡아주었던 것은 ‘나와 내 아이는 괜찮아.’ ‘아이가 힘들지 않게, 최대한 가렵지 않게 해 주자.’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니 외부의 시선에서 점점 자유로워지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아이와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