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세이] #06 딸이면 어떻고 아들이면 어때

feat. 큰 딸이 살림 밑천이라고요?

by 글짓는맘


“큰 딸은 살림 밑천이야.”


아빠의 농담 반 진심 반 섞인 말을 지겹게 듣고 자랐다. 아우, 지겨워. 어렸지만 아빠가 그 말을 할 때면 뭔지 모를 거북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 말의 뜻을 알게 된 후로는 나는 아빠의 ‘큰 딸은 살림 밑천이지’라는 말에 화가 났다. “내가 왜 살림 밑천이야, 아빠가 아빠니까 우리집 살림을 책임져야지!!” 날 선 나의 말에 아빠는 겸연쩍다는 듯 웃으시면서 “아이고~ 장난이지, 장난! 예전에는 큰 딸이 진짜 살림 밑천이었어. 요즘은 당연히 아니지. 그냥 농담으로 하는거야.” “그래도 듣기 싫다고, 그 말 좀 하지마!” 라고 나는 아빠에게 신경질을 냈다.


그래도 아빠는 그런 나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이 가끔씩 그 말을 꺼내셨고, 나는 그런 아빠에게 성질을 내곤 했다. 그 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라면서 겪었던 은근하기도 하고 대놓고 당했던 남자와 여자의 차별 때문이었을까. 나는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남자’아이를 낳고 싶었다. 딸을 낳아서 내가 겪었던 억울함 같은 감정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나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라도 한 듯이 정말 남자아이를 낳았다. 그것도 ‘둘’씩이나.


둘째아이까지 아들을 낳자,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나를 보며 한 마디씩 했다.

“아들 둘 키우기는 정말 힘들어.” “예전에야 아들이 있으면 밭도 갈고 도움이 되었는데, 요즘에는 도움이 안 되.” “요즘에는 딸들이 비행기 태워준대~” “요즘엔 딸 둘이 있어야 금메달인데~ 아들만 있어서 목메달이네.” “딸 하나 더 낳아야겠다!” “엄마가 힘들어서 어떻게 해~”


온통 힘들다, 어쩌냐와 같은 부정적이고 걱정 아닌 걱정스런 말들 뿐이었다. 나에게는 두 살 어린 여동생이 한 명 있는데 나이가 들수록 사이가 좋아져서 지금은 정말 친구 같고, 심적으로 의지가 많이 된다. 그래서 나는 사실, 아이들이 같은 성별이라서 나중에 친구처럼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좋았는데 말이다.


남자아이들도 예쁘게, 우아하게 잘 키울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질문이 절로 들었다. 물론 현실은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목소리가 커지게 되고(내가 작게 말하면 소리를 잘 못 듣는 것 같다. 남자 아이들의 특징이라나.) 가끔씩 서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볼 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서로 작은 다툼을 하는 것이 일상이다.


이 시간들이 버무려지면서 언젠가는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관계가 되지 않을까?

아이들의 성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 부모의 사고방식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부모의 양육 태도에 따라 아이들의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는지가 결정된다.


그래서, 아이를 기르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주로 엄마의 양육 방식에 따라 아이들의 성격과 행동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기질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엄마의 행동이 아이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부모는 아이 앞에서 찬 물 한잔도 못 마신다’는 속담도 있으니 말이다.


‘남자 아이들이니까 막 키워야 해,’ ‘남자 아이들이니까 이런 운동을 해야 해.’ 라고 들리는 말들을 거부한다. 물론 성별의 특징이 있긴 하지만 그 보다는 아이의 특징에 맞춰서 뭔가를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네 놀이터에서 자주 마주치는 초등학교 3~4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남학생이 있다. 주변에 친구들도 많은지 늘 친구들과 노는데 어느 날은 놀이터에서 모래를 파서 굴을 만들고 있었다. 내 첫째 아이가 같이 놀고 싶은지 옆에서 서성거리자, “너도 이거 파고 싶구나? 이리 와서 이거 파봐. 이제 나는 다 했어.” 라고 말하며 자기가 모래를 파던 나무 막대기를 옆에 놓고 다른 곳으로 갔다. 첫째 아이는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 형이 파던 굴을 열심히 팠다.


한 번은, 그네를 타려고 보니 그네를 타려고 기다리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고, 그 학생이 자신의 동생을 밀어주고 있었다. 옆에서 동생의 친구가 그네를 타려고 기다리다가 짜증을 부리니까 “너도 얼른 타고 싶구나. 그네가 몇 개 더 있으면 좋았을 텐데. 잠깐만 기다려봐. 오빠가 동생 조금만 태워주고 얼른 태워줄게.”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짜증을 부렸던 그 동생의 친구는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이상 짜증을 내지 않았다.


저런 배려심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싶어서 그 학생을 잠시 관찰해보니, 대부분의 말과 행동에 가식이 없고 솔직하며 다른 아이들을 배려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억지로 다른 아이들을 배려하는 게 아니었다. 사람은 자신이 받은 대로 다른 사람에게 준다고 하니까, 그 학생은 아마도 부모로부터 일상 생활에서 배려를 많이 받고 자랐을 것이다.


‘아, 우리 아이가 정말 저렇게 크면 좋겠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남자아이도 저렇게 부드럽게, 온화하게 키울 수 있구나 라는 희망이 생겼다.

내가 아이에게 해줘야 하는 것은 좋은 유치원도, 좋은 장난감도 아니었다.

일상 생활속에서의 아주 사소한 순간순간의 따뜻한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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