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열이 난다.
온몸이 뜨끈뜨끈하다. 잠을 자는 아이의 얼굴이 안쓰러운 밤이다. 혹시나 어디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모르는 곳이 아픈 것은 아닐까, 응급실에 가볼까 별별 생각을 다하며 아이의 얼굴을 바라본다. 뜨거운 콧바람을 내쉬는 아이의 이마를 쓰다듬는다. 아이에게 잘해주지 못했던 일들만 생각난다. 조금 더 기다려줄 걸, 좀 더 부드럽게 말할 걸, 한번 더 안아줄 걸. 아이가 아픈 날에 엄마는 후회의 밤을 지새운다.
아이의 아픔이 가시면 아이와 투닥투닥 늘 그랬듯이 똑같은 일상을 보낼 것임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아이가 아픈 그 시간만큼은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 했던 나의 잘못을 반성하는 시간이 된다. 아픈 아이의 손을 주물러주며 혼잣말을 하듯 속삭인다. “얼른 낫자. 얼른 낫자.”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죄스럽다. 엄마가 어느 곳에 있던 아이가 아플 때이면 엄마는 자책을 하게 된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엄마의 잘못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엄마는 그런 마음이 든다. 아이의 아픔에 엄마가 일프로라도 책임이 있는 것 같아서이다. 아이가 아플 때면 유독 아이에게 미안했던 일들이 많이 떠오른다.
엄마라고 불리는 이 자리에 나는 과연 맞는 사람인가, 내가 뭐라고 나에게 자신의 전부를 고스란히 맡기는 아이의 뜨거운 작은 몸이 산처럼 거대하게 느껴지는 밤이다. ‘내가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아이를 바라보며 수없이 내게 되묻고 또 묻고 묻는다. 언제나 답은 하나이다. ‘나는 엄마야.’ 떨리고 두려운 그 순간에도 나를 붙잡아준 것은 ‘나는 엄마’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가 많았었는데, 내가 기억하기로는 20대까지도 내가 아플 때에 부모님이 단 한 번도 나를 귀찮아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결혼을 하고 나서 남편이 음식을 먹으면 왜 이렇게 잘 체하냐고 면박을 주었다. 맞다. 자식은 부모의 사랑과 눈물과 걱정을 먹고 자라는 존재이다.
잠든 아이의 등을 쓸어주며 나의 부모님을 기억한다. ‘나도 이렇게 어렸을 때 엄마가 내 등을 쓰다듬어 주었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물 한 방울이 눈에서 툭 하고 떨어진다. 아픈 아이가 걱정되어서 그러는 건지,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나의 부모님이 생각나서 그러는 건지 잘 모르겠는 눈물이다.
그러니까, 아이가 아플 때에 미안해하지 말고 평소에 좀 잘해주자. 이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아이가 아플 때에만 평소에 잘해주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에 괜히 더 잘해주는 척하지 말고, 그냥 평소에도 잘해주자. 말이라도 따뜻하게, 아이랑 눈이 마주치면 이유 없이 그냥 꼭 끌어안아주기도 하고, 잠자기 전에 발도 조물조물 마사지해줘야겠다. 엄마의 눈물과 걱정보다는 사랑과 따뜻함을 훨씬 더 많이 먹고 몸도 마음도 쑥쑥 자라면 좋겠다.
언젠가는 아이도 부모가 되어 엄마에게 받았던 그 보살핌을 자신의 아이에게도 그대로 전해줄 것이다. 그럴 때면 자신이 받았던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기억할 수 있게, 아프고 힘이 들 때에 혼자가 아님을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다. 아가, 얼른 낫자. 엄마가 옆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