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를 받고 엄마는 울었다
"엄마, 이거 해 줘."
"응, 이렇게 하면 될까?"
옆에 서있던 둘째아이가 형이 나와 기찻길을 맞추는 것을 물끄러미 보다가 나에게 기찻길 레일 두 개를 집어 와서는 내게 내민다.
“이거 이렇게 연결할까?” 라는 나의 질문에 “응.” 이라는 아이.
기찻길 두 개를 연결시키니 둘째 아이는 형광등 보다 환한 웃음을 지으며 갑자기 나를 향해 짝짝짝! 박수를 친다. 옆에 있던 기찻길 하나를 더 연결 시키고, 또 연결시켜서 기다란 기찻길을 만들었더니 신나게 박수를 쳐댄다.
“엄마 잘했어? 기찻길 만들어서 좋아?” 라는 나의 말에 아이는 씩 웃으면서 “응” 이란다.
갑자기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두 살짜리 아이에게 박수를 받으며 나는 두 살의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아이 마냥 기분이 너무 좋았다. 밤새도록 박수를 받고 싶었다. 옆에서 놀고 있던 첫째 아이에게도 부탁했다.
첫째 아이는 영문도 모르고 그저 웃으며, 둘째 아이는 형을 따라서 나를 향해 박수를 쳤다. 두 아이에게서 받는 박수는 내 마음을 춤추게 했다. 나는 덩실 덩실 춤을 췄다. 구름 위를 걷는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나는 그 모든 것을 잘하지 못했을 때에도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고 싶었다.
‘실수해도 괜찮아, 너는 충분히 했어.’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성적표가 나왔을 때 반에서 5등 아래로 떨어지면 엄마에게 성적표를 보여주지 않았다. 내 스스로 만족할만한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숨겼다. 그리고 그럴듯한 핑계를 댔다. 내가 못한 것은 엄마에게 절대 보여주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그런 나의 모습은 성인이 되어서도 연결이 되었는데,
떳떳하지 못한 행동이나 실패한 연애에 대해서는 엄마에게 절대 말하지 않았다.
부모에게 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 없었던 나는 늘 마음 한구석에서 모든 것을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고, 현실에서는 차마 나의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음에 나를 방어하기에 바빴다. 항상 긴장을 늦추지 못했고, 이것은 육아를 하면서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의 사소한 실수에 대해 ‘아이들이니까 그럴 수 있지’ 라는 마음보다는 아이가 엎지른 우유를 내가 닦아야 하는 게 싫어서 짜증을 냈고, 아이가 진흙탕에서 첨벙거리면 빨아야 할 운동화와 바지가 눈에 어른거려 ‘이제 그만 첨벙거려!’라고 아이를 통제했다.
특히 시댁에 가면 ‘무엇이든지 잘 보이고 싶은’ 그 마음이 극대화 되어서 단 하나의 실수도 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시댁에 다녀오는 날이면 탈진한 것처럼 몸이 축축 늘어지고 피곤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시어머니가 아무리 편하게 대해주어도 나는 마음속으로는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실까봐’에 대해 눈치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시댁은 내게 더이상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되어버렸다.
누군가의
‘이거 왜 이랬어?’ 라는 말에,
내가 그랬음에도 주눅이 들어 내가 그럴 수밖에 없는 핑계를 댔고 스스로를 방어하느라 모든 에너지를 다 썼다.
어쩌다 나는 이토록 자신을 방어하고 솔직하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너그럽지 못한 사람이 되었을까.
도대체 왜 그 누구에게도 나의 진짜 마음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을까.
나의 진짜 모습을 알면 내게 실망할까봐, 싫어할까봐, 버림을 받을까봐 두려워서 나는 남들에게, 가족에게, 내 아이들에게도 나의 진짜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어쩌면 나 자신에게 까지도 나의 진짜 모습을 숨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 자신의 모든 모습을 받아줘야만했다. 좋은 모습일때, 만족스러운 모습의 나 자신만 인정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모습 역시 나인데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 삶의 기준이 나의 눈이 아닌 제 3자의 눈이 되어버린 그 순간, 내 삶은 점점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 삶에서 제 3자는 있을 수 없음을 깨닫는 그 순간,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나의 진짜 현실이 두 눈에 고스란히 들어왔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의 눈에 내 삶을 맞추지 않는다. 아이들의 박수에 고마워서 눈물이 났고, 나는 나의 모든 모습에 박수를 쳐주기로 했다. 짝짝짝 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