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가 본 곳에
나 홀로 서 있다.
주변은 안개가 자욱해서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 없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몸의 다른 곳곳에도
아토피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기 피부는 ‘보드랍다’고 하는데,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지만 궁금할 새도 없었다.
아이를 씻기고 나면
금방 울긋불긋 해지는
아이의 거친 피부에
로션과 약을 발라 대기 바빴다,
아이는 입이 짧았다.
분유도, 이유식도 양껏 먹지 못하는
아이는 조금만 허기가 져도
울고 짜증을 냈다.
아이의 허기를 채워 주기 위해
음식을 하는 나의 손도 덩달아 분주했다.
‘오늘은 이 재료로 어떤
음식을 만들어볼까?’
‘어떻게 줘야 아이가
잘 먹을까?’가 나의
최대 관심사였다.
음식이 입으로 한 숟갈이라도
더 들어가면
기뻐서 웃음이 나왔고,
유난히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 날은
화도 났다가 안쓰럽기도 했다.
그러다 어떤 음식을 먹고
알레르기가 올라오면
스물 스물 올라오는 죄책감.
'나는 엄마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고
나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불쌍하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어느 날, 늦은 오후에
분유만 먹었는데
갑자기 알레르기가 올라오면서
아이의 변에 피가 비쳤다.
놀란 마음을 부여잡고
원래 다니던 병원의
마감시간에 맞춰 아슬아슬하게 달려갔다.
병원에서는 얼굴을 찌푸리며
사진으로 찍어간 아이의 변조차
제대로 보지 않으려 했고
상급 병원으로 가보라는 말만 했다.
아이의 상태를 제대로 봐주지 않는
의사 선생님의 태도에,
'이제 곧 병원 마감시간이라
피곤하신가보다'고 이해를 하면서도
화가 났고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다시 택시를 탔다.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택시기사님은 내 얼굴을 보더니
‘아이가 어디 아파요?’라고
물어보셨다.
‘네’ 라고 짧게 대답하고
집으로 가는 주소를 말하려는데
‘이 동네에서는 이 소아과가 좋아요.
우리 손주들도 다 다닌 곳이에요.’
한 마디를 무심히 던지는 기사님.
나는 기사님이 말씀해주신
소아과로 가달라고 했다.
병원 입구에서 사정을 말하니
간호사 선생님은 몇 분이
지나지 않아 곧바로
아이의 진료를
볼 수 있게 도와주셨다.
의사 선생님은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의 엉덩이를
봐야 겠다고 하시며
이리 저리 살펴보시더니
‘여기에 상처가 났어요.
보이죠?’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조급해 보이는 내게
‘아기 엄마, 기다려야 해요.
그냥 좀 마음을 내려놓고
기다려야 해요.
이건 시간이 걸려요.’ 라는
말씀을 내게 해 주셨다.
‘조급해하지 말아라. 기다리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비로소
안심이 되었고,
내가 엄마로서 해야 할 것은
아이의 상황에 대해 조금은
무심하게 지켜보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머릿속으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눈 앞의 아이만 보면
실천이 되지 않았던 그것,
인내와 기다림.
흔들리는 나의 마음을 잡아주었던 두 단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