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이 별건가

부부가 말이 점점 없어지는 이유를 알 것 같다

by 솔트다움 박연희

결혼 8주년. 결혼한 지 몇 주년인지 둘이 앉아서 한참을 손가락을 꼽아가며 세어보았다. 8주년? 9주년? 둘 다 헷갈리니 둘 중 누구 하나 서운하지도 않다. 내가 그렇게 늙었단 말인가. 8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밥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건만.


맙소사. 고기가 너무 맛있다.

"우왓! 이거 먹어봐"


고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레어도 정도껏인 미디엄 웰던 정도의 고기 굽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건 미디엄 정도의 굽기도 너무 맛있다!!


우리가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는 다 어디 가고 "맛있지. 맛있지."를 연발하다가 돌아왔다.


지난 얘기 나누어 봐야 무엇하나. 현재가 중요하지.

미래 계획 나누어 무엇하나. 막막한 미래 우리 함께 잘 살아내기를 기도할 뿐.


아침에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울던 둘째 이야기를 하고 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래도 결혼기념일이라고 커피도 스타벅스 DT에서 사주시는 신랑님.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올해는 그래도 함께 있을 수 있어서, 기념 삼아 밥이라도 한 끼 같이 먹을 수 있었으니 그걸로 족하다.



우리의 지난날들

꽉 채운 나이에 결혼을 했고, 둘 다 너무 바빠서 아이 갖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아이가 정말 생기지 않는다면 퇴사도 불사할 작정이었다. 그렇게 원하던 아이들을 금지옥엽 키웠다. 그간 난 퇴사를 하고 신랑은 중국 유학을 다녀왔다. 태어나 제일 잘한 일은 아이들을 낳은 일이라지 않던가.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 둘이 잘 자라주고 있는데 우리의 상황의 어떠함 따위 아무 상관이 없었다. 대화를 나눈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고, 평소에 대화가 너무 없는 편은 또 아닌지라 특별히 할 말이 없기도 했다.


부부가 둘이 있으면 말이 없어지는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앞으로는 어떻게 살까

큰 욕심이 없다. 교통이 너무나 불편한 산 위에 터를 잡고 살고 있지만 빠른 시일 내에 이사를 가고 싶다는 바람도 없고, 집이 대궐 같았으면 하는 마음도 없다. 그냥 있는 짐이나 좀 버리면서 살면 좋겠다. 지금처럼 매일매일 새로운 도전을 하며 내 일을 만들어나가고,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가정을 안정되고 편안하게 지켜나가는 것. 남한테 꾸지 않아도 될 정도로 부 하고, 나누며 살만큼 넉넉한 마음을 갖고 사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


엄마로서 앞으로 나는

나를 없애면서 까지 참고 살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내 일을 앞세우고자 가정을 희생시키고 싶지도 않다. 그냥 모두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공존할 수 있을 만큼만.


"그래 가지고 일이 진도가 나가겠어?"

진도 나가는 만큼만 할 거다. 하지만 시간을 낭비하지도 초점 없는 방황을 하지도 않을 거다.


"엄마는 맨날 책 보고 컴퓨터만 해?"

니들 옆에서 책 보고, 니들 옆에서 컴퓨터 하잖니. 너도 책 보고 놀아.



결혼 8주년. 결혼을 했고, 아이들이 있고, 내 집도 있고.


이만하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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