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 위에 올려져 있던 손이 불현듯 멈췄다. 누가 전원 버튼을 끄기라도 한 듯, 중력이 온몸으로 느껴지고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다. ‘무엇을 위한 일인가’ ‘이 일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나’라는 질문에 답을 잃어버린 순간이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일을 재미있게 열심히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어떤 일을 하게 돼도 일에 미쳐서 엄청난 성과를 낼 것이라 생각했었다. 주변 친구들도 하나같이 ‘넌 나중에 일을 시작하게 되면 워크 홀릭이 될 것 같아’라고 얘기하곤 했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생각을 해보면 그냥 나도 ‘내 삶의 의미’에 대해서 성찰을 할 줄 아는 인간이었을 뿐이다.
미련하리만큼 ‘무엇이든 성실히 열심히’ 살던 나에게도 ‘왜?’라는 질문은 생각보다 중요했다. 왜 그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내 안에 있어야만 했다.
일이라는 것이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1년 365일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같은 일이라도 때로는 재미있기도 또 때로는 미치게 지루하기도 하다. 첫 만남에서는 내 운명인 것처럼 온 정신을 집중했다가도 나른해지고 창밖에 쨍하니 햇살이 들면 내 삶의 의미는 사무실 안이 아닌 창밖에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사무실 안에서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야 더 머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이란 참 일관적이지 못하다. 좋은 일이 생기고 기분이 좋아지면 또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왜 따위 뭐 그리 중요한가? 월급을 받는데. 하라는 일 하고 가끔 동료들이랑 차 한잔씩 하며 기분 전환도 해가면서 일상의 감사함을 노래한다. 출근길이 상쾌하고 일하러 나갈 곳이 있어서 감사하다. 그렇게 하루하루 감정의 파도타기를 하다 보면, 울던 아이 입에 사탕 물려주듯이 월급이 들어온다. 또박또박 들어오는 월급으로 아이를 교육시킬 수 있고 대출 이자를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데,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일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니 배부른 소리인 것을 알기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회사를 다니며 일을 한다는 것이 견뎌내야 하는 인내의 자리가 아니라 가치 창출을 하는 의미 있는 일이라는 동기부여는 비단 직업 효능감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의 인정받고 보람을 느낀 하루는 일상의 행복감에도 밤늦은 육아 에너지에도 강하게 그 여파가 이어진다. 하지만 회사의 일이라는 게 드라마처럼 그렇게 매일 흥미진진하겠는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무미건조한 날들은 내 일상의 재미와 에너지를 조금씩 갉아먹기 마련이다.
평생 일을 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 있다. 평생 가치 창출을 하며 삶의 의미를 찾고 싶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고 싶다. 그런데 회사는 언젠가는 은퇴를 해야 하고, 은퇴 나이 이전에도 수십 번의 퇴사 위기를 겪는다. 진짜 평생 일하고 싶다면 회사 안에서는 답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물론 모든 사람의 계획과 생각이 다르고 그에 따른 지금의 선택도 달라질 것이다. 일을 활동적으로 할 수 있는 나이에 최대 마력으로 일을 하고 왕성한 활동 시기가 지나면 여행도 하면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것도 분명 그림 같은 계획이다. 하지만 나라는 인간에게 어울리는 그림은 아닌 듯했다.
회사에서 역량을 발휘하며, 이따금 오는 권태도 견딜 수 있는 만큼 최대한 견뎌보고 그다음은 그때 생각하면 되는 것 아닌가? 왜 걱정을 미리 사서 하는 것인지 나도 나 스스로를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회사에 최대한 다니면서 그 안에서 쌓인 경력이 분명 그 후의 일을 도모하는데 큰 힘이 될지도 모르기 않는가. 하지만 나의 이성적인 결론은 회사는 거기까지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인간의 에너지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나이를 먹음에 따라서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은 분명 다르다. 적응력과 습득력은 말할 것도 없다. 공부도 때가 있다는 말은 별로 믿지 않는다. 그런데 일에 때가 있다는 말은 맞는 듯하다. 평생 일을 하고 싶다고 해놓고 무슨 말이냐고? 평생 일을 하기 위해서 가장 어려운 ‘다시 도전’ ‘재 시작’을 하는 나이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시작이 유지보다 훨씬 더 큰 에너지와 무모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뿐이다.
내 무기력의 이유를 알았다. 내 존재 가치를 회사 안에서 발견하는 것에 유효기간이 존재하고 그 유효기간을 피상적으로는 내가 결정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조직의 흐름에 눈치를 보게 될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한 사무실 안에서 일 없이 투명인간처럼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대 선배들이 그 증거였다. 일과 월급을 양 끝에 놓고 결론 없이 왔다 갔다 하던 저울이 한쪽 바닥으로 쿵 하고 닿는 순간이었다. 내가 나가서 다시 시작한다면 월급만큼의 돈을 얼마 후에 다시 벌 수 있을까? 기약은 없지만 해보고 싶었다. 돈이 제일 중요한 인간이지만 동시에 같은 밀도로 돈이 다가 아니었다. 인생을 살아볼 만큼 살아본 어른들이 “돈이 제일 중요해” 하셨다가 “돈이 다가 아니아”라고 하시는 말씀은 변덕이 아닌 인생의 패러독스이다.
일이 재미있었고, 인정받는 소소한 순간들의 성취감은 그날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고, 매일 만나는 동료들과의 함께함이 좋았지만, 거기까지. 가장 좋을 때 떠날 수 있음도 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