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핑계로 36계 줄행랑

때문일까 덕분일까

by 솔트다움 박연희

일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무엇이든 시작은 쉽지만 끝맺음은 참 쉽지 않다. 그중에서도 난이도 상급의 끝맺음이 다니던 직장과의 이별이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려면,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내 일을 만들러 떠난다는 돈키호테도 울고 갈만한 진짜 이유 말고, 조금 더 ‘어른스러운’ 핑계가 필요했다. 조금 더 좋은 기회를 찾아서 이직을 한다던가, 창업을 한다던가, 육아에 집중을 한다던가 하는 4지 선다형 답안지에 적혀 있을 법한 그런 이유 말이다. 그중에서 나에겐 둘째 출산과 두 아이 육아라는 ‘핑계’가 있었다.


육아를 핑계라고 이름 붙인 이유가 있다. 육아와 직장생활이 상호 간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육아가 퇴사의 진짜 이유는 아니기 때문이다. 일을 하되 반복되는 출퇴근과 사무실 근무환경을 벗어나고 싶었고, 더 늦기 전에 회사를 그만둘 수 있는 명분이 필요했다. 많은 기혼여성들의 퇴사 사유가 되는 출산과 육아가 그 명분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렇다고 퇴사 후가 걱정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당장 퇴사 다음날부터 밀려올 공허함과 어떤 일을 시작해야 할지 모를 막연함과 무가치한 인간이 되어버린 듯한 허전함이 폭풍처럼 밀려올 것임을 직감으로 알았다. 동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내일 당장 후회할 것 같아요”라고 했더니, 반응이 하나같이 “그런데 왜..”였다. 하지만 내 이성은 떠나야 하는 시점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뭘 그렇게 하려고 해. 좀 놀아. 놀아도 누가 뭐라고 안 해.” 때로는 이런 말에 숨통이 트이기도 한다. 하지만 금세 다시 스스로를 조이고 만다. 지속적으로 무언가 시도를 해야 내 일을 만들 수 있고, 난 일을 놓을 수 없는 인간임을 알기 때문이다. ‘일’이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사람이 일을 하는 이유는 돈, 소속감, 사회적 존재감, 인정 욕구, 자아실현 욕구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돈 이외에는 직접적인 이유로 보이지 않는 이런 일의 가치나 이유들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중요하다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중 일부에게는 생존과 맞닿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사회에서 가치 창출을 하면서 내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은 나의 자존감에도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이다. 단지 일이 재미있어서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에게도 ‘일’이라는 것은 사회적 생존 신고와 같았다. 군번이 군인의 생사 확인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일을 그렇게 원하면 회사 안에 있으면 되지 않는가? 왜 처음도 끝도 일로 점철되어 있는 회사를 나와서 다시 일을 찾겠다고 스스로를 닦달을 하는 것인가?라고 묻는 다면 엄마가 된 나에게 지금 이 시기에 돈과 일보다 ‘시간’에 대한 권리행사가 더 높은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가끔은 머리카락을 뽑아 후 불어 분신술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 만큼 시간이 귀한 상황이 되고 보니, 내가 출퇴근을 하면서 내 인생의 ‘시간’을 담보로 급여를 받았었구나 깨닫게 되었다.


말은 직장에 매여있는 것이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없고 미래가 불투명하다 말하지만 사실 제일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이 회사를 다니는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퇴사해서 내 일을 만들어보겠다고 머리를 싸매면 싸맬수록 회사가 참 좋았구나 싶다. 하지만 아직은 엄마의 역할과 일을 저울질하는 시대가 끝나지 않았다.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work and life balance 가 가능한, 엄마들의 신의 직장은 아직 한 세기는 더 지나야 가능할 것만 같다.


첫째 출산 후 복직을 앞두고 아이를 두고 출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 뼈아프게 다가왔었다. 모성 본능이 특출 난 사람이기 때문은 아닌 듯하다. 엄마와 한 몸처럼 지내던, 아직은 혼자서 생존이 불가능한 핏덩이를 다른 사람 손에 부탁을 한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기관에 보내지 않고 할머니 손에 맡긴다는 것도 나의 이성적 판단이 용납을 거부했다. 엄마는 아이를 낳는 출산이라는 사건으로 아이와 특별한 유대감이 있으니 애랑 24시간 붙어있어도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 치자. 아이를 아무리 사랑해도 쉬운 일이 절대 아닌데 체력도 떨어지고, 자녀들 다 키워놓고 이제 제법 자유로워지신 친정엄마에게 다시 아이를 맡긴다는 것이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 정도면 육아를 퇴사의 핑계로만 볼 수 없는 것 아닌가? 싶지만 아이들은 큰다. 육아를 이유로 퇴사를 생각하는 워킹맘이라면, 앞서 이야기한 엄마로서의 심리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신중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 심적 어려움에 스스로가 얼마나 대담할 수 있는지의 여부도 사실 엄마들의 근무 형태와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를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육아를 이유로 퇴사를 고민한다면 여러 가지 옵션들을 적극적으로 검토해보자. 더디긴 하지만 분명 단축 근무 등 활용해볼 만한 제도들은 계속 생겨나고 있고, 재택근무도 늘어나고 있으며 일하는 시간 자체도 짧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만 해도 벌써 주 4일 근무 이야기가 슬슬 나오고 대체 공휴일이 확대되고 있지 않은가. 쓸 수 있는 육아 휴직 기간도 늘어나고 이전보다 더 자유롭게 기간을 자르고 이어가며 쓸 수 있다는 점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의 변화를 기다리느라 우리 아이의 중요한 순간들을 놓칠 수 없다, 하는 경우에는 늘어난 육아 휴직을 먼저 최대한 활용해보자. 지금 당장 어려운 점들로 급히 퇴사 결정을 하는 것보다는 퇴사 후를 준비할 시간도 좀 벌고, 달라지는 근무 환경도 좀 기대해볼 겸 말이다.


회사 안은 관리 감독 삼엄한 시험장이지만, 회사 밖은 총성 없는 전쟁터 이자, 삼 사방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정글이다. 퇴사 후에 무엇을 할지 미리 준비해서 나올 여력이 없다면 마음의 준비라도 단단히 해 놓는 것이 좋다. 차근차근 성장해 간다면 희열의 지분도 100%이지만 실패의 충격도 고스란히 내 몫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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