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은 '모된감상기'로 '엄마로 사는 느낌이 어떠하냐' 고 나에게 묻는 듯했다. '나는 억울해 죽겠다' 고 '내 삶은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고 '그리고 아직까지도 그런 생각을 버리지 못하겠노라' 고 말하는 듯했다.
모된감상기는 100여 년 전에 쓰인 출산과 육아에 대한 기록이다. 지금이야 육아서가 흔하디 흔하지만 그 시절에는 어디 그랬겠는가. 드러내기 남사 스러 꽁꽁 싸매 두고 꿀꺽꿀꺽 참아 넘기던 우리들의 속내를 나혜석은 참도 날것 그대로 쏟아낸다.
'남들도 다 겪는 일이다. 유난 떨 만한 일이 아니다' 하기에는 출산은 너무나도 위험천만한 이벤트였다. '이렇게 큰 일을 다들 겪는다고?' 겪어보고 나니 더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출산보다 모유 수유와 육아가 더 힘들다는 사실이었다. 여기서 끝이었다면 나혜석의 모된감상기도 작금의 다른 육아서들도 없었을 터, 출산과 육아는 여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다. 여자의 인생은 아이를 낳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하는 말에 반박을 할 수 없는 이유이다.
엄마로서의 삶을 논하는 것에는 엄마이기 이전에 '나'로 살아온 한 사람의 인생과 '나의 일'이 출산과 육아로 지속이 어려워짐을 내포한다.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일은 분명 그 가치를 가늠할 수 없는 귀한 일이다. 하지만 내 삶이 없어지는 듯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난제 중 난제, '엄마'로서의 인생을 어떻게 요리해 나가느냐에 따라서 여자의 인생은 참 많이 달라진다.
나의 모된감상기
나혜석이 느꼈던 감정처럼 너도 그렇게 억울하냐?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임신, 출산, 육아를 너무도 동경했었다. 결혼은 안 해도 아이는 낳고 싶다는 철없는 소리를 했던 기억이 있을 정도이니. 적지 않게 충격적이지만 신성한 엄마가 되는 과정과 경험에 나는 대체적으로 꽤나 우호적이다. 아이들은 볼수록 예쁘고 신비스럽다. 간혹 아이들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넋을 놓고 감탄한다. '얘를 내가 낳았다고? 얘가 내 새끼라고? 어떻게 이런 아이를 낳았지?' 신기하고 감사하다. 아이들이 커나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대견함과 뿌듯함은 '일'을 성취했을 때의 그것보다 더 묵직하게 내 마음을 꽉 채운다.
한 가지 생각 못한 것이 있다면 그 이후의 '변화'에 대한 것이다. '엄마가 되었다'는 그 한 가지의 변화가 몰고 온 쓰나미는 내 삶 전반을 휩쓸었다.
내 아이들 옆에 있어주고 싶다는 것과 내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은 참 서로 양보가 되지 않는 모순이다.
둘 중 하나를 택할 수도 없고 둘 다 잘할 수도 없다. 사실 둘 중 하나만 잘해도 능력자라 할 수 있지만 둘 중 하나를 잘 해내지 못한다고 반드시 또 다른 하나를 겸하기 때문이라고만 볼 수도 없다. 그럼에도 회사에 다니는 많은 가정을 가진 사람들 중에 육아를 겸하는 여자들을 콕 집어 그들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이래도 억울하지 않다는 말이냐?
다시 한번 생각해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내 삶이 난 억울하지 않다. 나 또한 나는 다를 것이라 생각하며 살고 그런 생각을 놓지 못하고 발버둥 치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하지만 그런 내 상황이 그리 딱하지만은 않다.
애로사항이 왜 없겠는가. 시간도 내 마음대로 못쓰고 외출이 마음 편하지도 않다. 이래 가지고 무슨 일을 하겠다고 싶은 상황이 매일 반복된다. 하지만 곰곰이, 나 스스로가 감춘 내 속을 들여다보면 육아로 인해 나에게 '합리적인' 핑계가 늘었을 뿐이다. 시간과 공간에 자유롭지 못한 것은 맞다. 어쩌면 이전의 직업을 유지한다는 것이, 갖고자 하는 마음이 '욕심'인 사치가 되어버린 것도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나를 놓을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나에게 생긴 두 아이는 어떠한가.
어디 가서 내가 이만한 업적을 세울 수 있다는 말인가. 보송보송한 생명체가 내 얼굴 앞에서 웃고 조잘조잘 말을 한다. 세상 이만큼 신비한 일을 겪어본 적이 없다. 기저귀만 5년 넘게 갈았다. 아직도 화장실에 불려 가 씻기고 입힌다. 그런데 세상 다른 뒤치다꺼리와 다른 점은 내가 이 자리를 떠나지 않아도 이 일들에는 '끝'이 있고 '키운다'는 보람이 있다는 거다. 내가 사람을 길러내다니. 내 코가 석자인 내가, 내 앞가림을 잘하고 있다는 확신도 가끔은 흔들리는 내가 사람을 키우고 있다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멍해질 때가 있다.
나는 엄마가 된 것이 좋다.
결론적으로는 그렇다. 득과 실을 굳이 논하는 것이 많이 무의미해졌다. 현실을 아니다 할 마음은 없지만 좋은 것을 놓치며 살고 싶지도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상황에 맞게 해 나가면서, 이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아이들 해맑음에 넋을 잃기도 해 가면서. 그렇게.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