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인간에게 생긴 '엄마'라는 페르소나
아이를 낳은 후 내 삶은 그 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출산 하루 전날까지도 내 삶이 이렇게 바뀌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삶이 바뀌었을 뿐 내가 바뀐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변해버린 상황과 그 상황 안의 변하지 않은 나는 심리적 갈등이 빚어질 수밖에 없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버거움들의 연속이었다.
사실 변하지 않은 건 나의 옛 자아일 뿐, 내게는 '엄마'라는 새로운 자아가 생겼다. 사실 임신을 했다고 모성애가 막 갑자기 생기진 않는다. 임신은 그저 내 몸의 변화나 현상이고, 출산은 내가 겪는 고통이고 그렇게 나의 일로만 여겨졌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 내 어깨 위에 올려졌는데.. 정말 엉.엉. 울고 말었다.. 쪽팔림 따위.. 정말 온몸이 아득해지는 듯한 감동.. 다른 말 없나.. 부족한 표현력이 아쉽기만 하다.
그리고 아이를 키 우는 첫 일 년, '엄마'라는 페르소나에 모성애라는 것이 몽글몽글 자라났다.
아가야 널 두고 어떻게 내가
아이도 엄마인 저한테 애착이 형성되고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돼버렸는데.. 복직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의 부재를 친정엄마와 함께 채워줄 만한 방법들을 찾아보다가 하필 그때 유독 오며 가며 자꾸 만나게 된 어린이집 원장님과 상담을 하고 어린이집을 보내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그때의 그 '결정'이라는 두 글자 나의 잠 못 자고 가슴 떨며 울었던 3일 밤이 묻어있다.
복직하고 친정엄마의 고생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어린이집 첫해 감기를 달고 사는데 엄마 차엔 카시트가 없으니 날이갈수록 무거워지는 아이를 아기띠로 메고 마을버스를 타고 병원을 데리고 다니셨다. 에효. 다 말해 무엇하랴. 이쯤에서 그만..
회사를 그만둔 것이 꼭 육아 때문만은 아니었다. 상황 상의 이유가 지금 당장은 육아가 팔 할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평생 일할 수 있는 나만의 일을 찾고 싶었기에 퇴사는 언젠가는 겪어야만 하는 과정이었다. 퇴사를 마음먹은 그 언젠가부터 계속 넥스트 스탭을 위해 여러 분야의 일들을 탐색하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도 했던 탐색인데 아이가 생기고 나니 일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확고한 원칙이 서 가고 있었다.
엄마의 일, 그 미련한 원칙
아이들이 필요할 때 옆에 있어주고 싶다.
워킹맘 시절 호환마마보다 두려운 것이 육아 공백이었고, 어린이집의 방학은 공포였다. 그냥 내가 할 수 있으면 속 편하겠다 싶었다. 그래도 가끔 일이 생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내가 아이들을 케어할 수 있다는 것이 저한테는 큰 평안과 감사였다.
게다가 우리 아이들. 누굴 닮았는지 민감한 편이라서 내 아이들의 예민한 정서적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해 주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엄마' 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내일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관성이란 참 무섭다. 일을 했던 사람은 일을 해야 숨통이 트인다. 아니면 내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도록 생겨먹은 건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핏덩이 같은 내 새끼를 낳고 나서도 변함없이 끊임없이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 나를 보면 일이라는 게 대체 나한테 무슨 의미이길래?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리고 이런 내면의 갈등은 아이를 잘 키우면서 나의 일도 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자라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을 벗 삼아 성장해 나가는 것 이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이었던 것이다.
'엄마'인 나도 '나'인 나도 둘 다 놓을 수 없다면 조금은 천천히. 아이들에게 지극 정성 만점 짜리 완벽한 엄마가 되어주지도, 내 일이 지금 당장 홈런을 치고 점수를 내기 위해 홈으로 내달리지도 못하더라도. 아이들의 마음을 곁에서 살펴주고, 내 마음에 끊임없이 귀기울여가면서 그렇게 이 관문을 통과해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