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 아이의 시간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나에게 필요한 것
엄마의 시간, 엄마의 시절을 세상이 정의한 '성과'로 채우기 위해 사투 아닌 사투를 벌이는 동안 아이의 시간도 가고 있음을. 내가 문득 깨닫게 된 것은 정말 한 순간, 찰나였다. 하루 종일 해야 하는 일들을 줄 세워가며 혼이 뺏겨 있다가 거실에 나가 잠시 엉덩이를 붙였는데, 아직 보송보송한 아이들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이렇게 예쁜 아가구나.' 내 눈이 때론 이 예쁨에 충분히 머무르지 않으면 나중에 크게 후회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렇게 가끔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시간을 흘려보낸다.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가 이쪽인지 저쪽인지, 시시때때로 기분 내키는 대로 다르게 정의하며 때로는 이쪽에 또 때로는 저쪽에 숨어든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랴. 목표를 잡고 가는 한, 속도가 어떠한들 사실 내게 조금 덜 중요하다. 내가 그 길에 서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 완벽한 엄마가 될 수는 없지만 '엄마'로 아이들 곁을 지키고자 할 때는 얼마든지 지킬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고, 하는 일이 당장 번듯한 사업의 모양을 갖추지는 못해도 다른 사람의 변화와 성장을 조금씩이나마 돕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하다.
하지만 사실 엄마의 시간을 운운하며 아이들 케어에 구멍이 보임도, 아이의 시간을 내 세월에 깊게 새기려 내 일에 진도가 더디 나감도 쉬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성격이 되지는 못한다. 때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마음의 눌림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행복하다 말하는 '나라는 엄마의 앞 뒤 안 맞는 행복론'에는 사실 엄청난 멘탈 싸움이 필요하다.
나 나름으로는 그것이 가치 있는 한 인간으로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며 살기 위해 중심을 잡는 것으로 미화하고 싶지만, 사실은 그저 건강하게 엄마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인 듯하다.
요즘 들어 내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그리고 그 생각에 나의 가까운 주변인들과 '글 쓰는 오늘'의 멤버들의 글과 그 정서가 스며들어가고 있는 듯하다. 책 한 권 끼고 아이들 곁에 머무는 매일. 읽다가 시간이 나는 만큼만 써내는 딱 그만큼의 '성과'. 아이가 크고 내 시간이 많아질수록 써내는 글의 양은 자연스레 늘어나고 그것이 업인지 일상인지 경계가 모호해지는 삶. 감히 '글'이 내가 돌아갈 곳이 되어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의 시간에 엄마로서 자리를 지키겠다고 하는 것이 나에게는 돌아갈 곳에 대한, 내 업에 대한 '보험'이 필요했나 보다. 내 아이 옆에서 엄마가 아닌 '나'도 행복할 수 있는 삶에 대한 고민이 정말 많이 깊었나 보다. 그 고민의 해결책에 대한 나 스스로의 제안은 계속 바뀌겠지만 일단은 마음이 편해졌다. 믿는 구석이 생겼으니 조금은 더 여유 있게 모든 일을 할 수 있겠다. 안 하겠다는 말이 아니었군; 돌아갈 곳이 생겼으니 배짱도 좀 부려보자. 맙소사. 작디작은 아가들 곁을 믿는 구석이라고 정의한 나 스스로가 조금은 부끄럽지만, 아주. 매우. 많이.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