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학교에서 떡잎을 틔운 새싹을 가져왔을 때, 놀이터에서 만난 곤충과 너무 재밌게 놀다가 집에서 키우겠다고 가지고 들어왔을 때, 키우던 거북이와 조금 더 친밀감을 느끼게 된 순간에,
아이는 그 대상들에 '이름'을 지어주었다.
학창 시절 친한 친구의 이름을 부르다 부르다 끝내 그 친구의 이름이 특별하게 느껴지고, 존경하는 선생님이 내 이름을 알아주면 기쁘고, 좋아하는 장소나 지역은 그곳의 이름만 들어도 머물렀던 추억과 공간의 분위기가 떠올라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설렌다.
네이밍이라 하니 거창하게 들릴 뿐,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리가 아끼는 것들에 이름을 지어주며 살아왔고, 이름이라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두며 살아왔다. 그러하기에 네이밍이 나를 각인시키는 '브랜딩'에 그토록 중요하다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이치일 뿐, 특별한 발견이나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깨달음이 아니다.
우리가 이름을 지어주던 경험들을 되짚어보면 관련 서적에서 발견되는 네이밍의 원칙들에도 '그렇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에게도 남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부르기는 쉽고 친근한 이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안 좋은 단어들을 연상하게 하지 않고 긍정적인 단어들과는 연결되고 연상되는 그런 이름. 최근 주목받는 트렌드를 담고 있으면 금상첨화이고,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그 이름을 계속 바꿀 것이 아니니 시간을 건너 일률적으로 사람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가치를 담은 이름. 이름의 뜻을 설명하며 나의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풀어내질 수 있는 이름.
여기에 모두 해당되지 않더라도 그저 내게 의미 있고, 어감이 좋다면, 그리고 내가 여기저기에 붙여서 자꾸 불러주면 그러면 그게 네이밍이지 싶다.
'엄마들의 새로운 시작이 조금은 수월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처음 품게 되었던 그때, 가장 먼저 한 것이 네이밍이었다. 내겐 그 생각이 그만큼 소중한 무언가였던 것 같다. 엄마를 의미하는 Mama와 흥해라! 해냈다!라는 느낌으로 Rules를 붙여서 마마룰즈라는 이름을 그 '마음'에 붙여 상표권 출원까지 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그 마음은 쉬이 버려지지 않았다.
솔트라는 닉네임을 짓던 그때, 빛과 소금 중에서 소금을 택했다. 음식의 모든 맛을 살려주는 소금. 예쁘거나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지만 음식에 녹아들어서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금이 내가 살고 싶은 인생 2막의 모습이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본능적으로 내가 기획하는 프로그램들의 이름을 짓고, 고객의 닉네임을 짓고, 고객의 프로그램 이름을 지었다.
그. 런. 데 사실은 의미를 담아 짓고, '많이' 부르면 특별해지고 익숙해진다는 것이 가장 강력한 팩트이다.
지금 내게 가장 특별한 이름은 내 이름도 남편 이름도 아닌 아이들의 이름이다. 참 흔한 두 아이의 이름이 세상 어떤 이름보다 내겐 특별하다. 아이들이 눈앞에 보이는 모든 순간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대니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아이들의 존재 자체가 엄마에게 특별한 것은 맞지만 그 존재들이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상상조차 되지 않는 것을 보면 존재와는 또 별개로 내 입에 붙은 두 아이의 이름 또한 이미 너무나 특별해진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