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아이가 인품이 좋아요
칭찬에도 웃어지지 않는 미안한 엄마
그날따라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지 않겠다며 외투를 입지 않고 드러누워버렸다. 여느 날 같았으면 어르고 달래면 마지못해 따라나서는데 그날만큼은 달랐다. "엄마랑 같이 집에 있자." 했더니, "응" 한다.
아빠와 누나가 등원 차를 놓칠세라 등원 길을 서둘러 나섰고 둘째는 엄마와 둘이 남았다. 우리 둘만 있는 이런 상황이 서로에게 익숙지 않다. 어색한 듯 설레는 듯 마주 보며 씨익 웃었다. 잠시 놀고 있으라고 설거지를 하는데 "엄마 나 찾아봐" 하며 설거지 하는 엄마가 대번에 보이는 식탁 밑에 숨어 고개만 다른 쪽으로 돌린다. "아마 나 못 찾을걸" 하는 얼굴 가득히 '나 지금 너무 좋아요'하는 웃음기가 가득하다. "까꿍"하는 아이와의 눈만 따라가는 숨바꼭질에 내 마음이 심쿵한다.
설거지를 마치고 항상 커피 한잔을 내리곤 한다. 그런데 그때서야 아이가 아침부터 음료수를 먹고 싶다고 찾았던 것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아이에게 "우유 마실래?" 했더니 웃으며 "좋아" 한다.
우유 200미리 정도에 네스퀵 한 봉지를 넣고 흔들었더니 본인이 섞고 싶단다. 건네주니 신기한 놀잇감이라도 받아 든 것처럼 신나게 흔든다. 초코가 아직 덜 녹은 초코우유를 미키마우스 컵에 담아 빨대를 꽂아 주고 나도 커피를 들고 바닥에 마주 앉았다. "너무 예쁘다. 누구 아가야?" 했더니 "엄마, 아빠 아가" 하는 아이에게 '고맙다'고 토닥여주니 너무나도 수줍게, 입이 귀에 걸릴 만큼 환하게 웃는다. 그러더니, "이제 기분 좋아졌어"라고 하는 아이. 이때다 싶어서 "그럼 어린이집 갈래?" 했더니 웃으며 "응, 어린이집 갈래" 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들여보내고 돌아서려는데 원장 선생님이 불러 세운다. "성윤이가 어린아이인데 인품이 참 좋아요. 인성이 됐어 아이가. 어쩜 그렇게 말을~" 하시는데 내 맘이 어쩐지 기쁘지 만은 않다. 아이가 잘 크고 있다 하시는 말씀이니 감사할 일인데 혹시나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먼저 커버린 것은 아닌지, 애 어른으로 크는 건 아닌지 괜한 염려로 생각이 많아진다.
그도 그럴 것이, 작은 아이에게 태어나서 지금까지 줄곧 엄마를 누나에게 '양보'해왔다. 신생아 시절부터 순했던 아이였는 지라 우유만 먹고 나면 혼자 누워 놀았던 둘째. 아이에게 첫 번째 양육자는 아빠였고 아빠가 중국 유학을 갔을 때는 할머니였다. 첫째 아이에게 박탈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엄마의 빠른 회복을 위한 가족 모두의 배려였고 참 감사한 일인데. 그사이 아들은 엄마에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있었다.
'양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만큼 너무도 당연히 '누나는 엄마 아가, 나는 아빠 아가'라고 이야기하는 작은 아이의 말이, 들을 때마다 참 마음이 씁쓸하다. "엄마, 아빠 아가"라는 아가의 말에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왔던 이유이다. "크면서 다 엄마한테 오게 되어 있어요" "엄마가 복이 많네"라고 하시는 말씀들이 무슨 뜻인지 이해도 되고 공감도 되지만 서운한 애미맘 부정할 길이 없다.
"왜? 못 보겠어?" 말하는 중그렇다고 마음이 조급하지는 않다. '둘째는 사랑이다' 한없이 예쁜, 아직도 보송보송 여리여리 아가를 보고 있으면, '내가 이렇게 예쁘고 작은 아가의 엄마라니' 매일 같이 놀랍고 감사하고,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누워있는 아이의 온 얼굴에 뽀뽀를 퍼붓는 엄마를 깔깔대며 발로 밀어내도, 포기하지 않고 또다시 다가가 이번엔 온몸에 얼굴을 부비며 뽀뽀를 해댄다. 엄마는 웃자고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니 엄마다' '니가 밀어내도 니 옆에 있을 거다'라는 표현을 온몸으로 하고 있는 중인 거다.
쳐다보고 있자니 미치게 예뻐서 온 얼굴을 감싸 안았더니 "왜? 못 보겠어?" 하는 아이. '응, 눈이 부셔서 못 보겠어'. 예쁘다 사랑한다 수없이 말해주는 애미임에도, 말해도 말해도 한없이 부족한듯하다.
나는 엄마로서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내 아가들을 사랑한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유일무이하고 특별한 존재라는 것 이상으로 아이들은 엄마에게 삶에 가장 큰 존재이고 살아갈 의미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그런 엄마에게 뿌리를 박고 이 세상을 살아나갈 용기를 얻고 힘을 얻는다.
오늘도 여전히, 자다가도 아빠를 부르는 작은 아가. 그런 아가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한 엄마.
'그래도 내가 니 애미다!'
누군가, 누가 우리 아가들을 선물포장지에 싸놨어 (호기심딱지 호떡이 성대모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