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내내 무한 리필 훠궈

열이 많은 아이가 태어났다

by 솔트다움 박연희

둘째 임신 후반기는 감정적으로도 상황적으로도 우울함의 습격이 우려되는 시기였다.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던 워킹맘을 청산하고 퇴사를 선택했으나 일의 재미가 아직 손끝을 간질이던 끈적끈적한 상황. 잠이 오지 않던 밤마다 불현듯 생각나서 미친 듯이 검색을 했던 음식이 있었으니 바로 마라의 얼얼함을 혀가 기억하는 훠궈였다. 사실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에는 돈이 아까워 훠궈 대신 마라탕을 그렇게 먹었었다. 그때의 깔끔한 마라탕을 재현해 낸 곳을 아직 찾지 못했으니.. 찾게 되면 훠궈에서 마라탕으로 노선을 바꾸게 되려나...


마침 같은 시기에 회사를 그만둔 남편 덕에 출산 직전까지 한 달 내내 훠궈와 조우할 수 있었다. 본인은 먹지도 않으면서 한 달을 꼬박 나를 훠궈 식당으로 나르고 온갖 재료를 탕에 넣어 주었다. 아무리 좋아도 두세 번이면 질릴 만도 한데 계속해서 훠궈를 찾는 임산부와 뱃속 아이를 무던히도 받아주었다.


훠궈 향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대림역 근처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시장 골목을 따라 걸어간다. 광경까지 완전히 중국은 아니어도 중국에 온듯한 냄새가 온몸에 스민다. 그렇게 골목을 빠져나가서 대로변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보이는 식당, 그 한 군데로만 한 달을 다녔다. 우리 부부가 식당 안으로 들어가면 둘이 들어갔는데 한 명만 먹는 상황임을 모든 식당 직원이 안다. 그때 가격으로 무한 리필 훠궈가 1인당 만오천 원인데 한 테이블에서 혼자만 먹으면 2만 원을 내야 한다는 명명백백한 가격정책이 마음 편해서 선택한 식당이다. 자리를 잡고 앉으면 홍탕이냐고 직원이 먼저 묻는다. 우린 그저 웃으며 끄덕끄덕.


나는 벌떡 일어나 소스를 만들러 간다. 훠궈 식당의 치트키 1 적절한 농도의 즈마장(땅콩 소스)을 먼저 듬뿍 담고, 찧은 마늘도 듬뿍, 파도 넣고, 고추기름 두르고 참기름까지 휘휘 두르면 소스 완성.


탕에 넣을 재료들에게로 다가가 푸주, 두부피, 게맛살, 청경채, 배추, 목이버섯을 듬뿍 담는다. 그리고 둥근 어묵과 쑥갓도. 좁은 당면은 가끔 넣지만 넓적 당면은 노노. 실속 없이 배를 채울 수는 없다. 담아 온 재료들을 탕에 넣는 동안 미리 말씀드린 소고기를 썰어서 내주신다. (이곳은 미리 다 썰어서 냉동실에 담아놓지 않는다.) 순서 따윈 있을 리 없다 먹고 싶은 대로 탕 안에 쏟아 넣는다. 푹 익은 재료들을 큰 앞접시에 젓가락에 잡히는 대로 꺼내 놓고 식혀가며 소스를 찍어 입안을 채운다.


엄마가 나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너는 중국 음식을 다 좋아하는 게 아니라 중국 음식에서 네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골라 먹는다고. 어쩜. 내가 중국 음식을 대하던 모습들이 떠오르며 나도 알지 못하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해 준 엄마의 '애미촉'에 화들짝 놀랐었다.


중국 음식은 먹지만 고수를 넣지 않는다. 양고기를 구워 먹는 건 좋아하지만 탕에 담그면 그 특유의 강한 향이 하루 종일 올라오는 터라 훠궈에는 양고기를 넣지 않는다. 선지국을 좋아하긴 하지만 선지를 훠궈에는 넣지 않는다. 옥수수면을 넣으면 마라의 맛이 줄어들고 그냥 짬뽕 느낌이 나기 시작하기 때문에 옥수수면도 아웃. 어찌 보면 나만의 법칙들이 온전히 존중받을 수 있는 훠궈의 방식이 나랑 찰떡같이 맞아서 그리도 푹 빠졌었구나 싶다.


둘째 임신 때는 유난히 일찍부터 가진통이 있었다. 병원에서도 의사가 "가진통이 있네요", 하길래 그냥 "네" 했다. 마라의 자극적인 맛이 도움이 될 리 없음에도 가진통이 느껴진다 말하지도 훠궈를 멀리하지도 않았다. 입안 전체를 얼얼하게 만들고는 배주스를 홀짝거리며 다시 시장 골목을 지나 집에 오는 길, 한 겨울에 그렇게 나른할 수가 없다. 하루가 다 가버린 듯한 시간에 집에 돌아오니 평소의 나라면 시간이 아까울 만도 한데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또 아침을 굶고 만찬을 기다린다.


뱃속을 한 달 내내 마라로 뜨겁게 만들어서인지 열이 많은 둘째가 태어났다. 조금만 더워도 깨고 한 겨울에도 "창문을 열어주던가 에어컨을 켜주던가!" 부르짖는다. 미안하다 아가...


조금 더 크면 같이 먹으러 갈까? 넌 분명 좋아할걸!

(아직도 미쳐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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