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2
잘 자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우선 자세의 문제가 있다. 평소 선호하는 수면 자세가 태아형이든 군인형이든 불가사리형이든, 최초 누운 자세로 잠들 때까지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 그러려면 매트의 강도와 허리의 피로도 사이에 불협화음이 없어야 하며 배게의 높이가 기가 막히게 맞아야 한다.
온도/조도/습도라는 환경설정도 상당히 까다로운 일인데 그중에서도 특히 온도의 문제는 치명적이다. 살짝만 추워도 이불을 다시 매만지는 수고를 해야 하며 살짝만 더워도 잠은 달아난다. 난방/냉방/이불/침대커버/잠옷/창문의 절묘한 조합으로 최적의 온도를 만들어내는 건 매번 어려운 일이다.
마음가짐의 문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방송인 홍진경 씨는 어느 프로그램에서 "행복이란 잠들기 전 마음에 걸리는 게 없는 것"이란 명언을 남겼는데 그런 의미에서 행복은 늘 요원하기 짝이 없다. 뭐 하나 마음에 걸리지 않는 날이 어디있단 말인가? 낮에 직장에서 있었던 문제, 저녁 때 배우자에게 무심코 뱉었던 말, 너무 많이 먹었다는 생각, 돈 걱정, 집 문제, 자녀 이슈와 사회적 아젠다까지. 자기 전에는 온갖 생각에 떠오른다. 그 모든 게 수면 방해 요소다.
간신히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잠에 들려고 해도 문제는 끊이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소음 문제가 있는데 윗집에서 쿵쿵 대는 소리, 창 밖으로 쌩 지나가는 오토바이, 멀리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 집 바로 근처에서 수근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괴롭힌다. 혹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어플러그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개중에 혹자는 이어플러그의 촉감 때문에 수면을 방해받는다고 하니 이것 참, 숙면이란 꿈에서만 그리는 존재가 아닌지 싶다.
...그러나 해결책이 없는 건 아니다. 등식으로 살펴 보자.
수면 방해 인자란 신체 컨디션, 걱정, 카페인, 스마트폰, 소음, 부적절한 온도 등이다. 이게 클수록 숙면가능성은 낮아진다. 그런데 이 등식에서 제일 중요한 건 다름 아닌 피로도다. 피로도가 모든 것을 압도한다. 끝내주게 피곤한 날, 자세가 무엇이면 어떻고 온도가 좀 안 맞으면 뭐가 어떻든가. 등만 대면 이박삼일 정도 자게 되는 그러한 피로도 말이다.
그러니 이제 숙면에 대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몸을 피로하게 만들면 그만이다. 신체활동량을 늘리든 하루쯤 술의 힘의 빌리든... 피로도를 강화하는 거야 뭐,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일반인이다. 부럽다. 나도 일반인이고 싶다. 그런데 우리 육아인들에게는 저런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육아인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다른 종류의 등식이 적용된다.
여기서 아기울음계수가 모든 것을 압도한다. 마라톤을 했거나 술을 마셔 몸이 젖은 스펀지처럼 무거운 날의 피로도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60, 70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아기울음계수는 쉽게 200, 300을 넘어간다. 아기울음계수는 아이가 우는 빈도 x 지속 시간 x 강도로 산정되는데 강도는 늘 최대값으로 고정되어 있다. (아기는 갓 태어났을 때를 제외하곤 응애응애하고 울지 않는다. 그 뒤로는 모두 으애애애액! 하고 소리를 질러가며 운다)
그런데 잠시 후 출근을 해야 하는 나는 어쩌자고 아침부터 이런 재미도 없는 글을 쓰고 있는가? 05:30시에 아기울음계수가 커졌기 때문이다. 민준이는 울어대기 시작했고 나는 분유를 타서 대응했지만 그걸로는 진압이 안됐다. 일분이라도 빨리 애를 다시 재우고 나머지 잠을 청하고 싶었던 나는 초조했다. 어르고 달래고 토닥여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래서 잠을 포기하고 준이를 거실로 데려갔다. 거기서 놀게 놔두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뿐었다. 준이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분유를 조금 더 탔다. 준이는 맹렬하게 그것을 빨아 먹었다. 그리고 계속 울었다.
수면 시간이 부족하면 집중력이 저하되고 쉽게 짜증을 내게 되며 눈은 충혈되고 배고픔 호르몬이 늘어나 살이 찌게 되며 성장과 회복에 방해받고 심지어 심장병 위험도도 커진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일반인들에 대한 정의. 육아인에게 수면 부족이란 더 큰 위험을 야기하는데 그건 바로 '아기를 미워하게 된다'는 것이다. 집이 떠나가라 울어대는 민준이를 보며 내 안에서는 점차 미움의 감정이 커졌다. 분유병을 집어 던지고 소리지르고 싶은 충동이 계속 일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끝이 난다. 07:50시. 민준이는 결국 다시 잠이 들었다. 두 시간 넘게 아기 울음에 시달린 내 귀는 이제 적막을 오히려 낯설어 한다. 낯설거나 말거나, 이제 출근 준비를 해야겠지만.
면도를 하고 옷을 입으며 생각한다. 방금 전까지 내 안에 가득했던 미움은 다 어디로 갔는가? 어째서 마음은 순식간에 평화로 돌아오는가?
직장이나 가족에 대한 스트레스에는 지속성이 있다. 자꾸 생각나고, 생각날 때마다 마음이 힘들다. 그런데 육아 스트레스는 다르다. 그건 상황이 종료되면 늘 스트레스도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왜 그럴까?
아마 아기들에게는 악의(惡意)란 게 1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는 누구보다 그걸 잘 알아 아기가 얌전해지는 순간 예민했던 마음은 가라앉고, 다시 온화하게 아기를 품어줄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일 테다.
7시간 자려던 걸 5시간 잤으니 오늘 나의 숙면점수는 대충 70점이다. 70점이면 명문대는 못가겠지만 낙제도 아니다. 게다가 일찍 일어난 덕분에 글도 한 편 썼으니 오히려 민준이로부터 하나 얻은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