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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한 꿈은 삶의 중재자가 된다

영화 <옥토버 스카이> 리뷰

by 전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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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0월 4일, 소련은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린다. 이 소식은 전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는데, 특히 소련과 냉전구도를 형성하고 있던 미국의 국민들에게는 큰 뉴스였다. 많은 미국인들은 공산주의자들의 과학기술이 이만큼 진보했다는데 불안을 느꼈으며 미국 역시 서둘러 로켓을 쏘아 올려 소련에 뒤지지 않는 속도로 우주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믿었다.



스푸트니크가 궤도에 안착한 뒤 미국인들은 한 가지 소식을 더 전해 들었다. 몇날 며칠 몇 시, 이 맑은 10월의 하늘(옥토버 스카이)에 스푸트니크가 육안으로 보이게 될 거라는 소식이었다. 웨스트버지니아의 탄광촌 콜우드 사람들도 스푸트니크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곧 수많은 별빛 사이로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하늘을 가로지르는 인공위성을 볼 수 있었다. 탄광촌 사람들은 생전처음 보는 광경에 감탄을 했지만, 곧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인공위성이고 나발이고 내일 또 갱도로 들어가 석탄을 캐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 사람만은 거기 남아 생각을 했다. '드디어 꿈을 찾았다.' 그의 이름은 호머 히컴. 광산 관리자 존 히컴의 아들인 그는 지역 고등학교에 다니는 17세 소년으로, 인생에는 석탄을 캐는 일보다 좀 더 멋진 일이 있을 거라고 믿는 부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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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장 로켓 크루를 결성한 호머는 곧 어설픈 지식을 총동원해 조악한 로켓을 만들어낸다. 발사장소는 집 앞 마당. 결과는? 빵! 하고 터진 로켓 때문에 엄마가 아끼는 울타리를 박살내버렸다. 그러나 소년 호머의 가슴은 더 쿵쾅대기 시작했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2차 시도를 한다. 그리고 3차, 4차... 로켓은 매번 폭발해 버렸지만, 호머에게는 멈출 기색이 없어 보였다.


로켓이 좀처럼 제대로 발사되지 않자, 호머는 주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자문을 구한다. 그러면서 여러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첫째, 용접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둘째, 수학을 좀 많이 배워야 한다. 호머는 용접과 수학이라는 미지의 영역으로 기꺼이 뛰어 든다. 그리고 조금씩, 로켓은 개선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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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에서는 모두가 모두의 미래를 알고 있다. 누구나 학교를 졸업하면 광산에 들어가 석탄 캐는 일을 한다. 운이 좋으면 그렇게 늙어가는 것이고, 운이 나쁘면 광산의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된다.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소수의 스포츠 엘리트뿐이다. 미식축구를 아주 잘 하면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갈 수 있다. 콜우드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그런데 여기, 콜우드 최초로 미래를 짐작하기 어려운 네 명의 소년이 등장했다. 그들이 쏘아 올리는 로켓은 지역주민들의 호기심을 이끈다. 누구는 정말 이들의 성공을 응원하고, 누구는 그냥 오락거리가 없어 찾아온다. 아무튼 소년들의 발사장소는 곧 지역사회의 레저장소가 된다. 과연 4인조는 석탄촌의 굴레를 벗어나 진짜 로켓맨들이 될 수 있을까? 열정만 봐서는 합격인데,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제대로 된 지원을 해주지 않으니 그들의 미래는 영 불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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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에서 로켓 엔지니어로 일했던 호머 히컴은 1998년 자서전을 하나 냈다. 탄광촌 출신 소년이 어떻게 로켓에 대한 꿈을 꾸게 됐는지에 대한 얘기였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라간 이 책을 조 존스턴 감독이 1999년에 영화화 했다. 제목은 <옥토버 스카이>. 스푸트니크가 하늘을 누볐던 10월의 하늘을 일컫는 제목이기도 하지만, 재미있게도 책의 제목 'Rocket boys'의 애너그램이라고 한다. (애너그램이란 주어진 철자의 순서를 재배열하여 다른 단어를 만드는 걸 말한다.)


영화를 본 히컴은 '기분 좋아지는 좋은 영화이지만, 내 자서전에서 최고의 대목들은 좀 빠져 있는 것 같다. 다만, 젊은이들이 꿈을 꾸게 하려면 기분 좋아지는 영화들은 필요하다고 본다'라며 아쉬움 섞인 평을 했는데 (출처) 여기서는 자서전과 비교하거나 히컴의 실제 입장은 배제하고, 영화만 가지고 얘기를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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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의 꿈을 다루는 영화에는 늘 감동이 있다. 특히, 꿈꾸기 어려운 환경에서 꾸어지는 꿈이라면 감동은 배가 된다. 그리고 그게 실화인 경우 감동은 최고 수준에 이르는데, 에미넴의 이야기를 담은 <8마일>이 그렇고 크리스 가드너의 이야기를 담은 <행복을 찾아서>가 그렇고, 오늘 소개하는 <옥토버 스카이>가 매우 그렇다.


젊은이의 꿈이 멋진 이유는 주변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빅 크릭 고등학교 4인조의 기가 막힌 로켓 실험은 마을 전체에 활력이 되어간다.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발사체를 제작해주는 아저씨가 나타나고, 웬만한 열기에는 녹지 않는 금속 재료를 선정해주는 아저씨도 나타난다. 로켓을 주제로 경시대회를 나가보라고 권해주는 선생님이 나타나는가 하면 그토록 무뚝뚝했던 현실주의자(이자 탄광주의자인) 아버지도 발사현장에 나타난다. 그때까지 호머를 짓눌렀던 모든 현실의 한계가, 호머의 꿈을 통해 지지자로 바뀐다. 높은 꿈과 시궁창 같은 현실. 서로 절대 만나지 못할 것 같던 둘은 이렇게 만나게 된다. 이렇듯, 원대한 꿈은 삶의 중재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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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면 늘 흐뭇한 마음이 된다. 게다가 명품배우의 어린시절 보는 재미도 있으니 이 영화를 추천하지 않기가 어렵다. 앞으로 누군가 제이크 질렌할의 영화 중 무엇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옥토버 스카이>를 가장 먼저 언급하게 될 것 같다.


꿈을 가짐으로서 성장한 한 인물의 이야기를 봤다. 꿈을 가짐으로서, 시궁창 같은 현실과 이상을 원만하게 중재해낸 위대한 여정을 목격했다. 졸업=광부라는 단순한 도식이, s=1/2at2(제곱)이라는 복잡한 등식으로 바뀌는 과정을 목격했다. 여기서 s는 낙하한 거리, a는 중력가속... 아니다. 각 기호가 무슨 뜻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의 삶이 복잡하고 다양한 공식을 필요로 하는 삶인가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영화를 한편 봤다.


2025.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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