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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인덕원] 주식논쟁

주식은 도박인가

by 전새벽

며칠 전, 살롱 드 인덕원의 멤버이자 친애하는 친구 제이와 때 아닌 주식 논쟁을 하게 됐다. 나는 주식투자는 도박과 다를 바가 없다고 주장했고 제이는 그에 반발했다. 대립은 점점 열기를 더해갔지만 시간관계상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그날 밤 제이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평소 지식인의 면모를 풍부하게 갖추고 있는 인물인 것은 알았으나 파이터 기질까지 있는지는 몰랐는데. 예상외로 파이터였던 그는 “할 말을 다 못해 속에서 열불이 나서 썼으니 이 글을 참고하시오”라며 주식 시장이 왜 좋은 것인가를 성토하고 있었다. (제이의 글 보기)




식사자리에서 잠깐 한 얘기를 가지고 열불 운운하며 자정 무렵에 장문의 글을 보내오는 사람을 대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을 것 같다.


법원에 접근금지명령을 신청한다.

오랜만에 지식인다운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하고 반격의 글을 써서 보낸다.


법원까지 가기에는 날이 아직 더운지라, 나는 시원하게 에어컨 바람 쐬며 반격의 글을 쓰기로 했다.




주식은 도박이라는 나의 지론에 대해 제이는 다음과 같이 반격하고 있다.

첫째, 주식의 매수는 엄연한 계약이다. 주식 매수를 통해 주주는 기업의 일부를 소유하게 되며 의결권을 가진다. 즉 카지노에서 공짜 마티니 따위를 홀짝거리며 바카라 테이블에 슥 칩을 올려놓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행위다.

둘째, 베팅을 하는 즉시 결과가 일어나는 도박과 달리, 주식투자의 결과는 시간에 걸쳐 일어난다. 투자자는 이 ‘시간’이 가치상승의 양분이 될 것임을 판단하고 돈을 지불한 것이므로 ‘못 먹어도 고!’하고 칩을 던지는 행위와는 다른 행위이다.

종합적으로 주식투자란 해당종목의 성장성에 대한 치밀한 분석으로 이루어지며, 이러한 지적활동은 도박사들의 놀음과는 결이 다른 행위라는 것의 그의 논지였다.


이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첫째, 주식을 매수하여 주주가 된 다음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발상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현행법상 주주제안권은 정관 또는 법률상 주주총회 권한사항에 한해 인정되어 소액주주의 실질적 경영 참여에 한계가 있다. 또 대주주와 경영진이 막대한 의결권을 바탕으로 소액주주의 참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이유로 소액주주의 실질적 의결권 행사는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소액주주의 경영참여가 가능해진다 하더라도 결과가 좋을지는 의문스럽다. 민주주의에서 유권자가 많다고 해서 항상 좋은 지도자가 선출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주식이 분산된 소액주주들의 의사결정이 늘 최선의 기업 전략으로 이어진다고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심사숙고 했다’는 것은 행위의 정당성과는 무관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도박사도 얼마든지 심사숙고 할 수 있다. 당장 과천 경마공원에 가보면 경마신문과 각종 잡지를 밑줄 쳐가며 읽으면서 오늘 천둥이의 컨디션이 어떤지 면밀히 분석하여 투자의사결정을 내리는 품격 있는 도박사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즉 도박에 비해 주식 투자가 더 많은 전략적 분석과 판단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주식이 도박에 비해 고결하다는 것은 ‘이쪽 일은 머리를 많이 써야 돼요’라는 업자들의 주장과 다를 바가 없다.




제이는 한 가지 예시를 들어 주식 투자를 한번 더 옹호한다. 그에 따르면 주식 투자란 ‘앞으로 잘 될 것 같은 학생에게 미리 건네는 투자금’과 같다. 이 대목에서 제이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뿐만 아니라 과신(overconfidence)에 기대고 있다. 실력만 갖추고 있다면 잘될 것 같은 학생을 충분히 골라낼 수 있다는 과신이다. 농구는 10%, 야구와 축구는 30%, 아이스하키는 50%가 운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한편 주식투자의 경우 90%가 운에 의존한다고 주장한 투자전략가 마이클 모부신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소액주주에게는 힘이 없고 주식투자전략은 아무리 열심히 세워도 무의미하다는 논점에 덧붙여, 나의 주식시장 회의론은 다음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기업이 중요한 이유, 즉 일자리를 창출하고 혁신을 주도하며 경제성장의 근간이 된다는 것에 대해, 주식시장이 딱히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끝으로 도박중독에 관한 연구 한 편(홍주학, 2011)에서 한 대목 인용하며 마친다. 제이의 힘찬 반격을 기다린다.


Ayeroff와 Abelson(1976)은 텔레파시 과제를 활용한 연구에서 수행 결과가 우연에 의한 결과와 마찬가지임에도 불구하고 연습이나 훈련을 통해 과제에 익숙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신의 성공에 대해 더 큰 확신을 갖는 다는 결과를 얻었다.이는 과제 혹은 게임에 친숙하면 통제감에 대한 확신이 더욱 커진다는 주장(Benassietal.,1979)을 지지하는 결과며 게임의 결과가 우연에 의해 결정된다 하여도 친숙한 과제에서는 집중만 잘하면 예측의 정확 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향 때문에(Bouts& Avermaet,1992) 도박은 하면 할수록 빠져들게 될 위험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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