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러 소설 <멕시칸 고딕> 추천사
무더위에 대한 항쟁이랄까요? 요며칠 호러 소설을 한 권 읽었습니다. 취향을 타는 장르이다보니 '호러를 왜 읽어' 하고 미간을 찌푸리는 분들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렇게 소개하면 어떨까요? 2020년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뉴요커》, 《배니티 페어》, 《NPR》, 《워싱턴포스트》 등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이듬해 로커스 상, 영국환상문학상, 굿리즈 초이스 어워드를 수상했을뿐 아니라 훌루 드라마화까지 확정된 작품이라고 말입니다.
네. 오늘은 1981년생 멕시코계 캐나다인 소설가 실비아 모레노 가르시아의 고딕-로맨스 호러 소설, <멕시칸 고딕>이야기입니다.
멕시코 시티에 살고 있는 청년 노에미는 어느날 아버지의 급한 호출을 받았습니다. 달려가보니 아버지가 들고 있는 건 한 장의 편지네요. 발신인은 다름 아닌 노에미의 사촌언니 카트리나. 아버지가 딸 같이 여겼지만 지금은 결혼해서 따로 살고 있는 그녀가 한 눈에 봐도 괴기한 편지를 보냈습니다. 악취, 유령, 뱀, 거미, 풀어줘, 구해줘, 멈춰줘... 와 같은 표현들로 난잡하게 쓰인 편지를 읽고 부녀는 몹시 심란합니다. 그리고 상의 끝에 노에미는 언니를 만나러 가기로 하죠. 하이 플레이스에 있는 수상한 저택으로 말입니다.
저택에 도착한 노에미는 곧바로 이상한 기운을 감지합니다. 형부를 비롯한 언니네 식구들이 묘하게 노에미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죠. 게다가 그들은 언니를 잘 보여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겨우 만나게 된 언니는 카트리나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식구들 몰래 마을로 내려가 약을 하나 지어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노에미는 저택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마을로 내려갔다가, 거기서 저택에 대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는데...
<멕시칸 고딕>은 이런 줄거리를 가진 소설입니다. 1950년대 멕시코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가부장제와 우생학이라는 무시무시한 생각들을 호러 요소로 적극 차용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 덕분일까요? 소설은 몇 편의 호러 영화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타인의 집이 손님에게 주는 거대한 공포라는 측면, 그리고 그 이면에 영생이란 어두운 야망이 있다는 점에서는 <겟 아웃(조던 필, 2017)> 생각이 몇 번 납니다. 반면 근친상간이나 전체주의의 공포에서 <미드 소마(애리 애스터, 2019)>가 생각나고요. <멕시칸 고딕>은 이렇듯 우리에게 익숙한 공포 요소를 다양하게 활용한 비교적 무난한 작품입니다.
그렇다면 실비가 모레노 가르시아만의 무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묘사에 있습니다. 거대한 종양 덩어리와 살갗을 덮은 농포, 그게 터지면서 기어나오는 뱀, 그 뱀이 자신의 머리를 물고 장소는 순식간에 검은 액체로 뒤덮인다...는 식의 형형한 그로테스크 묘사가 작품 곳곳에서 호러 독자를 반깁니다. 가르시아는 분명 이 방면으로는 탁월해서, 어떤 장면에서는 지금 텍스트를 읽고 있는 것인지 비디오를 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군요. 덕분에 영상화가 빠르게 결정된 이유를 대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묘사와 더불어 전반적으로 깔끔한 글솜씨가 인상적입니다. 특히 매 챕터를 마무리하는 방식은 교과서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탁월하네요. 장르 안에서 필요 없는 얘기가 거의 없다는 점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실비아 모레노 가르시아는 분명 기억해 둘만한 이름이리라 생각됩니다.
종합하자면 추천이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저택의 비밀이 드러난 순간부터는 템포도 밀도도 훌륭한 편이지만 전반부는 상당히 루즈한 점이 있습니다. 이는 미스테리의 가짓수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하이 플레이스 저택의 비밀'이라는 메인 미스테리 외에, 독자를 끌고 가는 견인차로서 서브 미스테리가 하나쯤 필요했을 겁니다. 얘기하다보니 이렇게 멀티플 미스테리를 활용해 읽는 즐거움을 주는 소설들에는 뭐가 있을지, 이어서 이야기 나눠 보고 싶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