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옐로페이스> 리뷰
중국계 미국인 소설가 아테나는 책으로 큰 성공을 거뒀고, 그녀의 백인 여성 친구 준은 그렇지 못했다. 스타가 되어버린 친구와 무명작가인 주인공은 가끔씩 만나 출판업계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어느날, 두 사람이 술을 마시다 아테나가 갑작스럽게 죽고 만다. 놀란 준은 경찰을 부르고 조사 끝에 귀가하는데, 그녀의 손에는 자기도 모르게 훔쳐 온 아테나의 미발표 원고가 들려 있다. 준은 고민 끝에 원고를 고쳐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는데...
미국의 걸출한 젊은 소설가 R.F 쿠앙의 장편소설 <옐로페이스(문학사상, 2024, 신혜연 옮김)>는 이와 같은 도입부를 갖는 멋진 소설이다. 나쁜 짓을 저지른 주인공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연신 책장을 넘겼다. 그 결과는? 끝까지 힘을 잃지 않는 웰메이드 스릴러라고 자신있게 추천하고 싶다. 이 무더운 여름, 힘 있는 문장들과 정교한 (동시에 안전하게 짜여진) 이야기 구조 안에서 벌어지는 타이트한 서스펜스를 여러분도 즐겨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책 읽기가 끝나면 아래 대목에 대해서도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다.
먼저 플롯이다. 사실 <옐로페이스>의 굵직한 이야기 줄기 자체는 새로울 게 없다. 브래들리 쿠퍼가 주연한 2012년 영화 <더 워즈>는 우연히 발견한 원고를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뒤 우여곡절을 겪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진 한프 코렐리츠의 장편소설 <더 플롯>은 죽은 학생의 소설을 훔쳐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하는 선생의 이야기를 다룬다. 즉 남의 작품 훔쳐서 성공했다. 자,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로 출발하는 이야기는 이미 숱하게 다뤄지고 있는 종류란 얘기다. 그렇다면 <옐로페이스>의 매력은 어디서 발현되는 것일까?
비결은 메인플롯 위에 얹어진 여러 장치에 있다. 다양한 요소를 거론할 수 있을 텐데, 대표적으로 세 가지를 꼽고 싶다. 먼저 문화소유권 논쟁이다.
준이 훔친 아테나의 원고는 중국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책이 유명세를 타자 하나의 여론이 생겨나는데, 바로 준에게 문화 탈취라는 혐의가 있다는 것이다. 백인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중국인 이야기를 해? 이 주제는 누가 문화를 소유하는가라는 거대한 사회담론으로 쉽게 이어질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논쟁 주제임에 틀림 없다. 특히 중국 출신이면서 백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은 실제 작가의 입장이 소설 속 이야기와 맞물려 독자는 액자구조 안에서 철학적 딜레마에 갇히는 듯한 쾌감(?)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두 번째는 창작과 표절의 경계다. 소설 속에서 준은 아테나의 원고를 훔치긴 했지만 이것을 상당 부분 고쳐서 쓴다. 그래서 표절시비가 붙었을 때 스스로를 납득시킨다. 본인은 아테나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인지 소설을 훔친 건 아니라고 되뇌이면서 말이다.
AI가 창작판에 깊숙이 들어온 시대, 창작의 원천소스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시기적절하면서 동시에 무겁다. 우리는 무엇을 기반으로 창작하는가? 영감을 받은 것과 표절의 차이는 무엇인가? 스릴러를 읽으면서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가 소설에서 하나 더 발견되는 셈이다.
그런데 영리하게도, R.F. 쿠앙은 이 장치들을 어디까지나 장치로만 쓴다. 이 부차적인 도덕문제들이 메인 플롯을 방해하지 않도록 그녀는 철저하게 선을 지킨다. 그 결과 <옐로페이스>는 어설픈 사회이론서 흉내 따위 내지 않는, 순도 높은 스릴러로 맺음한다. 어디까지가 이 작품의 영역이고 어디부터가 아닌지를 명확히 아는 이 젊은 재능에게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세 번째 장치 -라고 불러야 할 지 실은 소설의 진짜 주제라고 불러야할 지 헷갈리는-의 경우는 좀 다르다. 그것은 바로 글쓰기에 대한 애정이다. 소설 속에서 준은 비록 훔친 원고로 스타가 되었을망정, 글쓰기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창작자로서의 자의식, 써야만 한다는 채찍질, 책으로 성공하고 말겠다는 집착, 잊혀지기 싫다는 갈망, 출판업계의 횡포를 비웃으면서도 그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아이러니의 고발, 그 모든 것이 뒤얽힌 덩어리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읽으면서 저자가 가진 글쓰기에 대한 집념을 볼 수 있다. 소설, 문학, 서점에 대해 이토록 깊은 애정을 작품에서 느낀 것은 개브리얼 제빈의 <섬에 있는 서점(문학동네, 2017, 엄일녀 옮김)>이후로 오랜만인데. (이 책도 강강추다.)
자, 아까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어디서 본 듯한 플롯에 불구하고 <옐로페이스>가 여전히 매력적인 소설로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저자가 진짜배기라는 걸 온 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1996년 광저우에서 태어난 뒤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하여 학업과 글쓰기를 병행하는 이 젊은 재능은 민족정체성, 문화소유권, 표절논란이란 거친 담론들을 가뿐하게 소재로 삼아 지면 위를 날아다닌다. 마치 지나치게 진지한 키보드 워리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이지, 어그로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겠다는듯이.
P.S.
이번 주말에 뭐할까? 하고 고민했던 분들 계신가? 서점에 가시면 될 것 같다. 지난 8월 1일, 쿠앙의 다른 작품 <바벨>의 한국판이 출간됐기 때문이다. 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