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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서가 여기 있습니다. <굿뉴스>

강력추천 웰메이드 블랙코미디!

by 전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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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잡지사가 주최한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이 거센 여론의 역풍을 맞고 있습니다. 취지와 본질은 사라지고, 셀럽들의 화려한 파티만이 남은 행사였기 때문입니다. 뉴스를 보며 저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가족 중 유방암으로 가슴을 절제한 사람이 있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지나치게 무감각한 사회의 모습, 그 집단적 무표정이 소름끼칠 만큼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무런 맥락도 모른 채 환하게 웃으며 몸을 흔드는 연예인들의 모습이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인간은 너무 어이가 없을 때 웃음을 터뜨리는 동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바로 그런 “어이없음”의 미학으로 빛나는 작품입니다. 1970년 일본항공 351편 하이재킹 사건을 모티브로 한 변성현 감독의 스타일리시한 풍자극, <굿뉴스>입니다. 류승범, 설경구, 홍경 등 막강한 캐스팅이 만들어내는 풍자의 향연이 압권인 작품인데요,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앞서 언급한 ‘러브 유어 W’ 논란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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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1970년, 일본의 극좌단체 적군파는 리더 야마모토 타다시의 체포로 위기를 맞습니다. “천박한 자본주의를 몰아내고 공산주의 세계정부를 세우겠다”는 거창한 이상은 출발선에서부터 흔들리고 있었죠. 그러나 이들은 좌절 대신 행동을 택합니다. 바로 일본항공 351편 납치라는 무모한 계획입니다.

하이재킹 그룹의 중심엔 덴지(카사마츠 쇼)와 아스카(야마모토 나이루)가 있습니다. 테러범들은 기장에게 “멀리 날라가자”고 요구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간단합니다. “국내선이라 연료가 부족합니다.” 결국 이들은 목적지를 평양으로 바꾸며 새로운 국면에 접어듭니다.


일본 정부는 발칵 뒤집어지고, 자위대를 투입해 항공기 진로를 막으려 하지만 무위로 돌아갑니다. 테러범들은 인질 중 노약자와 여성을 풀어주고 급유를 받은 뒤, 북한으로 향합니다. 이때 한국의 중앙정보부 역시 초긴장 상태에 돌입합니다. 중정 부장 박성현(류승범)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한 남자(설경구)를 호출합니다. 초라한 외양과 달리 내공이 느껴지는 사나이. 사건의 또 다른 축이 형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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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공군과 미군은 전략을 세웁니다. “351편은 평양 관제탑 주파수를 모른다. 그렇다면 비상주파수를 통해 북한과 교신할 것이다. 그 순간 교신을 가로채 김포로 유도한다.” 이 임무를 맡은 인물이 공군 중위 서고명(홍경)입니다. 한반도 상공은 곧 복잡한 이해관계의 전장이 됩니다. 북한군은 교신을 사수하려 하고, 일본 정부는 체면을 지키려 발버둥치며, 한국 중앙정보부는 청와대의 눈치만 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351편은 점점 김포 상공으로 다가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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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

저는 인문학적 사유가 담긴 영화를 좋아합니다. 인문학은 ‘왜’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어떤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인간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그 근원을 탐색하는 일입니다. 인문학적 영화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 아니라 그 아래 숨은 욕망과 구조를 파헤칩니다.

그러나 저는 풍자 영화라면 더 열광합니다. 풍자는 ‘어떻게’에 관한 예리한 관찰입니다. 사건이 벌어진 뒤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 리액션이 사회의 도덕과 가치관을 어떻게 비추는지를 묻습니다. 풍자극은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온 질서를 낯설게 만들어 다시 질문하게 만듭니다.

<굿뉴스>는 바로 이런 풍자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의 풍자는 단일한 대상을 향하지 않습니다. 일본, 북한, 미국, 한국... 그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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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영화는 테러범들을 조롱합니다. 공산주의 이상을 외치면서도 대장에게 절대 복종하고, 민간인보다 고위 관료의 목숨값을 더 높게 매기는 이율배반. 영화는 이를 멀리서 담는 카메라와 절묘한 타이밍의 연출로, 대의명분의 허무함을 우스꽝스럽게 드러냅니다.

북한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교신 탈취 작전에서 실패한 관제사가 곧장 총살당하는 장면은 체제의 잔혹함을 기묘할 만큼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테러범들이 정말 이런 현실을 알고 북한을 ‘유토피아’라 믿은 걸까요? 아니면 그저 무지했을 뿐일까요?

미국의 등장은 또 다른 조롱의 대상입니다. 한반도 영공이 긴장 상태에 놓이자 미군은 작전권을 한국에 넘깁니다. 표면적으로는 협력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책임 회피입니다. 그리고 그 공백을 메우는 건 공군 중위 서고명의 개인입니다.


<굿뉴스>에는 자비 없는 풍자의 시선 외에도 크게 주목할 만한 게 있습니다. 바로 류승범이란 배우의 존재입니다. 그의 연기는 가히 이 영화의 척추라고 부를만큼 무게감이 있었는데요, 거만함과 비굴함, 권력자 앞에서의 기묘한 귀여움까지, 그는 1970년대 한국 정치의 풍경을 몸짓 하나로 압축해냅니다. 변성현 감독의 디렉션이 어디까지였는지 알 수 없지만, 앞으로 놀라운 연기에 대해 얘기할 때 <굿뉴스>의 류승범 얘기를 잊지 않고 꺼내게 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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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서사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 현실과 메타포, 진지함과 우스꽝스러움을 경쾌하게 오가며 리듬을 만듭니다. 서고명이 엘리트 군인이었다가 국민 영웅이 되고, 서부의 총잡이로 변신하는 장면들은 웨스 앤더슨의 솜씨 같은 걸 떠올리게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날카로운 메시지와 탁월한 스타일을 동시에 확보한 드문 풍자극이 되었습니다.



오늘 또, 어떤 러브 유어 W를 목격하고 있습니까?

앞서 언급했던 러브 유어 W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여기서 W란 그 모양처럼 여성의 가슴을 상징하는 알파벳이겠지요. 그런데 적어도 2025년의 경우 이 W는 와인이나 위스키였던 게 틀림 없습니다.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만큼 공개된 사진과 영상에는 술 마시고 노는 모습 밖에 없었죠.

<굿뉴스>역시 1970년에 동북아를 들썩이게 만든 거대 러브 유어 W 사건입니다. 여기서 W는 이기다(win)이란 뜻이겠죠. 승객들의 안전이라는 최우선 과제는 까맣게 잊혀진 채, 각자의 성과만 챙기려는 모습을 보면 말입니다.


우리는 매일 또 다른 버전의 러브 유어 W 사건을 마주합니다. 본질은 사라지고, 이해관계만 남은 수 많은 사건들. 그럴 때마다 강력하게 조롱을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조롱하는 법'에 대한 참고서가 여기 있습니다. 냉소와 조롱의 끝을 달리는 헤비급 블랙 코미디 <굿뉴스>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을 잘 참고한다면 “각하는… 숙취에 시달리고 계세요” 같은 강력한 대사처럼 타격감 좋은 조롱의 기술을 얻게 될지도모르겠는데, 한 번 적극 참고해보심이 어떠실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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