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이야기 #1
누군가 과거로 돌아가고자 애를 쓴다면 목적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 않았던 일을 하거나, 했던 일을 되돌리는 것.
전자는 예를 들어 일확천금의 꿈을 꾸는 자일 것이다. 그때 샀어야 했던 로또를 이제라도 돌아가 사려는 사람들 말이다. 반면에 후자는... 후회로 가득한 사람일 것이다. 고맙다는 말을 못해서, 몹쓸 말을 해서, 한번 더 안아주지 못해서. 원인은 다양하지만 형태는 하나다. 후회는 돌덩어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 후회는 언제나 그것을 소유한 사람의 가슴을 돌덩어리처럼 짓누른다.
꼭 우열을 가려야 하는 일은 아닐 테지만, 전자 보다는 후자의 간절함이 더 셀 것이라 생각한다.
*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 여기에도 있다. 이름은 김박사. 그는 매일 후회한다. 어떻게든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 그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새로 찾은 공식을 다 풀어봐도' 방법이 없다. 안될 거라는 걸 알지만 연구를 멈출 수는 없다. 돌덩어리가 가슴을 짓누르기 때문이다. 연구는 계속된다.
...너무 무리했던 걸까?
어지러움을 느낀 김박사는 뒤로 잠깐 기대보다가 그만 실험용 액체를 쏟고 만다. 그런데 그게 답인 줄 누가 알았으랴. 쏟아진 액체는 바닥에 조금씩 스며들다 눈부신 빛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김박사는 직감한다. 저 빛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말한다. 이리하여 과거로 가게 되면, 후회만 남겼던 그 모든 일들은 비로소 없던 일이 되고,
나는 다른 후회할 일들을 하게 될 거라고.
*
지윤해의 곡 <김박사 이야기>는 이러한 이야기를 담은 어쿠스틱 트랙이다. 간결한 기타 백킹 위로 소프트한 보컬이 소박하게 얹혀져 있다. 별 다를 거 없는 소품이지만 노랫말 때문에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우선 시간여행 연구라는 주제가 색다르다. 쏟아진 액체에서 빛이 뿜어져 나온다는 시각성도 재밌다. 과거에 무슨 일을 할 거예요? 라는 시제 감각이 영 꽝인 질문이 떠올라 우습기도 하다.
그런데 그것들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강렬한 감흥이 결말부에서 온다. 애써 돌아간 그곳에서 '다른 후회할 일들을' 하게 될 거라니. 이렇게 처연한 블랙코미디를 나는 전에 본 적이 없다. 동시에 이렇게 정확한 가정도 본 적이 없다. 지윤해의 가정은 발칙해서 재밌고, 정확해서 위로가 된다.
한편 김박사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다름 아닌 후회의 대상이다. 그는 대체 무엇을 그토록 후회하고 있는 걸까? 그보다, 왜 노래는 그 정체를 공개하지 않는 걸까?
두 번째 물음에는 가까스로 답이 가능해보인다. 아마 누구에게나 그런 돌덩어리가 있는 거라서, 생겨난 원인은 달라도 흉부의 통증은 대게 비슷한 거라서 굳이 설명할 필요 없었을 거라고.
누구에게나 돌덩이가 있다는 것. 신비한 액체가 열어버린 타임포탈을 타고 돌아가도 우린 다시 돌덩어리나 만들고 돌아올 거라는 것. 인간은 그렇게 터무니 없이 무능한 존재라는 것. 이상하게 그게 위로가 된다. 하긴, 이 노래는 원래 이상한 사람이 만든 거다. 이름을 두 차례나 개명했는데도 원래 이름을 쓰고 있는 그는(윤해에서 정훈으로 개명했다가 다시 윤해로 개명했다) 변화를 시도해봤자 결국 제자리인걸 제일 잘 알고 있는 뮤지션이자, 이상하게 위로가 되는 아주 소중한 예술가다.
2025.11.18
오늘의 아티스트: 지윤해
오늘의 곡: 김박사 이야기 (앨범 <개의 입장(2019)>에 수록)
아래는 가사 전문.
매일매일 후회만 하는 날들
끝없이 이어지고
어떻게든 되돌려보고 싶어
연구실로 나서네
혹시 뭔가 잘못되더라도
시간을 돌릴 방법이 없네
새로 찾은 공식을 다 풀어봐도
매일밤을 새며 연구하네
안될거라는걸 알면서도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봤지
더 이상 답이 없네
역시 잠이 부족했었던걸까
살짝 어지러워서
뒤로 잠깐 기대보려다가
시간을 돌릴 답을 찾았네
잘못 건드려서 쓰러진 액체가
바닥에 조금씩 스며들다
눈부시게 빛을 쏟아내고
이제 저 안으로 들어가면
후회로 가득했던 지난 일들이
전부다 없었던 일이 되고
다른 후회할 일을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