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의 시와 부자관계에 대한 단상
올 여름 아버지는 오래 살지 못할 거란 소리를 들었다. 입원한 상태에서 아버지는 바닥에 오줌을 싸고 간호사에게 시비를 걸었다. 어머니는 어느새 체머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해외에 살고 있던 형은 틈틈히 내게서 소식만 받아갔다. 나는 장례 준비가 너무 안 되어 있음을 개탄했다.
여름이 끝나기 전에 상태는 호전되었다. 퇴원 후에 아버지는 집에서 티브이만 보신다. 몇 번의 크리스마스가 우리에게 남아 있을까. 캐롤을 들으며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개탄한다.
밤마다 아들을 재운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녀석은 요새 자기 전마다 반항을 한다. 어제는 그 피로가 심해 몇 번이나 역정을 냈다. 그런데도 녀석은 자꾸만 내 품을 파고 들었다. 화냈다가 토닥이는 두 얼굴의 사나이 같은 짓을 반복하며 밤을 다 보내고, 마침내 잠든 아들의 등을 쓸어내리며 나는 대체 어떤 아버지로 녀석에게 기억되려나, 하는 한가한 생각을 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유난히 흐뭇한 기억이 떠오른다. 열 살 무렵 매주 외식을 했던 시기의 일들이다. 네 식구는 토요일 저녁마다 피자헛에 가서 피자를 두 판 씩 먹어치웠다. 그리고 서점에 가서 마음껏 책을 골랐다. 잔소리 한 번 없이 형제를 키워낸 아버지는 그렇게 먹고 읽는 것에 대해 한 없이 관대했다.
아들도 내게서 그런 기억을 갖게 되려나.
박형준의 시가 떠오른다.
석유를 먹고 온몸에 수포가 잡혔다.
옴팍집에 살던 때였다.
아버지 등에 업혀 캄캄한 빈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
읍내의 병원은 멀어,
겨울바람이 수수깡 속처럼 울었다.
들판의 어디쯤에서였을까,
아버지는 나를 둥근 돌 위에 얹어놓고
목의 땀을 씻어내리고 있었다.
-박형준, <地平> 1연
*시집 [춤(창비, 2005)]에 수록
어린 시인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석유를 마셔버렸다. 시인의 아버지가 시인을 등에 업고 들판을 내달렸다. 아버지의 등에 안겼던 순간에 대한 위급하고도 안심되는 기억. 그런데 2연에 반전이 있다.
서른이 넘어서까지 그 풍경을
실제라고 믿고 살았다.
삶이 어렵다고 느낄 때마다
들판에 솟아 있는 흰 돌을
빈 터처럼 간직하며 견뎠다.
마흔을 앞에 두고 나는 이제 그것이,
내 환각이 만들어낸 도피처라는 것을 안다.
-같은 시, 2연
어디서 듣자하니 행복이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라고 한다. 그 말이 맞다면, 시인에게 날조된 기억이 있었음은 있을 법한 이야기다. 위급한 상황에 아버지가 나를 지켜준다는,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 어째서 그런 기억이 날조되었는지까지는 다 알 수 없지만, 그러한 기억이 도피처로서 필요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사람은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는 것일까.
반쯤은 실제에, 반쯤은 환각에 기반해 사람은 기억 속에 안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버지가 내게 준 많은 상처를 잊어버리고, 피자헛과 서점 같은 기억만을 꿰고 살게 될 것이다.
아들은 어떨까?
적어도 내가 역정을 냈던 사실은 기억에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1991년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 박형준은 일생에 걸쳐 가족에 대해 서술했다.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그는 가장 한국적으로 가족에 대해. 노래하는 한국 문단의 패밀리맨이다. 특히 네 번째 시집 [춤]은 위에서 소개한 <지평>처럼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유독 절절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시인은 이 책을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처음 받아봤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야 비로소, 시인은 혈육이 무엇인지를 간신시 포착해냈다. 그 이야기가 다음 시집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문학과 지성사, 2011)>에 실려 있다.
당신이 죽고 난 뒤
핏줄이 푸른 이유를 알 것 같다
초가을
당신의 무덤가에 석산꽃이 가득 피어 있다
-나는 핏줄처럼
당신의 몸에서 나온 잎사귀
<석산꽃> 2연
우리집 잎사귀는 오늘 아침 방긋방긋 웃으며 어린이집에 갔다.
2025.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