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경비, 시간, 언어
여행을 하는 도중에, 그리고 갔다 오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물어보았다. 어디서 자신감이 나와서 세계일주를 할 수 있었는지? 주변에서 나를 보면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 또한 걱정이라는 것을 가끔 하며 살아가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세계일주를 막상 시작한다고 했을 때, 망설여지는 것이 크게 3가지가 있었다.
하나. 막연한 여행경비
사실, 나도 경비가 가장 궁금했다. 나도 세계일주를 처음 해보는 것이라서, 감이 전혀 안 잡혔다. 일단 루트를 만들었다. 루트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세계지도를 벽에 붙이고 가고 싶은 곳에 다트를 던진다. 그리고 다트들을 최대한 육로로 이동하기 편하게 실로 이어 본다. 그게 바로 여행루트가 된다. 사실 나는 루트를 만드는 데 있어서 큰 루트만 정했다. 어떻게 대륙을 돌지만 정했다. 그리고 이렇게 짜인 루트를 바탕으로 여행경비를 추정하기 시작했다. 내가 정보를 모으는 데 있어서 가장 많이 참고한 자료는 '블로그'였다. 책은 기간이 지난 정보가 많아서, 블로그를 통해 최신 정보를 수집했다. 그렇게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나온 여행 예상 비용은 약 3천만 원이었다. 이제 세상으로부터 약 3천만 원정도를 가져와야 한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휴학 총 2년뿐이었다.
적어도 내가 가고 싶은 나라들을 다 갈려면 최소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6개월 동안 약 3천만 원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 한국에서는 답이 없었다. 그래서 해외로 눈을 돌리던 중, 워킹 홀리데이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호주로 날아갔다. 호주에서 여행경비에 필요한 3천만을 빌리러!
둘. 2년이라는 시간, 기회비용
비행기 표를 결제하고, 2주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여행 간다고 이야기했다. 지인들이 정말 진심 어린 조언들을 해주었다. “너 미쳤냐고?”, “드디어 네가 사고를 친다고?”, “네가 AB형인 것은 알지만, 적당히 하라고” “너 나이를 생각해서, 1년만 갔다 오라고” 정말 나를 걱정해주는 것이 느껴지는 말들이었다. 그 당시 나의 나이 24살, 2년이란 시간이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2년 후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누군가는 2년 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서 공무원이 될 수도 있고, 화려한 스펙을 만들어서 대기업에 취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반대로 나처럼 여행을 갔다 올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여행을 갔다 오면 내 나이 26살이다. 친구들이 취업해서 번듯이 차 끌고 직장 다닐 때, 나는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에 와서 기말고사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남들보다 2년이라는 시간이 더 늦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2년이라는 시간을 여행에 투자할 자신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대학 졸업 날, 베레모를 하늘로 던지는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학 생활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단지 토익 950점, 자격증, 공모전 수상 2개, 학점 4.3이 다라면...
어떠한 추억도 없다면... 훗날 나의 대학생활을 추억할 때, 스스로에게 미안 해질듯하다.
내가 사회에 들어갔을 때, 친구들은 나보다 2년 내지 3년은 빠를 것이다. 먼저 들어간 친구들의 2~3년 빠른 호봉이 부러운지 생각해 봤을 때, 솔직히 전혀 부럽지 않았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호봉보다 중요한 것은 분명히 있다. 내가 그 일을 할 때, 행복 또는 보람을 느끼는지가 나에게는 더 중요했다. 괜히 돈만 보고 들어가서, 스트레스받으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더욱이 집에 들어가서 사랑하는 와이프에게 그 스트레스를 풀며, 가정불화로 이어지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그렇게 살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요즘 평균 연령이 80~100세 정도라고 한다. 우리가 80살까지 산다고 했을 때, 30살에 번듯이 취업을 하고 60살에 정년퇴직을 한다면, 30년 동안 그 일 또는 그쪽 분야의 일에 종사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30년 동안 내가 스트레스 안 받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서, 나의 색을 먼저 아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여행에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인생 그래프에서 2년이 차지하는 구간은 정말 짧다. 그래서 나는 2년이라는 시간을 오로지 여행에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셋. 유창하지 못한 영어
나는 영어가 유창하지 않았다. 물론 고등학교까지 영어를 곧 잘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대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학교에서 간간이 듣는 영어를 제외하고는 영어를 시간 내서 공부하지는 않았다. 그랬기에 해외에서 기본적인 의사소통으로 사용되는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여행을 준비하면서 틈틈이 스피킹에 초점을 맞추어서 공부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계획은 계획뿐이었다. 그 당시 밤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까지 하기에는, 내 체력이 받쳐주지 못했다. 결국, 그저 그런 영어실력으로 출국을 했다.
결론부터 말을 한다면, 언어를 잘하면 분명히 좋다. 이것은 사실이다. 언어를 통해 외국인과 대화를 하며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고,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영어의 유창함이 여행의 절대조건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옵션이라고 말하고 싶다. 길 위에서 만나는 여행자들은 서로 오픈 마인드다. 여행자들은 서로에게 혹은 서로의 문화에 대해서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 나의 서툰 영어도 외국인들은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나 또한 그렇게 길에서 영어를 배웠다. 그럼에도 언어에 대한 불안함이 있는 친구들을 위해, 나의 토익 성적을 공개한다. 귀국 후 모의 토익을 시험 삼아 보았다. 모의 토익이었는데, 650점이 나왔다. 나는 이 실력으로도, 기본적인 의사소통 및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다 말하며 여행을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