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_스페인
베트남에서 바로 유럽의 스페인으로 이동했다. 상식적으로는 동남아시아에서 중국 또는 네팔 및 인도 방향으로 육로 이동을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나는 비행기를 타고 스페인으로 점프를 했다. 그 이유는 7~8월에 스페인에서 열리는 축제에 모두 참여하기 위해서다. 그중 첫 번째 축제는 산 페르민 축제다.
산 페르민 축제는 일명 소몰이 축제로 한국에 널리 알려져 있다. 기간은 매년 7월 6일 정오부터 7월 14일 자정까지, 스페인 팜플로나에서 열린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매일 아침 8시에 반복하는 엔시 에로다. 엔시 에로는 길거리 투우로써, 소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팜플로나 마을 내에서 일정한 트랙을 만들고, 그 트랙 안에서 소를 풀어 달리게 한다. 사람들이 그 소를 피해서 전력질주를 하는 행사이다. 1926년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첫 장편 소설 『태양은 다시 뜬다』 를 산 페르민 축제를 다녀와서 집필했고, 그 후 십 년 동안 산 페르민 축제를 방문했다고 한다. 그의 소설에도 소몰이가 묘사되어 있을 정도로, 엔시 에로는 산 페르민 축제의 꽃이다.
산 페르민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 동남아시아에 있을 때부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동행을 구했다. 나를 포함한 4명의 동행들과 마드리드에서 만나서, 같이 예약한 렌페(스페인 열차)를 타고 팜플로나로 향했다. 팜 프로나에 도착하니, 4명의 동행이 더 있었다. 우리는 총 8명이 같이 축제를 즐겼다. 축제의 모든 기간 동안, 팜플로나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하지만 우리의 계획은 6일 저녁에 가서 밤을 새우며 전야제를 즐기고, 7일 아침에 엔시 에로를 보고 오전에 돌아오는 것이다. 막상 팜플로나에 도착하니 비가 내려서 살짝 많이 추웠다. 우리는 추위에 떨며 축제가 열리는 카스티요 광장으로 이동했다. 광장으로 향하는 길에 터지는 불꽃놀이는 우리가 축제가 왔다는 것을 실감 나게 해 줬다.
카스티요 광장에 도착하니, 스페인 현지인과 세계에서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은 이미 파티의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한 손에는 샹그릴라 한 잔을, 몸은 클럽과 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고 있었다.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이 곳이 전야제임을 실감케 했다. 카스티요 광장은 물론이고, 골목과 골목 사이까지도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축제의 장이었다. 우리도 카스티요 광장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돌아본 뒤, 사람들이 많아 보이는 펍에 들어가 음악에 맞춰 신나게 놀았다. 처음에 걱정했던 추위가 무색할 정도로 신나게 놀았다. 스페인이 열정의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밤새서 전야제를 즐겨보니 스페인이 왜 열정의 나라인지 알 수 있었다.
밤새서 전야제를 즐기다 보면, 어느덧 해가 뜬다.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이, 엔시 에로를 보러 이동한다. 엔시 에로는 트랙 옆에서 구경할 수도 있고, 실제로 엔시 에로에 참여하여 달릴 수 있다. 엔시 에로에 참여할 사람은 오전 7시 30분까지 트랙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나는 당연히 엔시 에로에 참여했다. 엔시 에로를 참여하지 않고, 산 페르민 축제를 갔다 온 것은 마치 팥 빠진 붕어빵을 먹는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엔시 에로를 뛸 준비를 마치고, 슬슬 긴장을 하고 있었다. '탕' 소리와 함께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며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어느 정도 달리기 시작하니 슬슬 숨은 차고, 소는 한참 뒤에 있는 것 같아서 긴장을 풀고 있었다. 그 순간 뒤에 있던 사람들의 함성소리와 함께, 소들이 뛰어오는 소리가 같이 들렸다. 다시 미친 듯이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그 순간, 머리를 스치는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아, 숨이 차네’
엔시 에로에 참여하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두 투우장까지 달려서 들어가야 하는지 궁금했다. 체력이 되는 사람도 있고, 안 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현지인들과 함께 힘껏 달리면서 엔시 에로를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달리는 비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달려오는 소 바로 뒤에서 뛰면 정말 위험하다. 하지만 내 뒤에서 달려오는 소가 멀리서 보일 때쯤, 벽면의 가장자리로 붙으면 상대적으로 덜 위험했다. 소는 옆을 안 보고, 직진만 했다. 그러니 내가 벽면으로 붙으면, 소는 나를 신경도 안 쓰고 직진으로 달려 나간다. 단, 직선도로일 경우에 한해서다. 코너 쪽에서 벽에 붙으면 바로 소에 치일 수 있다.
나는 힘껏 뛰다가, 벽면의 가장자리에 붙어서 소들을 두 번 정도 보냈다. 눈 앞에서 소가 지나가는데, 소에 치이면 부상이 아니라 죽겠거니 싶었다. 엔시 에로의 트랙이 끝나고, 소들이 투우 경기장에 다 들어오면 그때부터 또 다른 재미가 펼쳐진다. 투우 경기장에서 'ATTENTION'이라는 소리와 함께 소 한 마리가 나온다. 그러면 사람들은 경기장 안에서 소를 피해 또 도망 다니기 시작한다. 소는 순차적으로 한 마리씩 푼다. 나는 소 두 마리를 풀 때, 투우장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무사히 일행들 곁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다닐 여행지가 많기에, 몸을 사릴 필요를 있다.
엔시 에로가 끝나면 트랙은 바로 철거가 되고, 그 많던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난다. 엔시 에로의 흥분을 가라 앉히기도 전에, 팜플로나 역으로 돌아오는 중에 보이는 팜플로나 모습에 다시 한번 감동을 했다. 산 페르민 축제는 역동적인 축제로 스페인의 열정을 느끼고 싶다면, 꼭 한번 참석하기를 추천한다. 축제에 참석한다면, 엔시 에로는 무조건 달려보기를 권한다. 정말로 미친 듯이 안 달려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