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_룩셈부르크
유럽의 발코니로 불리는 룩셈부르크에 도착했다. 유럽을 여행 시, 또 한 번의 소매치기와 카메라 재구입에 따라 예정 예산에서 초과지출이 발생했다. 초과지출이 발생한 만큼, 돈을 아껴야 했다. 돈을 사용할 때, 개인적으로 우선순위 3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문화재와 유적지로서, 그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랜드마크의 입장료에는 돈을 절대 아까지 않았다. 그 나라에 있는 유적들은 그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서, 그 유적들을 한국에 옮겨와서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음식이다. 현지에서 사 먹는 로컬 음식이 정말 최고지만, 그 음식을 한국에서도 맛볼 수 있기 때문에, 첫 번째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마지막은 숙소였다. 내 여행 테마가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이불 삼는 것이다. 이 뜻은 세계를 품는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하늘을 바라보고 자연에서 캠핑을 하며, 때로는 땅바닥을 이불 삼아 노숙을 하는 의미도 있었다. 아이슬란드 워크캠프에서 캠핑을 배운 후, 텐트를 하나 구입했다. 그 텐트를 갖고 다니며, 경치가 좋은 곳에서 텐트를 치고 잤다. 숙소를 들어가는 일이 드물었기에, 짐은 항상 지하철 역의 락커에 보관했다. 룩셈부르크역의 24시간 짐을 보관하는 유인 락커는 5유로로 저렴했다. 무거운 짐도 내려놨으니, 이제 룩셈부르크를 둘러보러 나갔다.
룩셈부르크의 랜드마크 아돌프 다리를 지나서, 유럽의 가장 아름다운 발코니로 불리는 코니쉬(Corniche)로 향했다. Corniche라는 영어단어의 의미는 전망 좋은 절벽가의 도로라는 뜻을 갖고 있다. 코니쉬 도로에서 절벽 아래에 있는 마을을 바라보는 모습은 마치 발코니에서 풍경을 바라보는 것 같다. 성벽으로 이루어진 길들을 거닐면서, 마을의 곳곳을 눈에 담을 수 있다. 계단을 따라 마을 내부로 내려가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복 포대를 시작으로 다양한 문화재가 있다. 코니쉬를 산책하다 보면, 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뷰 포인트를 만날 수 있다. 뷰 포인트에서 바라보는 마을의 모습은 요새 속에 자리 잡은 중세 고딕 양식의 느낌이 물씬 나는 마을로서, 마치 중세 영화에 나올 법한 마을이었다. 오늘은 이곳에서 텐트를 치고 자야겠다고 결심했다.
룩셈부르크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오후 9시가 넘어서 뷰 포인트로 왔다. 밤에 바라보는 마을은 또 다른 느낌으로서, 따뜻했다. 마을의 모습을 한눈에 담고 있어서 그런지, 마을은 품에 안을 수 있을 정도로 소박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가정집에 켜진 불빛과 코니쉬의 길가를 따라 들어선 빨강의 가로등은 분위기를 한 층 더 따뜻하게 했다. 분위기에 젖어, 한 참을 서서 마을을 감상했다. 마을을 바라볼 수 있게 텐트를 쳤고, 텐트에서도 마을을 바라보며 잠을 청했다. 신선한 날씨와 따뜻한 마을을 바라보며 잘 수 있는 텐트는 평화 그 자체였다. 그 어떤 5성급 호텔도 부럽지 않았다.
하지만 이 평화는 새벽에 방청객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까지였다. 새벽이 되니, 코니쉬를 순찰하는 경비 아저씨들이 내 텐트를 두드렸다. 이곳에서 텐트를 치며, 캠핑하는 것은 금지라고 한다. 경비 아저씨들은 나를 노숙자로 생각하셨다. 나 말고도 공원 근처에서 잠을 자는 집시들이 많아서, 경비 아저씨들은 매우 예민하셨다. 처음에는 강하게 텐트를 치우라고 하셨는데, 확실한 신분인 대한민국 여권과 새벽 6시에 독일 쾰른으로 출발하는 기차표를 보여주니 흥분을 많이 가라앉히셨다.
새벽 4시까지 텐트를 철수하겠다는 조건하에 잠깐 머무는 것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나는 텐트에서 새우잠을 좀 더 자고, 새벽 4시에 칼같이 텐트를 철수했다.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텐트를 치고 자는 것은 너무 좋지만,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가끔 텐트를 두드릴 때가 있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은 사람 외에 자연도 포함된다. 그럴 때는 임기응변을 발휘하여, 재주껏 상황을 대처해야 한다. 그러면서 경험치는 한 층 더 쌓여 간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텐트를 들고 사서 고생을 하냐고?
나는 대답한다.
그 나이 때와 그 순간에만 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고
20대이기에 텐트를 치고 잘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혼여행을 가서도 텐트를 치고 잘 수는 없지 않은가? 길을 걷다 아름다운 풍경이 나오면, 텐트를 치고 그 풍경을 창문 삼아서 잠을 청한다. 그것은 텐트이기에 가능한 낭만이다. 나는 그 낭만이 지금까지 좋다. 여행은 개인의 취향이니, 취향대로 하면 된다. 나이가 좀 더 들면, 아무리 텐트에서 자고 싶어도 몸이 버텨내지 못한다. 그때는 선택의 여지없이 호텔에 갈 수밖에 없다. 더불어 여행을 재미있게 하는 팁을 공유하자면, 의식주 중에서 한 가지가 사라지면 그 여행은 힘들어지면서 다채로워진다. 그 경험이 나의 에피소드로 이어졌고, 지금까지도 나의 소중한 추억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