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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win Sep 26. 2019

#46여행이 아름답게 살찌고,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

길바다 티켓

잠비아에서 큰 인연을 만났다.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에서 가발사업을 하고 계신 김 사장님이었다. 나미비아로 넘어가기 위해서, 비자 발급을 신청했다. 1주일 간 대기시간이 있었는데, 김 사장님 덕분에 1주일 간 호화롭게 보낼 수 있었다. 숙소가 해결되고, 음식이 해결되었다. 특히, 그동안 맛볼 수 없었던 다양한 한식들을 집중적으로 먹을 수 있었다. 평상시에도 잘 먹고 다닌다고 생각했는데, 김 사장님 덕분에 여행을 다니며 필요한 모든 영양을 다 보충할 수 있었다. 그 힘으로 잠비아에서 빅토리아 폭포를 방문하여 구경 후, 번지점프까지 했다. 잠비아를 떠나며, 내가 이렇게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여행을 다닐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도움을 어떻게 갚아 나가야 할까?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흔히 사용되는 말이 있다. 바로 '길바닥 티켓'이다. 이 용어를 정의 내리는 것이 애매하지만,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길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조건 없이 베푸는 선행'을 일컫는다. 마치 형이 동생 밥 한 끼 사주듯이, 좀 더 가진 사람이 좀 더 돈을 내듯이, 아무 이해관계없이 그냥 사람이 좋아서 베푸는 것이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나에게 조건 없이 선행을 베풀어 주었다.


캄보디아에서 여행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소매치기를 당했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캄보디아 경찰에서 인정하는 분실 확인서와 기타 서류들을 받는 것을 도와주신 김 선생님.

프랑스에서 샤모닝 몽블랑을 갔다가, 리옹으로 돌아가는 블라블라카를 놓쳤다. 근처의 호텔을 찾아가 내 사정을 얘기하니, 소파와 따뜻한 담요 그리고 맥주 한 잔을 건네주었다.


스위스에서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밤 열차를 놓쳐, 이상한 마을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노부부 집의 앞마당에 텐트를 치려고 문을 두드린 순간, 그들은 나를 집에 초대해 따뜻한 샤워시설 및 스위스 치즈와 따뜻한 빵을 내주었다.


불가리아 세븐 레이크에서 호수 옆에 텐트를 치고 잤다. 비가 와서 흠뻑 젖었다. 근처 산장에 있는 아주머니는 내 손을 잡고 바로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몸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물 한 잔과 푹신한 담요가 있는 침대를 내주셨다.


루마니아 부체지 산에 도착하여, 짐 보관소가 없어 당황했다. 선뜻 내 짐을 자기 집에 보관해주신 리디아 아줌마. 부체지 산에서 하산 후 주변에 호텔밖에 없어 당황할 때, 자기 집의 방 한 칸을 내주신 리디아 아줌마. 여행을 다니며 오랜만에 느껴본 엄마의 정이었다.


러시아 횡단 열차에서 만난 러시아 사람들은 낯선 외국인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들과 열차 안에서 함께 마신 보드카의 뜨거운 열기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열기에는 특유의 사람 냄새가 났다.


이스라엘 갈릴리에서 나사렛으로 히치하이킹이 너무 안 되어, 자포자기하고 있었다. 그때 들리는 목소리 '이봐, 너 거기에 서 있어. 내가 너 태우러 갈게'. 낯선 동양인을 태우기 위해, 가던 길을 돌아오신 아줌마. 덕분에 나사렛까지 무사히 이동해서, 이스라엘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탄자니아 잔지바르에서 매일매일 다른 반찬으로, 밥상을 차려주신 사모님의 진수성찬. 카메라가 고장 나서 한국에서 새로 산 카메라를 아프리카 말라위로 보냈다. 그 카메라를 받아주신 말라위의 양 목사님, 그 인연으로 대접받은 얼큰한 김치찌개.


잠비아의 김 사장님은 다양한 한식과 양식 음식들을 사주시고, 요리도 해주셨다. 덕분에 정말로 잘 먹으면서, 잠비아를 여행했다. 아프리카에서 족발과 보쌈, 삼겹살, 감자탕, 콩국수, 삼계탕 그리고 짬뽕을 먹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카우치 서핑을 통해 집의 한 칸을 숙소로 제공해준 친구들. 히치하이킹에서 낯선 나를 자신의 차에 태워준 친절한 외국 분들. 이 밖에도 일일이 열거하며 설명할 수 없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그 당시의 감사함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혹자는 물어본다. “그렇게 받기만 해도 되는지?”


그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싶다. 받기만 하고 그 감사함을 잊고 살면, 그 사람은 그 그릇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 나를 포함해 그 누구도 자신의 그릇을, 받기만 하는 사람으로 단정 짓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선행을 받은 사람에게 똑같이 받은 만큼만을 갚으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도 상관없다. 세상이라는 길바닥을 돌아다니며 받은 티켓이니, 길바닥에서 만나는 어느 사람에게나 베풀면 된다. 세상이 어수선해도 그나마 아름답고, 아직 돌아다닐만한 것은 이런 선행이 되풀이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받은 이 티켓들이 누군가에게 되돌아갈지 모르겠지만, 훗날 생각해본다. 나의 지인들, 아니 다리 건너 아는 사람들, 아니 길 위의 친구들이 여행을 떠나 내가 살고 있는 타지에 왔을 때,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내 공간에 초대하여 따뜻한 방 한 칸을 내주고 싶다. 화학적 조미료의 맛이 아닌, 손맛이 느껴지는 반찬들과 갓 지은 흰쌀밥으로 차려진 집 밥을 대접하고 싶다. 현지에서 먹어봐야 할 맛있는 음식들과 방문해야 할 곳들, 현지인만 알고 찾아가는 아지트 같은 명소들을 소개해주고 싶다. 적어도 나를 방문했을 때 그들이 살찌워져 가기를, 정을 느끼기를 바란다. 그들이 나에게 받고 느낀 것들이, 나중에 다시 누군가에게 베풀어질 그날을 희망하며.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있기에, 이런 생각을 실현하는 여행자들이 있기에, 이런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행에서 우연히 만날 ‘길바닥 티켓’을 기대해보며, 지금도 설레게 여행을 떠나본다. 이런 우리가 있는 한, 여행은 점점 아름답게 살찌워지고 고로 세상은 아름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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