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정문일침

수졸(守拙)

by 파르헤시아

졸(拙)은 교(巧)의 반대이다. 옛 말에 ‘임기응변을 교묘하게 하는 자는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는 것은 사람의 큰 병통이다.’ 하였다. 사람들이 이욕을 탐내어 나아가기를 구한다면, 나는 부끄러운 것을 알아서 의리를 지킨다. 그래서 나는 졸(拙)하다. 사람들은 남을 교묘하게 속이기를 즐긴다. 그러나 나는 부끄러움을 알아서 진실됨을 지키고자 할 뿐이다. 이 또한 졸(拙)이다. 따라서 남이 싫어하여 회피하고 버리는 것을 취하는 것, 이것이 바로 졸(拙)이다. 이욕을 추구하는 자가 탐낸다고 해서 반드시 얻는 것이 아니고, 마찬가지로 교묘한 자가 반드시 이루는 것이 아니다. 교묘한 자는 정신이 날로 피로하여 한갓 스스로 병을 만들 뿐이다. 그러므로 어찌 나의 참된 것을 버리고, 교묘한 술책과 거짓에 자신을 의탁하여 이익을 추구할 것인가. 만약 의리를 따라가고 참됨을 지키는 자라면, 스스로 얻음이 있고 스스로 잃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욕망에 집착하지 않으니 마음이 편안하고, 부끄러움이 없으니 태연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졸(拙)한 사람은 부끄러움을 아는데 부터 시작하여, 마침내 부끄러움이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것으로써 넉넉히 스스로 호연(浩然)하게 존재하여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졸한 것을 기른다는 것은 덕(德)을 기르는 것이다.


-권근(權近 1352~1409, '拙齋記')


교(巧)와 졸(拙)을 쓰는 것으로 말하면, 선천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사람의 후천적인 행위 여하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졸(巧拙)이라고 흔히 병칭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강유(剛柔)나 강약(强弱)과 같은 상대적인 개념을 지닌 명칭은 아니다. 교(巧)라는 것은 보기 좋게 합리화하여 꾸미면서 장난을 치려고 하는 데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필경에는 사람의 거짓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졸(拙)이라는 것은 뭔가 모자란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늘의 작용(天機)에서 전혀 이탈되지 않는 순진(純眞)한 행동이라고 할 것이다. -최립(崔岦 1539~1612, '用拙齋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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