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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헤시아 Jun 18. 2018

언론의 기능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에 올라온 글을 사실 확인 없이 ‘복사하기’ ‘붙여넣기’ 하는 건, 언론의 역할이 아니다. 그 일을 하는 사람 역시 기자·저널리스트로 보기 어렵다. 검증이 반드시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조차 언론의 ‘팩트체크 레이더’는 거의 작동되지 않는다. 주장하면 쓰고 의혹을 제기하면 받아쓴다. 언론에게 주장의 근거나 의혹의 진위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언론의 신뢰는 회복불능 상태로 갈 수밖에 없다. ‘취재’하지 않는 기자는 저널리스트가 아니다."(2017. 10. 12. 미디어오늘 1120호 사설)


언론의 여러 기능과 역할들 중에서, 대부분의 언론학자들이 손꼽는 가장 중요한 기능은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다. 이를 핵심 단어로 압축하면,  (1) 감시견 (watchdog) (2) 적대자(adversary ) (3)의제설정자(agenda- setter)의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감시견(watch dog ) 

감시견으로서의 언론의 역할은 정부의 통치행위와 사회를 감시하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의 파수꾼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는 감시행위를 통해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위탁된 정치권력을 오남용 하는 것을 견제하고, 동시에 사회의 부조리와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비판함으로써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켜야 한다는 신념을 토대로 한다. 이는 18세기 영국의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가 당시 사회의 주류 계급인 성직자, 귀족, 평민의 3계급에 이어 언론계를 제4계급으로 명명함으로써 언론의 대외적 위상과 역할을 제시한 이후로, 대의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입법, 사법, 행정부에 이어 제 4부로서의 언론의 역할을 강조하는 전통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특파원 기자 출신으로 작가이며 뉴욕 대학 대학원의 언론학 교수인 스탠리 프링크(Stanley E Flink)는 언론 자유에 관한 그의 저서 'Sentinel under siege(1997)'에서  언론의 감시견 개념을 최초로 제시한 사람을 존 밀턴(John Milton)으로 소개한다. 존 밀턴은 '출판물의 허가제'를 반대하며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강조한  '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 1644)에서  말하기를, "그것이 아무리 이단적이라 하더라도 그 반대의견에 마음을 여는 것을 회피하는 행위는 곧 진리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흘러내리는 샘물을 복종과 전통의 진흙탕으로 병들게 하는 것과 같다" 고 하였다. 이 문서를 통해 존 밀턴은 당시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마땅히 정통 권력, 특히 당시의 무소불위의 종교권력에 저항하고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는 곧 대중이 마땅히 알아야 할 권리, 즉 '알권리'의 신념으로 연결되면서 언론의 주요한 역할 개념으로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 알 권리는 제레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루소(J.J.Rousseau )등을 거치면서 현대에 이르러 사상적 체계를 갖추었다. 1922년 월터 리프먼은 그의 저서 '여론'에서 언론에 맡겨지는 국민의 알 권리란 당연한 권리를 넘어서는 어떤 '특권'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 실제로 정부를 중심으로 한 정치 사회의 세계는 일반인들이 인지할 수 없는 외적인 세계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방법, 즉 개인 스스로가 현상을 직접 탐색 탐구하거나, 아니면 누군가로부터 보고를 받거나, 또는 단순하게 그것을 상상할 도리밖에 없다고 보았다.  이 가운데서 언론이 하는 역할이 바로 보고자의 기능, 정보 전달자의 기능이다. 실상을 알 수 없는 것, 모르는 것을 비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로써 알 권리는 감시견으로서의 언론 기능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는다. 알 권리가 공식적인 용어로 사용된 것은 1945년 AP통신의 기자인 켄트 쿠퍼(Kent cooper)가 뉴욕타임스에 쓴 기고문을 시초로 보고 있다. 켄트는 '시민은 언론의 완전하고 정확한 뉴스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 시민의 알 권리가 배제된 정치적 자유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이후 1953년 해롤드 크로스(Harold cross)가 '국민의 알 권리'라는 저서를 출간함으로써 알권리의 개념은 언론의 중요한 요소로 널리 통용되기 시작하였다. 

(2) 적대자 (adversary) 

'adversary'는 영어로 '적(敵)'이란 뜻이다. 이는 전투나 전쟁에서의 말하는, 승패의 유무로 생사와 운명이 달린 군사적 의미의 적(敵, enemy)이 아니다. 경기나 논쟁, 토론 등의 경쟁으로 승패를 다투는 상황에서 상대방인 경쟁자로서 적(敵)을 뜻한다.  다시 말해 경쟁 당사자의 입장에서 이겨야 할 대상으로서 상대방이 'adversary(적)'이다. 언론이 적대자라는 개념은, 언론은 정부와 공생적 관계가 아닌 경쟁적인 적대자의 관계를 유지해야만 정부의 통치권력의 오남용을 감시, 견제, 비판하는 역할을 충분히 해 낼 수 있다는 신념을 토대로 한다. 역사적으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수세기에 걸쳐 지배 통치권력, 즉 정부로부터 끊임없는 통제와 간섭에 시달려왔다. 언론이 투쟁해야 할 가장 큰 적이 바로 통치권력, 즉 정부였기 때문에, 언론의 적대자 개념은 18세기 이후 자유언론 사상의 중심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적 토대를 제공한 대표적인 사상가는 존 로크(John Locke)다. 그는 "우리가 폭압적인 지도자에 대항하여 일어나서 필요하다면 힘과 폭력에 의해서라도 악당들을 전복할 절대적 권리, 아니 어쩌면 의무가 있다" 고 주장하였다. 마크 트웨인은, "기자는 부정직한 지배자에 대해 공격을 선도해야 한다."한다고 강조한다. 또 몽테스키외(Montesquieu)는, '사악한 정부는 권력을 남용할 수가 있는데 그러한 남용은 대항하는 어떤 힘에 의하지 않고서는 억제될 수가 없다.'라고 통찰하였다.  

이러한 적대자로서의 언론 개념은 감시견 개념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감시견 기능의 수행은 언론과 정부 권력 간의 적대적 관계를 전제로 할 때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일 언론이 통치 지배권력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지 않고, 공생 관계 또는 협력관계 또는 주종과 마름의 부역자의 관계 혹은 
어용 관계에 있다면 언론의 감시견 기능은 그 수행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오직 적대자의 관계를 유지할 때에만 비로소 통치 지배권력의 잘못을 비판하고 고발하고 권력의 남용을 견제하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적대자 개념은 언론 기능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데 만약 정부와 언론이 추구하는 가치와 목적이 궁극적으로는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경우, 그것을 추구하는 수단과 방법을 달리해야만 갈등과 대립의 관계인 적대자의 역할이 제대로 가능해진다. 다시 말해 사회 공공의 이익을 위한 최선의 수단과 방법을 모색하고 도모하고 선도하는 것이 언론이 해야할 일이 되겠다.

(3) 의제설정자 (Agenda - Setter ) 


어젠다(agenda)는 '회의 등에서 거론되는 의제나 안건'을 뜻한다. 언론 용어로 사용될 때는 현재 여론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쟁점, 이슈 등을 의미한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버나드 코헨(Bernard C. Cohen)은 "신문과 외교정책" (The Press and Foreign Policy, 1963)에서 말하기를, "언론은 정보와 의견의 단순한 조달자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다. 무엇을 생각 (what to think)할 것이냐를 사람들에게 말해주는 데 있어서는 항상 성공적이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독자들에게 무엇에 대하여 생각 (what to think about)할 것이냐를 말해는 데 있어서는 그것은 놀랄 만큼 성공적이다.... 세상이 사람에 따라 달리 보이게 되는 것은 물론 그들의 개인 관심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읽고 있는 신문의 기자, 편집자 및 발행인이 세상의 지도를 그렇게 달리 그려놓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곧 신문이 독자들에게 무엇에 대하여 생각할 것인가에 대해 중요 한 기능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실상 신문은 독자들에게 특정 사건에 대한 주목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 결과 독자들로 하여금 무엇에 대하여 생각하고 이야기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데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하였다.  

이처럼 의제 설정자의 기능이란, 대중에게 무엇을 알려야 할 것인지 혹은 무엇을 알리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기능을 말한다. 이것은 대중의 상식 혹은 특정 지식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쟁점, 특히 국가운영이 나 정책상의 주요 사안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의제설정 개념은 1972년 맥스웰 맥콤(Maxwell Mcombs)과 과 도널드 쇼우(Donalds shaw )에 의해 처음 수립되었다.  

이외에도 언론이 비정상적일 경우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몇몇 왜곡된 역기능이 찾아진다.  2016년 4월 27일 JTBC 뉴스룸 앵커 브리핑에서 손석희 앵커는 말하기를, "언론은 언론학자들 사이에서 흔히 개에 비유되곤 합니다..."로 시작하여 그 역기능에 대해 언급한다. 아래는 손석희 앵커의 설명을 그대로 옮겼다. 

1) 애완견(Lapdog): "랩독은 말 그대로 권력의 애완견 같은 언론을 뜻합니다.  주인의 무릎 위에 올라앉아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달콤한 간식을 받아먹는 그 안락함에 취해버린 언론이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랩독은 결코 권력구조에 비판적일 수 없습니다. 다만 거기에 동화되고 기생할 뿐이지요.  권위주의 시대의 언론은 이런 비판을 받았습니다. "  

2) 경비견(Guard dog): "가드 독의 역할은 좀 복잡합니다. 언론 그 자신이 기득권 구조에 편입되어서 권력화 되었고, 그래서 권력을 지키려 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들이 지키려 했던 대상을 향해서도 공격적이 되는 것. 물론 그것은 지키려 했던 대상의 권력이 약해졌을 때, 혹은 지키려 했던 대상이 자신의 이익과 반하게 될 때의 이야기입니다."  

3) 슬리핑 독 (Sleeping dog): 매우 중요한 이슈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눈을 감고 있는 언론.


궁극적으로 언론 기능의 핵심은, 언론의 전문주의(professionalism)의 핵심적 요소인 정보 수집과 보도의 객관성 그리고 공정성에 있다(이재진, 2006). 즉 위에서 요약한 3가지 언론의 사회적 기능은, 주관적인 어떠한 가치관이나 이해관계도 가능한 한 배제된 상태에서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사회의 공익을 위한 역할 수행이 가능할 때 비로소 유효한 것이 된다. 우리 사회의 자칭 타칭 진보, 보수, 혹은 수구 언론들의 예로 볼 때, 특히 감시견으로서의 언론의 기능은 더 이상 대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언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 준다. 단지 자본주의에 기반한 상업주의, 그리고 정치 경제 문화 권력을 중심으로 하는 특정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이익집단으로서, 애완견 혹은 경비견의 모습만 쉽게 찾아질 뿐이다. 


감시견의 개념은 언론의 뉴스 취재, 정보의 수집, 그리고 보도의 일련 과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언론의 사회적 공익적 활동에 당위성과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언론이 여러 사회적 쟁점에서 특정 이익집단의 애완견 혹은 경비견, 혹은 슬리핑 독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 문제다. 대중의 알 권리를 가로막고 본질을 흩트리고 혼란스럽게 하며 대중의 인식과 바람 혹은 여론과 역행하는 자세로 일관할 때, '개'로 비유되는 언론의 기능과 역할은 역설적인 것으로 변질되고 만다. 즉 개로 비유되는 언론의 기능은, '전통적 개념의 언론자유 이론에 부합한다기보다는 언론의 필요성에 의해 주장되는 것이며, 단지 법에 의해서 수용된 일종의 면책특권으로 전락된다'(이재진, 2006). 다시 말해, 감시와 비판 그리고 견제라는 언론의 핵심기능이 단지 랩독이나 경비견으로 기능하는 언론의 역할을 자기 정당화하는 이론적 법적 토대를 제공하는 수단이 될 뿐이다. 만일 사람이 스스로 '개'임을 인정한다면, 정녕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언론이 언론자유를 들먹이며 스스로 '개'(감시견)를 강조함으로써 자신들의 부조리함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이러한 역설은 그야말로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것으로 부끄러움을 가리는 일이라 하겠다. 


일상의 생활 글, 일기 또는 감상문을 쓸지라도 반드시 실제로 일어난 일, 사실이 기반이 되어야 하는 법이다. 감정이나 감상 또한 마찬가지다. 개인의 의견을 제시하는 글이라면 반드시 그 의견을 뒷받침할 수 있는 다양한 사실적 근거가 뒤따라야만 한다. 그래서 관련이 있는 수많은 자료와 정보를 찾고 또 뒤진다. 반면에 비록 사실에 근거를 두었다할지라도 완전한 허구와 상상으로 쓴 글을 소설이라고 한다. 허구(虛構)란, '사실에 없는 일을 사실처럼 꾸며 만듦.'을 뜻하는 말이다. 제대로 된 소설가는 한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량의 독서와 취재를 통한 사실자료를 수집하는 것으로 안다. 이는 사실에 가까운 허구를 쓰기 위함이다. '취재'없이, 사실 검증의 노력없이, 받아쓰고 베껴쓰고 짜깁기하다 못해 아예 상상력을 동원하여 소설을 쓰는 듯한 완장찬 기자, 저널리스트들이 많이 보이는 요즘의 언론 현실이다.  상식이 있는 일반 대중들이 집단 지성을 이루고, 지식정보가 사방팔방으로 열려 있는 현 시대에 남들보다 조금 더 깊이있는 정보를 쉽게 접하고 또 많이 안다는 것이 결코 권력이 될 수는 없다. "소문 일지 진실 일지 판단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고,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언론의 몫이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말이다. "언론의 자유를 부르짖는 것은 그것을 남용하려는 자들 밖에 없다". 이는 괴테의 말이라고 한다. 여기에 '언론의 자유' 대신에 자유, 정의, 도덕, 사랑 기타 등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대입해도 그 의미는 통한다. 진정한 가치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자의 삶으로 누리는 것이지, 단지 입으로만 부르짖는 자가 누릴 수 있는 몫은 정녕 아닐 것이다.(2018.6.18)


※참고: 윗글의 전반부 '언론의 주요 기능 3가지' 부분의 얼개는 아래 '박동진의 논문'을 거의 표절하고 요약했다. 다만 논문에서 인용된 여러 학자들의 인용문의 원전과 연관된 자료들을 직접 찾아서 논증의 타당성을 확인하고, 나름 이해된 것을 추가 보충하여 내 스타일의 글로 재구성하였다. 다시 말해 글 전반부의 '기능'부분 만큼은 표절에, 짜깁기하고 나름 소화시킨 것으로 재해석하고 덧칠한 셈이다.


※참고한 도서 자료: 

1. 이재진 교수(한양대 신방과)의 학술논문, '언론의 파수견 개념의 발전과 적용-한국 판례분석을 중심으로'. 한양대 2006. 

2. 박동진, '총리 인선 파동 보도를 통해 본 언론의 권력 감시기능에 관한 일연구', 서강대 언론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2.

3. 김용범, '한국에 있어서 언론의 자유와 책임에 관한 고찰',서울대학교 신문대학원 석사학위논문,1975.

4. 차배근, '매스커뮤니케이션 효과이론' ,나남,1990.

5. 박명진, '비판커뮤니케이션과 문화이론',나남,1989.

6. 박영상, 『언론과 철학』서울:나남,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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