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용렬한 사람이 되는 것을 죽는 것보다 수치로 여긴다. 무신년(1728, 영조 4) 난리 때 청안 현감(淸安縣監) 이정열(李廷說)이 적에게 인부(印符)를 잃고 서울로 붙잡혀 왔다. 이정열은 임금의 혈족이고 색목(色目 당파)도 역도(逆徒)들과 달랐으므로 영조는 그를 살려주려고 하여 물었다. “인부를 네가 주었느냐, 적이 빼앗아 갔느냐?” 그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주었다고 하면 권병(權柄)이 그래도 나에게 있지만 빼앗겼다고 하면 스스로 용렬한 사람이 될 뿐이니, 차라리 죽을지언정 어찌 용렬한 사람이 되겠는가.’ 하고는 대답하기를, “제가 주었습니다.” 하였다. 마침내 그는 처형되었다.』-성대중(1732~1812), 청성잡기 제3권 / 성언(醒言)
위의 글은 청성 성대중 선생의 기록이다. 회생의 기회가 주어진 생사의 선택에서 구차스럽게 변명하지 않고, 살아서 수치스럽게 사느니 죽음을 택한 역사 인물의 실화다. 용렬한 사람이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죽는 것보다 수치스럽게 여겼을까? 궁금하다.
무신년 난리는 '이인좌의 난'을 말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청안 현감 이정렬은 반군의 위세에 몰려 산속으로 도피하였다. 이때 이인좌가 가짜 현감으로 정중익이란 인물을 청안에 파견한다. 정중익은 부하 두 사람을 시켜 숨어버린 이정렬을 수소문하여 찾게 하였다. 두 사람은 이정렬을 만나서 새로 부임한 신임 현감이 인부를 달라고 요구한다고 칼로 위협하여 인부를 빼았았다. 그 후 이정렬은 의병들을 모아서 반군을 진압하여 이들로부터 인부를 되찾았다.
인부(印符)란 관인(官印)과 병부(兵符)의 줄임말이다. 여기서 문제시된 것은 병부다. 병권은 조선 왕조 왕권의 상징이요, 실질적인 국가권력이다. 조선시대 지방관이 군대를 동원하려면 반드시 왕의 교서와 함께 병부를 서로 맞춰봤다. 병부는 두 조각으로 나뉘어 온전한 하나를 이룬다. 조정과 지방관이 각각 한 조각씩 보관하였다. 오직 왕만이 가지는 군대 동원권을 상징하는 병부를 반란군에게 빼앗겼다는 것은, 곧 왕의 권위와 고유 권력을 침해당하고 훼손시켰다는 의미와 같다. 따라서 이정렬은 관의 책임자로서 인부를 되찾고 반란군을 진압한 공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이를 정도로 책임을 져야 할 만한 큰 죄를 지은 결과가 되고 말았다.
용렬한 사람으로 번역된 한자어는 庸人(용인)이다. 뜻으로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옛 선조들의 문헌에서 종종 찾아지는 이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다르다. '용렬(庸劣)하다'의 뜻은 '사람이 변변하지 못하고 졸렬하다'이다. 졸렬은 '옹졸하고 천하고 서투르다', 옹졸은 '성품이 너그럽지 못하고 생각이 좁다'라는 뜻이다. 나름 정리하면, '속이 좁고 얕아 마음 씀씀이가 너그럽지 못하고 변덕스럽고 이기적인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켜 '용인'(庸人)이라 한다. 용인이 용렬한 사람의 의미로 자리 잡는 결정적 근거가 되는 설명은 공자가어(孔子家語) 오의해(五儀解)에 나온다. 공자는 어진 사람을 설명하면서, 인간을 용인(庸人), 사인(士人), 군자(君子), 현인(賢人), 성인(聖人)의 다섯 부류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공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품성적으로 인간다움이 없고 어질지 못한 사람이 용인이요, 곧 용렬한 사람이다.
성대중 선생은 다른 글에서 말하기를, "용렬한 사람을 제어하는 것은 악한 사람을 제어하는 것보다 어렵다. 악한 사람은 필시 자부심이 강한 자일 것이니 잘 제어한다면 무슨 일이든 잘 해 낼 터이지만 용렬한 사람을 어디에 쓰겠는가. 그의 뜻을 따라 주면 환심은 사겠지만 일을 망칠 것이고 뜻을 따라 주지 않으면 불만을 품고 자신을 부리는 사람이 패망하기를 바랄 것이니, 용렬한 사람을 대하기가 참으로 어렵지 않겠는가."라고 자문한다. 영재 이건창 선생은 「당의통략(黨議通略) '원론'(原論)」에서, '용렬한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도덕과 인문의 이름으로 자기를 포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공자는 논어 위정 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신의(信義)가 없으면 그런 사람을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르겠다. 비유하면, 큰 수레에 멍에 채잡이가 없고, 작은 수레에 멍에 채받이가 없는 격이니, 그렇게 되면 어떻게 수레가 굴러갈 수 있겠는가.” 여기서 신(信, 믿을 신)은 말과 행동을 모두 포괄하는 실천적 의미의 신실(信實, 성실 誠實)을 뜻한다. 다시 말해 사람이 말과 행동에 믿을만한 구석이 없으면,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이것은 마치 수레에 소나 말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없어서, 수레가 굴러갈 수 없는 것과 같다.
'줏대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줏대는 '사물의 중요한 부분, 자기의 처지나 생각을 꿋꿋이 지키고 내세우는 기질이나 기풍'을 뜻한다. 원래 줏대는 수레바퀴 끝 테두리 부분을 휘감은 '휘갑쇠'를 가리키는 말이다. '휘갑쇠'는 물건의 가장자리나 끝부분을 보강하기 위하여 테두리를 두르는 쇠다. 만일 나무로 만든 수레바퀴에 줏대가 없다면, 똑바로 가지 못하고 흔들리다가 얼마가지 못해 파손되어 마침내 바퀴의 기능을 상실하고 만다. 따라서 '줏대 없다'의 의미는 '마음을 곧지 못하고 주관이 뚜렷하지 않아서 생각과 행동에 일관성이 없이 쉽게 흔들리는 것'을 뜻한다. 그 결말은 좋지 않다. 이 역시 용렬한 사람과 연관이 있다.
용인자요(庸人自擾)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이는 '평범(平凡)한 사람들이 스스로 문제를 일으킨다'라는 뜻이다. 신당서(新唐書), 육상선전(陸象先傳)이 그 출전이다. 육상선이라는 현명한 관리가 "평범한 사람들은 천하에 본래 없는 말을 공연히 저질러서 시끄럽게 하며 편안함을 얻지 못할 뿐이다. 엄격한 형벌로 다스리는 것보다는 지금 현재에 처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한다면, 다음부터는 많은 수고가 덜어지지 않겠는가?"라고 말한데서 유래한다. 이로써 조선시대의 선비 이정렬이 죽음을 선택한 그 심사가 헤아려 진다. 그것은 이정렬 선생이 가진 선비로서의 자존심으로 다가온다.
사전을 찾아보면, 자존심은 '(남에게 굽힘이 없이) 제 몸이나 품위를 스스로 높이 가지는 마음', 자존은 '스스로의 인격을 존중하며, 긍지를 가지고 스스로의 품위를 지킴'이라고 풀이한다. 보통 자존심으로 번역되는 영어는 Self-esteem이다. 이외에도 자아존중, 자아존중감, 자존감, 자긍심, 자부심 등으로 번역된다. 우리 말로는 각기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만, 영어로 따지자면 모두 같은 의미를 가진다. 쉽게 말하면, 자신을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로 여기는 마음, 또는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마음이 자존심이다.
학술적으로 자존심(self-esteem)은 개인이 자신의 특성과 능력에 대해 지니고 있는 생각, 판단, 태도, 감정 및 기대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주로 평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주로 자존심은 긍정적인 의미의 자아개념(self-concept)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해석된다. 따라서 자아상(self-image), 자아정체성(self-identity), 자기평가(self-evaluation), 자아 수용(self-acceptance), 자기효능(self-efficacy), 자존감(self-worth 자부심) 등과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연구에 따르면 자존심은 사회 비교 특히 상향 비교를 많이 할수록 자존심은 낮아진다. 실패한 경우 자신의 실패를 확인시켜 주는 정보를 회피하며 하향 비교를 통해 자존심을 유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Taylor & Lobel, 1989; White & Lehman, 2005). 다시 말해 자존심 형성과 유지는 스스로의 평가에 달려있다는 말이다. 즉 자아개념, 그리고 자신이 설정한 이상(理想)과 자신이 현재 처한 현실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평가하는가에 달라진다. 이러한 평가와 비교는 그 귀인(歸因, attribution)을 자기 내적 요인에 두느냐 혹은 외적 요인에 두느냐에 따라 자신을 보는 방식, 자신감, 생각,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귀인이란 결과를 놓고 원인을 따지는 심리적 방식을 말한다.
로젠버그(Morris Rosenberg, 1995)에 따르면 자존심이 높은 사람의 주요 특징은 이렇다. 첫째, 높은 자존심은 우월감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을 가지지만, 비교우위 의식을 가지고 타인에 대해 오만하거나 남을 무시하고 경멸하지 않는다. 둘째, 높은 자존심은 완벽한 감정을 포함하지 않는다.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실수나 잘못, 실패를 타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부족한 결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힘써 노력한다. 셋째, 자존심이 높은 사람은 자신을 이해하고 좋아한다. 자신의 허물이나 결점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외부의 평가나 비교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거나 의식하지 않는다. 넷째, 자존심이 높은 사람은 자신을 적절히 존중한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특히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존중하는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지 않고도 타인으로부터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반면에 자존심이 낮은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결론적으로 자기를 가치있는 존재로 평가한다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자존심은, 곧 자긍심이다. 다시말해 자기자아를 긍정적으로 가치있게 인식하는 마음이 자존심이다. 자긍심이 클수록 심리적으로 안정적이며,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다. 심리학자 나다니엘 브랜든(Nathan Brandenen)의 개념정의에 따르면, 자긍심(self-esteem, 자존심, 자아존중감)은 인간의 심리적 요구로 본질적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심리적 요구가 필요 적절하게 충족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기 방어적인 경향성(defensiveness), 불안감, 우울증, 대인관계의 어려움 등과 같은 정신병리현상이 발생하기 쉽다고 주장한다.
높은 자긍심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자아수용에 있다. 자아수용이란, 자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만의 것으로 내 편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자기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때문에 자기책임은 당연시 된다. 이는 정신적 성장과 향상의 바탕이 된다. 높은 자긍심은 실패와 좌절에 맞닥뜨렸을 때, 비록 충격과 실망감을 가질지라도 절망으로 자기를 주저앉히는 부정적 요인으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를 가다듬고 더욱 분발할 동기부여의 기회로 삼는다. 알프레드 아들러의 열등감 극복도 이와 다르지 않다. 높은 자긍심의 바탕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는 자기수용과 자기이해, 그리고 자기배려와 관용의 마음이다. 자존심의 형성은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 경험이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부모로부터 받는 공감과 이해, 격려와 지지를 통해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로 인식되는 경험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는 자존심이 강하거나 센 사람의 특징은 자존심이 높은 것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개념의 혼동에서 비롯된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강하거나 혹은 쏀 부정적 의미의 자존심은 자존심이 낮은 사람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자아와 관련하여, 자기애가 강한 사람, 열등의식이 많고 감추어진 내적 수치심이 많은 사람, 의존성이 강한 사람, 자기 잘못을 인정치 못하는 사람, 자기 정체성이 불분명한 사람, 성격장애자, 뇌 결손과 관련하여 기질적인 인격장애가 있는 사람 등등이 그렇다.
자존심을 버려라는 말과 글이 어렵지 않게 찾아진다. 이는 자기 정체성, 곧 자기 자아를 버리라는 말과 같다. 무책임하고도 위험한 말이다. 자존심이라고 착각하고 고집하는 그릇된 것들을 버려야 한다. 버려야 할 것은 자신을 과시하고 자랑하며 뽐내고자 하는 자만심과 허영심이다. 남들과 비교하여 자신이 우월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는 여기는 그릇된 자부심이며, 그 반대로 작동하는 열등감이다. 자신의 가치를 외부의 물질적인 것에 기준을 두는 왜곡된 마음이며, 수치스럽고 공허한 속을 밖의 겉으로 아름답게 위장하여 자신의 존재가치를 세상에서 인정받으려는 병든 모방심리와 자기기만이다. 사회적 상대 평가와 비교에 연연하며 타인을 의식하는 체면이다. 이는 자존심이 낮은 사람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다시 말해 자존심이 낮고 자기반성과 성찰이 없는 사람들이 곧 용렬한 사람들이다.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여 용렬한 사람으로 취급되고 판단당하며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한다. 그냥 주저앉지 않고 힘을 다하여 반군을 진압하고 빼았겼던 인부를 되찾고, 마음의 치욕을 갚았으니 이만하면 되었다. 이정렬선생의 심사가 가슴시리게 헤아려진다. 그 지조와 그 절박함을 어찌 비교할수 있으리오마는, 내 사는 꼴도 그리 다르지 않다. 정리한 자료들에 의하면, 나는 자긍심이 높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에 속한다. '이만하면 됐다.' 한유(韓愈 768 ~824)는 그의 시(詩) '의란조'(猗蘭操)에서 '군자가 마음에 상처를 입음은 그가 지키고자 하는 것 때문이리'( 君子之傷 君子之守 )라고 읊었다.
"당신을 보낸 사람에게 가서 말해 주시오. '수세미는 자기 명예를 팔지는 않더라고요.' "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에 나오는 말이다. 가난한 퇴역 장교, 니콜라이 일리치 스네기료프가 한 말이다. 수세미는 자기 아들의 친구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수세미의 자존심...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가 경의를 표할 정도로 도스토옙스키는 인간 심리 이해에 정통했다. 요즘 내 심사가 영락없이, 까뒤집어 놓은 도스토옙스키의 '수세미'다.(2018. 1.30)
Do you wish to be great? Then begin by being. Do you desire to construct a vast and lofty fabric? Think first about the foundations of humility. The higher your structure is to be, the deeper must be its foundation. -Saint Augustine(354~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