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혼잣말

목후이관(沐猴而冠)

by 파르헤시아

'목후이관(沐猴而冠)'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이 말은 '목욕한 원숭이가 관을 쓰고 있다'는 뜻이다. 『한서(漢書) 진승항적전(陳勝項籍傳)』이 그 출전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도 나온다.


그 내막은 이렇다. 초패왕 항우의 가신이었던 한생은, 항우가 진의 수도였던 함양을 초토화시키고, 고향인 초의 팽성을 수도로 삼고자 하니 이를 극구 말린다. 한생은 천혜의 요지이며, 비옥한 땅인 함양을 수도로 정할 것을 항우에게 진언하였다. 그러나 고향으로 멋지게 폼나게 금의환향하려는 마음이 앞선 항우는, 한생의 합당한 진언을 거부하였다. 한생이 항우를 뒤로하고 나가면서 한 말이, 바로 '목후이관(沐猴而冠)'이다. 한생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초나라 사람은 목욕한 원숭이가 모자를 쓴 꼴이라고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人言楚人沐猴而冠耳 果然).”


이 말을 들은 항우가 무슨 말인지 궁금해 하자, 진평은 설명하기를, “첫째로 원숭이는 관을 써도 사람이 되지 못한다, 둘째로 원숭이는 꾸준하지 못해 관을 쓰면 조바심을 낸다, 그리고 원숭이는 사람이 아니므로 만지작 거리다가 결국 의관을 찢고 만다는 뜻"이라고 초패왕 항우에게 귀띔 한다. 진평의 해석을 듣고 분노한 항우는, 한생을 가마솥에 삶아 죽이는 극형인 팽형(烹刑)에 처해 버렸다. 후대에 이 고사성어의 의미를 "겉모습은 그럴 듯 하지만, 생각과 행동이 사려 깊지 못하고, 짐승처럼 난폭해서 사람답지 못하다'는 뜻으로 사용한다.


자청 타청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만날 경우가 있다. 그것이 사회적 관계든, 개인적 교분이든,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말이다. 그런데 아주 가끔 성별 불문하고 첫 대면의 자리에서 참으로 야롯한 시선을 느낄 때가 있다. 어제 일이다. 이런저런 일로 지인을 통하여 사석에서 사람을 만날 일이 생겼다. 처음 대면의 자리에서 손을 내미는 순간, 스캐닝하듯 아래위를 쓰윽 훑어 지나가는 눈길을 보았다. 눈과 눈을 마주치기 전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그가 스캐닝한 것은 나의 무엇일까? 아마도 이 한 번의 자동 스캐닝으로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자기 나름의 계산과 판단을 이미 내렸을 것이다. 쇼핑몰 혹은 백화점 같은 곳에서나 흔히 겪을 수 있는 무례한 광경을, 사석의 자리에서 당하는 기분은 참으로 묘하다. "어라 이것 봐라". 이때, 엉뚱하게도 불쾌한 감정과 함께 '목후이관' 이란 말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기왕 생각난 김에 행여 남아 있을지도 모를 감정 찌꺼기들을, 글로써 밖으로 끄집어내어 먼지 털어 내듯 툭툭 털어내고자 한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일단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보지 못하고, 분석하고 계산부터 하기 시작하면, 기계적 이해관계 외에 더 이상의 관계는 존재할 수 없다. 물론 지금은 남자도 마치 상품을 포장하듯 성형하고, 미용과 외관에 신경을 쓰는 걸 당연시하는 게 요즘 세상의 패러다임이다. 인간을 상품가치, 수단 가치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보이는 아름다움이, 보이는 고상함이 미학과 실용 가치의 기준이 되는 세상이다.


성격상 누군가로부터 관찰되거나, 특히 시험받는 듯한 기분은 언제나 불쾌하다. 한편으로 쓰윽 아래위를 한번 훑어봄으로써, 한 개인의 가치를 판단하는 그 안목이 놀랍다. 코앞에 보이는 외관만으로 한 개인의 사람됨을 평가하는 그 통찰력이 또한 대단하다. 나는 굳이 꾸미고 다닐 이유가 없는터라 안팎으로 고리타분한 촌티가 풀풀 난다. 단출하고 평범한 필부 그 자체에 불과한 나는, 그저 신기하고 부러울 뿐이다. 나는 상품 취급받는 것이 싫다. 상품은 효용가치가 사라지면, 상품의 존재가치도 덩달아 끝나기 마련이다. 사람을 수단가치로 상품가치로 인식하는 부류들은, 아무리 그럴듯한 가면을 쓰고 있어도 금방 티가 나는지라, 알고도 모르는 척 무시하되, 단지 내심으로 경계할 따름이다. 만남의 목적은 차치하고, 더 이상의 진도는 없다. 부드럽지만 어색한 가면을 계속 쓰고, 차 한잔, 식사 한 자리, 악수 두어 번이면 모든 게 끝난다.


그런데 나는 '목후이관(沐猴而冠)' 이란 말의 의미를 '겉만 번지르하고, 내실은 없는 사람'의 의미로 가끔 혼동한다. 토해내듯 글을 쓰고 보니 그렇더라는 말이다. 이 말의 원 뜻은 인간 됨됨이, 즉 사람다운 품성과 도량에 기초한다. 다시 말해, 겉모습은 그럴듯하지만, 실제는 사람답지 못한 사람을 의미한다. 게다가 진솔한 한 인간에게 한 맺힌 죽음을 가져다준, 섬뜩한 오해와 한이 서려 있는 말이다. 아무에게나 함부로 내뱉을 말은 아니다.


우리 속담에 '종로에서 빰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 내가 딱 그런 셈이다. 그래도 사람을 대상으로 함부로 내뱉어선 안될 법한 '목후이관'과 연결 지었으니, 나름 제대로 흘기고 턴 셈이다. 한편으로 사소한 감상(感傷)에 뜬금없이 '목후이관'이라는 고사성어를 연상하는 내가, 온전한 정신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요즈음 언론보도에서 암수 구별 없이 관 쓴 멀쑥한 원숭이들이 눈에 자주 밟히는 듯하니 그렇다. '뭐 눈엔 뭐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옛 말 또한 제 격이 아닐 수 없다. 솔직하게 따지고 보면, 나도 아주 아주 가끔은 '목후이관' 짓을 할 때도 있다. 어쨌든 누가 뭐라든 그들도 나도 '사람'인건 분명하다. 그런데 두툼한 조끼를 걸친 개들이 산책 길에 종종 보인다. (201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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