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혼잣말

사람은 믿을 게 못된다

by 파르헤시아

며칠 전 모처럼 일이 생겼다. 안 그래도 요즘은 숨 쉬고, 걷는 일 이외엔 딱히 할 일도 없다. 그래서 기꺼이 객원으로 동참한 자리의 뒤풀이였다. 일이 끝난 후, 식사를 마치고 비슷한 몇이 따로 모여 술자리를 함께 했다. 술기운이 어느 정도 돌자,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끝에 개인적인 푸념들이 간간히 튀어나왔다. 그 와중에 평소 묵직한 탱크 같다고 생각되던 지인이 불쑥 말했다. 평소 말이 없던 사람이라, 좌중이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그를 쳐다봤다. 나처럼 평소 주량이 그리 세지 않은 사람이다. 분명 취했음이 틀림없었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사람은 믿을게 못된다. 믿는 순간부터 언젠가는 바보, 머저리 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그런 맘 없으면 믿지 마라. 내 말 틀린 게 있나? 그런데 나는 알면서도 자꾸 까먹는다 c%$b#&r*...어째튼 나는 사람 절대 안 믿는다. 너희들도 마찬가지다.”


바로 옆 사람을 통해 그의 최근 사정을 들어보니, 그럴만하다. 그는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밀려서 명퇴에 직면했다. 그 배후엔 가장 믿었던 사람이 있었다. 몇 되지 않는 함께한 사람들도 세상 이야기를 멈추고, 덩달아 비슷한 경험들을 술술 풀어놓는다. 그 심정에 마치 도장이라도 찍듯이 맞장구를 친다. 나는 공감을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불편하고 거북했다.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이 말은, 아주 드물게 내가 정신 줄을 놓거나, 물에 젖은 휴지처럼 마음이 풀리면, 곧잘 하는 속말인 까닭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막상 타인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묘하게 복잡해진다. 일행과 헤어져 두시간여 동안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버스 속에서 눈을 붙이기까지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말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말은 오래전 몇몇 기억 속에서, 그리고 얼마 전 누군가와의 대화 속에서도 모양만 달리 한 채, 거의 비슷하게 반복되었다는 것을 마침내 기억해 내었다


“사람을 믿지 않습니다” 이 말이 아주 오래전 최초로 각인된 계기가 있다. 지금은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셨지만, 한 때는 개인적으로 존경하던 지인 목사님의 말이다. 마음이 복잡하던 시절, 시간을 내어 모처럼의 조촐한 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당시 나름 힘들었던 개인적인 푸념을 쏟고 말았다. 아주 힘든 시기였다. 그 푸념 끝자락에, 당신에게서 나온 말로 기억된다. “사람을 믿으면 실망밖에 남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외에는 아예 사람을 믿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러면 나는?..." 속으로 순간 반문했다. 아마도 욱하는 젊은 혈기에, 당신도 내가 아는 여느 사람들과 똑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했을게다. 어쩌면 내가 당신에게만큼은 신뢰할 수 있는 존재이기를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 후로 개인적으로 바쁘다는 흔한 핑계로, 그 분과의 사적인 인간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대신에 오래도록 관계를 이어간 것은, 한줄기 남은 그 분과의 신앙적 의리였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가지고 있던 사람에 대한 믿음은, 내 인생의 장밋빛 희망과 함께, 내 삶 속에서 무참하게 그리고 처절하게 깨어졌다. 내가 그토록 거북해하고 불편하게 여겼던, “사람에 대한 불신”은 결국 내 편견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후의 몇몇 인연들은, 결국 이것이 더욱 확고한 편견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양념을 쳤다. 이러한 편견은,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야 겨우 깨졌다. 당신이 말한,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말을, '불신'이라는 직접적인 의미보다는, "상대에게 어떤 기대감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나는 "믿지 않는다."에 감정적으로 반응하여 그저 '불신'으로만 이해했을 뿐, 그 말의 이유로 뒤따라왔던 '실망'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꽤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이러한 생각은, 내가 겪었던 숱한 실망 혹은 배신감들이, 상대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내가 기대하는 어떤 것에 좌우되었다는 것을 불현듯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내 속에 자리잡고 있다. 무엇이든 기대가 크면 실망도 그만큼 큰 법이다. 하물며 배신감은 오죽하겠는가. 특히 진심으로 신뢰를 주었던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기대하는 당신은, 내가 마음으로 그리는 이상적인 이미지일 뿐이고, 당신은 그저 당신일 뿐이다. 내가 이해하는 당신이 곧 당신 그 자체라 믿는 것은 심각한 착각이다. 있는 그대로 보고 대하는 것, 진정한 사랑의 속성에도 그 의미가 깃들어져 있다고 혹자는 말한다. 무엇 때문에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 이란 단어 자리에 연상할 수 있는 다른 것을 대체해도 그 의미는 같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흔하게 듣는 말이다. 심지어 초면의 사람에게서도 듣는 말이다. 그러한 말들을 들을 때, 나는 그저 그려느니 한다. 혹시 하는 어떤 기대를 갖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말이 적절한 표현이다. 다시 말해, 그러한 말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연연하지 않으려 애쓸 따름이다.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하물며 말은 오죽하랴. 솔직히 말하면, 내 욕망에 따른 일방적인 기대감으로 인해서, 더 이상 마음의 상처를 원치 않는다. 그래서 나는 분명 이기적인 사람이다.


오늘,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들이 유달리 아름답다. 들에 화사하게 혹은 소담하게 피어난 꽃들은, 결코 사람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러든 말든 꽃들은 우리에게 연연하지 않는다. 연연하는 것은 꽃을 바라보는 나일뿐이다. 내가 그 술자리에서 불편하고 거북스럽던 이유도, 이제야 겨우 알 것만 같다. 비록 의식적으로 애써 부정할지라도, 여전히 사람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련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는 일, 이게 생각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최소한 내게는 말이다. 그야말로 이율배반이 따로 없다. 그럼에도 '사람은 믿을게 못된다'. 뜬금없이, 이청준의 소설, '병신과 머저리'를 떠 올린다.(20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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