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정문일침

수치(羞恥)

by 파르헤시아

어쩌다가 속임을 당하는 것은 그리 수치스러울 것이 없다. 정작 수치스러운 것은, 속임을 당하고도 속은 줄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한 번 속고 두 번 속고 평생토록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속임을 당하는 자가 어찌 한 두 사람뿐이랴. 남을 속이는 자가 젊은 시절부터 탐관오리가 되어 늙어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부귀영화를 누리니,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애초에 속이기를 시작한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전하는 자는 속임을 당하는 줄 알지 못한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 또한 속임을 당하는 줄 알지 못하니, 어찌 천하에 이럴 수가 있는가. 오직 어긋나고 그릇된, 글월과 가르침과 배움(差誤之文學) 일뿐인 것을...


-최한기(1803-1879), '이통(耳通)'기측체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자아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