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정문일침

글의 진정성

by 파르헤시아

어떤 사람들은 고관대작(高官大爵)과 같은 높은 지위와 많은 봉록의 부귀영화를 탐하면서도, 마치 세속을 초월한듯이 자연을 벗삼고 전원의 은거 생활을 노래한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는 번거롭고 바쁜 일상의 잡다한 문제들을 걱정하면서도, 마치 인생을 달관한듯이 공허한 정취를 읊조린다. 거기에는 진심이 없으며 입으로 말하는 것과 내심의 감정이 완전히 상반돼 있다. 복숭아나무와 배나무는 비록 말은 하지 못해도, 그 밑에는 사람들이 밟아서 생긴 오솔길이 있게 마련이다. 그 이유는 그 나무들이 감미로운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남자가 난(蘭)을 심으면 꽃이 피어나도 향기가 풍기지 않는다고 한다. 남자에게는 꽃과 상응하는 정취가 없기 때문이다. 한낱 미미한 초목조차도 진지한 감정에 좌우되며 감미로운 열매를 근거로 하는데, 하물며 언어로써 지향하는 바를 나타내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문학작품은 오죽 하겠는가? 입으로 말하는 것과 지향하는 것이 서로 상반된다면 어찌 그것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말을 조직하여 아름다운 언어적 표현을 결집시키는 까닭은,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함으로써 도리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만일 언어 수식이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이상야릇하다면 나타내고자 하는 도리와 감정은 오히려 가려져서 드러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는 물총새의 깃털로 낚싯줄을 만들고 계수나무로 미끼를 만들어서는 결코 물고기를 낚을 수 없는 것과도 같다. 이른바 “문장 속에 담긴 의미가 오히려 아름다운 표현때문에 가려진다”고 한 말도 그와 같은 정황을 지적한 것이라 하겠다. 시경에 '비단옷을 입고 베옷을 덧입는 것'은 비단옷의 무늬가 너무 화려한 것을 싫어한 것이고, 역경에서 '비괘의 형상이 백색으로 돌아가는 것'(賁象窮白, 분상궁백)은 근본인 원색으로 돌아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 까닭이다.


-유협(465~521), '정채(情采) 문심조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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